2021. 11. 16. 09:31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강남 애들이랑 수능 경쟁 하라뇨” 비수도권의 한숨 [이슈&탐사]
[조국 사태 2년, 대입은 공정해졌나] ③ 길 잃은 비수도권 일반고
입력 : 2021-11-1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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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한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지난 5일 복도에서 자율학습하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들이 졸리면 복도에 책상을 갖고 나오거나 서서 공부할 수 있게 했다. 광주=이동환 기자
광주 A고 2학년생 박민영(17)군은 올해 1학기 중간고사까지 내신 성적이 전교 1등이었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6등으로 떨어지자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수시로 ‘인서울’ 의대에 간다는 전략에 차질이 생겨서다. “인서울 의대를 가려면 내신 1등급 극초반대를 받아야 해요. 차라리 자퇴하고 혼자 1~2년 정도 재수학원에서 정시 준비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죠.”
같은 학교 1학년 추진웅(16)군은 1학기를 마친 뒤 내신 관리를 포기하려 했다. 학교 선배들이 인서울 대학 수시 전형에서 실패한 사례를 듣고 나서다. “서울 좋은 대학들이 정시로 많이 뽑는다고 해 애매한 내신 성적에 신경 쓰기보다 수능 공부에 올인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3학년생인 최도훈(18)군은 수능을 보기 전부터 재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재수생이 역대급으로 몰린다는 올해 수능에서 목표로 하는 해군사관학교나 한의대 진학을 장담할 수 없어서다. 그는 “서울에서 재수해 의대에 진학한 친형처럼 서울로 올라가 재수학원 근처 원룸을 얻거나 기숙학원에 들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A고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입 경로를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2019년 11월 정시 비중을 강화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이 발표된 지 2년. 비수도권 일반고에선 수시냐, 정시냐를 놓고 혼란을 느끼는 학생이 많았다. 서울 주요 대학을 노리는 상위권 학생들이 특히 그랬다.
“상위권 대학은 100% 수시로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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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수험생들이 막바지 안간힘을 쏟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일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자율학습하는 모습. 광주=이동환 기자
“서울 상위 16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거의 100% 수시로 갔어요. 정시는 매년 합격생 중 1~2명에 불과했죠.”
세 학생이 다니는 A고 3학년 임모 부장교사의 푸념이다. 비수도권 일반고는 그동안 수시, 그중에서도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거나 낮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학생들을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 진학시켜 왔다. 사교육 인프라가 풍부하게 갖춰진 수도권 학생, 재수생들과 ‘수능 경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교 교육과정은 정시보다 수시에 방점을 두고 진화해 왔다. 정부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수업 중 토론과 수행평가, 체험활동을 늘리는 식으로 교육 방향을 전환했다. 지나친 암기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자는 목적이었다. 이 흐름은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입시 정책도 교육과정 변화와 궤를 같이했다. 2008년 입학사정관제가 본격 도입된 뒤 2013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이름이 바뀌어 최근에 이르기까지 입시 정책은 꾸준히 수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수시모집 비율은 점진적으로 증가해 2018학년도(73.7%)에 70%대를 넘어섰고, 2019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이 적용되기 직전인 2020학년도엔 77.3%로 최고 수준을 찍었다.
비수도권 일반고는 정시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선 수시 전형 중에서도 상위 16개 대학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집중적으로 대비시키는 전략을 채택했다. 학생부를 꼼꼼히 채워주는 학교들이 입소문을 타고 명문고로 도약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시 확대는 비수도권 일반고에 악재가 됐다. 김성식 충북 청주 흥덕고 3학년 부장교사는 “정시 확대로 학종 비율이 줄어들면서 서울 주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축소됐다”고 말했다. “게다가 학교장 추천 교과 전형이 늘었는데 여기엔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있잖아요. 그러니 지방 상위권 학생에겐 수능 영향력이 굉장히 커진 거죠.”
이 학교는 전교생 85% 이상이 수시로 대학에 진학한다. 정시로 대학에 가는 학생은 10% 내외다. 수능 대비 수업은 9월 수시원서 마감이 끝난 뒤에야 가능해진다.
일반고에선 수능 대비 특강을 개설하는 정도가 대처할 수 있는 전부다. 수능 특강을 열어줄 여건이 되는 학교도 드물다. 대부분 지방 일반고는 학생들에게 자습 시간을 주고 알아서 수능 공부를 하라고 한다. 수능 대비 특강이 입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 광주의 일반고를 졸업하고 올해 반수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박모(20)씨는 “학교에 수능 대비 과목이 있었지만 딱 4~5등급 수준 학생을 위한 강의여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정시는 그냥 애들이 잘해서 가는 거지 학교가 관여한 건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정시 포기하거나 재수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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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광주 남구 봉선동 학원가에 한 독학재수학원의 대형 광고 현수막이 붙어있다. 광주=이동환 기자
비수도권 일반고의 대입 준비는 이제 두 갈래로 나눠지는 모습이다. 정시를 포기하거나 학교수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경기도 평택의 한 고교 2학년 부장교사는 “우리는 ‘인서울’할 수는 학생이 한 반에 3명쯤 된다”고 했다. “그 셋에 맞춰 수업을 할 수 없어 내신 위주의 수업을 하고 시험도 쉽게 내게 돼요. 반면 특수목적고나 서울 강남 고교는 정시로 40%를 뽑는 상위권 대학에 맞춰 수업할 수 있죠. 시골 학교는 죽었다 깨어나도 수능과는 전혀 상관없이 지내고, 강남 목동 분당 수지의 학교에선 내신보다 정시에 집중한 수업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의 말처럼 비수도권 일반고에선 일찍이 정시에 힘을 빼는 학생들이 대다수다. 수능 영향력이 높은 상위 16개 대학 진학을 애초에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학생들은 대신 수시 모집 비중이 90%에 육박하고 수능 최저학력기준도 낮은 지방대 진학에 집중하는게 낫다고 판단한다. 이런 추세는 학년을 불문한다. 평택 고교 2학년 부장교사는 “지방 소도시뿐 아니라 서울 강북 쪽 학교에서까지 ‘수시에서 끝내겠다, 정시 안 본다’며 3학년 2학기 땐 노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며 “1학년, 2학년에서도 정시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대전의 한 일반고에 재학 중인 조은서(17)양은 서울권 대학 언론정보학과 진학을 꿈꾸면서도 2학년 2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현재까지 수능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제 주변엔 학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저도 내신 위주의 수학·영어학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한상무 충남 논산 대건고 교사는 “지방 학생들도 수도권 대학을 생각은 하겠지만, 교육과정에 맞춰 내신을 준비하다보면 수능까지 할 여력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상위 16개 대학 진학을 포기하지 않는 지방 상위권 학생들은 학교 수업보다 수능 준비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 경우 사교육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지난 5일 광주 봉선동 학원가에서 만난 광주 B여고 3학년 안모(18)양은 2학년 겨울방학부터 학교 수업을 마친 뒤 곧바로 독학재수학원으로 두 번째 등교를 해왔다. ‘재수학원’ 간판을 달고 있는 이 학원엔 재수생보다 재학생이 더 많이 다닌다. 책상, 의자가 최신식이고 주요 과목 강사들이 상주하며 수능 문제풀이부터 입시 상담까지 도와줘 지역 상위권 학생들이 몰린다고 한다. 안양은 “학교 야간자습은 40~50분 정도여서 중간에 맥이 끊기는데 여기는 그보다 두 배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학교에선 수능 준비를 해준다는 느낌을 못 받았는데 여기 선생님들은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더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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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확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수도권 재수생’과 자율형사립고 등 특수목적고 졸업생이 될 전망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대입제도 개선 연구단이 2019년 작성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대입제도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학년도 수능 영어 과목에서 졸업생은 평균 표준점수 108.3점을 받아 97.6점을 받은 재학생보다 10.7점 높았다. 국어, 수학 가, 수학 나 과목에서도 재수생은 재학생보다 평균 표준점수가 각각 10.1점, 8.6점, 5.4점 높았다. 그런데 수능 성적이 높은 재수생은 대부분 수도권에, 그중에서도 서울 강남과 목동 지역에 몰려 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18년 정시로 서울대에 입학한 재수생 1426명 중 71.9%인 1026명이 서울(614명) 경기도(380명) 인천(32명) 출신이었다. 서울에선 강남 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와 양천구 출신이 53.4%를 차지했다.
반면 비수도권 일반고 학생들은 재수를 선택할 때 공간·예산·정보의 제약에 놓인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재수 학원비가 한 달에 10만~20만원이 아닌데 지방에서 오면 서울에 사는 체류비까지 더해야 해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쉽지 않다”며 “돈이 없으면 지방에서 혼자 공부해야 하는데 그 경우 개인 역량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광주 봉선동 학원가의 한 독학재수학원 부원장도 “지역에선 아무래도 정보력이 떨어진다”며 “광주에서도 교육열이 높은 봉선동쯤 돼야 부모들이 아이들을 2주에 한 번씩 서울로 보내 입시 컨설팅을 받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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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의 지속적인 감소도 비수도권 일반고에 불리하다. 수시로 상위 16개 대학에 원서를 넣을 수 있는 내신 등급을 받는 학생들의 절대적인 숫자가 적어서다. 광주 A고 2학년 교사는 “우리 학교는 3학년 230명, 2학년 205명, 1학년 185명으로 학생 숫자가 계속 줄면서 1, 2등급 학생 숫자가 줄고 있다. 내신 백분위가 충족되지 않아 학종 지원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 학교는 학생이 지방에 비해 덜 줄어드는 추세라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부에서 고교 이름을 짐작하게 할 만한 정보를 모두 지우는 블라인드 제도는 물론 고교학점제까지 정부가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인 제도들이 수도권 특목·명문고와 비수도권 일반고의 격차를 오히려 벌려 놓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전국 단위 자사고 C고의 입학부장 교사는 “블라인드 제도는 진짜 실력있는 애들을 뽑는 것이므로 장기적으로 특목고에서 뽑히는 인원이 많아질 수 있다”며 “고교학점제도 최상위권 자사고들은 미리 시행했던 경험이 있어 괜찮지만 일반 학교는 선택 과목을 제대로 가르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슈&탐사팀 권기석 박세원 이동환 권민지 기자 hua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470563&code=61121111&sid1=soc&cp=n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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