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다섯 살 아이 백신 맞혀보니

2021. 12. 14. 09:38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특파원 리포트] 다섯 살 아이 백신 맞혀보니

뉴욕=정시행 특파원

조선일보 입력 2021.12.14 03:00

만 다섯 살인 아들이 최근 뉴욕시에서 코로나 백신을 접종 완료했다. 현재 미국에서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최저 연령이 5세다. 지난달 중순 “5~11세 미국 아동 중 100만명이 백신을 맞았다”는 뉴스를 보고 아이 손을 잡고 1차 접종을 하러 갈 때는 ‘남들은 좀 더 지켜본다는데 내가 너무 서두르나’ 싶어 내심 심란했다. 대형 접종소인데도 어린이 대기 인원이 적었고, 부모나 아이들이나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우리 아이는 당일 반나절쯤 주사 맞은 부위가 약간 붓고 뻐근하다고 했지만, 다행히 열 안 나고 밥 잘 먹고 유치원도 잘 다녔다.

지난 주말 “미 아동 500만명이 맞았다”는 뉴스를 보고 2차 접종을 받으러 갔더니 접종소 분위기가 확 달라져 있었다. 훨씬 많은 어린이가 왁자지껄 놀며 차례를 기다렸고 부모들도 좀 더 편안해보였다. 몇 주 전만 해도 “아이에게 백신 맞히기는 너무 불안하다”던 이웃들 사이에서도 “슬슬 예약 잡아볼까” 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미 12~17세 청소년 중 49%, 5~11세 어린이 18%가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들 중 심각한 백신 부작용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백신 접종의 이익이 위험을 상회한다”는 정부와 전문가의 설득도 중요하지만, 이런 문제는 내 아이 친구가 어떤지 지켜보는 ‘또래 집단 데이터’가 막강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들 백신 접종을 서두른 건 단지 백신 부작용보다 바이러스 감염이 더 겁났기 때문이다. 팬데믹 전에 일이 바빠 독감 주사 맞히는 것을 잊었다가 아이가 독감에 걸려 입원한 적이 있었다. 뉴욕에 부임한 뒤 지난겨울 코로나 대확산 땐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코로나 감염자 밀접 접촉자가 나왔다”며 사나흘씩, “같은 반 친구가 코로나에 확진됐다”며 2주 넘게 휴원을 했다. 종일 아이 돌보며 일을 하다 눈물이 주르룩 흐른 날도 있었다. 일 못 하는 건 둘째 치고 외국에서 아이가 코로나에 걸려 앓으면 큰일이란 걱정이 들었다. 모든 부모가 지난 2년간 이렇게 살얼음판을 걸었을 것이다.

성인 백신 접종 때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백신 기피층이 적은 나라로 꼽혔던 한국이 청소년 접종 단계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코로나 백신이 유례없이 급하게 개발된 백신인 데다, 자녀에 관한 일은 설사 천만분의 일 확률의 위험이라도 부모로선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미 카이저재단 조사에 따르면 미 성인 중 백신을 절대 맞지 않겠다는 적극적 기피층이 20%였다면, 자녀에게 백신을 절대 맞히지 않겠다는 이는 30%로 늘어난다. 하지만 나머지 70% 중 대부분은 ‘조금만 기다렸다가 학교에서 다들 맞으면 맞히겠다’는 쪽이다. 부모들을 기다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다들 지쳐있다.



뉴욕에서 미국과 한국의 여러가지 문제를 보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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