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농 성공기

2008. 7. 29. 05:34이슈 뉴스스크랩

 

경북 김천시에서 차를 타고 경남 거창군 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면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구성면 미평2리가 나온다. 마을 곳곳에 향긋한 자두, 복숭아 냄새가 배어있다. 지난 23일 과수원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햇볕 밑에서 챙넓은 모자를 쓴 채 자두를 따고 있던 문종동(52)씨를 만났다.

햇볕에 그을린 새까만 피부, 키가 작고 마른 편이었지만 단단해 보이는 인상, 흙먼지가 내려앉은 의복 등 전형적인 농사꾼의 모습.

“군 복무기간 3년을 제외하곤 우리 마을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줄곧 이곳에서 농사만 지어 자식들 다 키웠지요.”

문씨는 9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밖에 못 나왔다고 한다. 진학을 하지 못해 몇해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군대를 다녀온 다음에는 훌륭한 농사꾼이 되기로 결심했다. 가진 게 하나도 없었으나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프로’ 농사꾼이 되고 싶다는 꿈이 가득했다. 농협 등에서 마련한 농업 전문가 강연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주도적으로 농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자리도 많이 만들어 농업 관련 최신 경향에 정통하게 됐다.
 
“‘오죽 못나고 못배웠으면 이런 산골에서 농사나 짓고 살겠느냐’면서 늘 자괴감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농촌에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잡초를 뽑고 퇴비를 주고 과수원을 가꾸는 일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은 그에게 잊지 못할 해였다.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이때 주변 농지를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둬들인 천수답을 모두 사과 과수원으로 바꿨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과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했다. 멀쩡한 논을 과수원으로 개조한다는 게 당시로선 상식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성공을 거뒀고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문씨를 따라 했다. 10년전에는 작물을 자두와 복숭아로 바꿨다. 이상기후 징후가 감지돼 사과 농사 짓기가 힘들어졌고 작물 특성상 농약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국산 과일이 많이 들어오더라도 유통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상하기 쉬운 자두와 복숭아는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부업으로 소도 40~50마리 키우고 있다. 소는 소대로 쇠똥을 과수원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적중했다.

그가 현재 소유한 토지는 모두 2만6446㎡(8000평). 대부분 자두와 복숭아 과수원이다. 그는 “지난해에는 악재가 겹치면서 8000여만원의 수익밖에 거두지 못했다”며 겸손해했다. 평소에는 연간 1억원 수익을 거뜬히 넘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기업을 운영하듯이 미래 수요와 외부 환경을 고려해 새로운 작물을 도입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머리를 잘 쓰고 최신 정보 취득에 능통한 프로 농사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프로 농사꾼만 된다면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농촌생활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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