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사실상 무법지대

2008. 10. 21. 18:47이슈 뉴스스크랩

‘쪽방’ 고시원은 사실상 ‘무법지대’

"법이 없으니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소방당국)

"제발 빨리 법규 좀 만들어서 `호적'에 올려주세요."(고시원업계)

20일 논현동에서 발생한 흉기난동·방화사건으로 고시원의 열악한 환경이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고시원 설치와 운영을 규제할 수 있는 법령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방당국은 21일 "현재 고시원 운영을 규제할 수 있는 법령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했고, 고시원 업계도 "규제를 받아도 좋으니 제발 마음 편히 장사 좀 하게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 `우후죽순' 고시원 6천200여 개 = 1980년대까지 고시생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고시원이 저소득층의 숙박시설로 애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

특히 1990∼2000년대 집값 폭등, 이혼율 증가, 외국인 노동자 유입 등으로 값싼 숙박시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숙박형 고시원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고시원협회는 현재 서울에만 3천900여 개, 전국적으로 6천200여 개의 고시원이 있으며 지금도 매년 500∼600여 개 가량이 개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소방방재청도 최근 조사에서 서울지역 고시원 이용자가 10만8천428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해 고시원 이용자는 전국적으로 20만 명 가까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고시원의 폭발적 증가에는 법령 상의 이점도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고시원은 다중주택과 달리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수 세대 당 한 대 꼴로 주차장을 확보해야할 필요도 없고 숙박시설과 달리 상업지역이 아닌 주거지역에서도 운영할 수 있다.

소방시설 설치신고와 사업자등록만 마치면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점, 정식 임대사업자보다 세금도 다소 적게 낸다는 점 등 역시 고시원이 급증하게 된 배경이다.

이런 가운데 침대, 공동화장실, 공동주방 등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저렴한 가격에 장기한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고시원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 건축·보건법의 `사각지대' = 문제는 사실상 숙박시설 기능을 하고 있는 고시원이 당연히 받아야 할 건축법, 보건법 등의 규제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는 점.

즉 고시원들이 2×2㎡ 안팎의 쪽방들을 다닥다닥 붙여 지어놓고, 통로를 비좁게 만들고, 지하실에 방을 설치하는 등 대형 화재에 취약한 구조로 고시원을 운영해도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비록 고시원이 숙박기능을 제공하지만 법령상으로는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된다"며 "업소 등록에서 운영에 이르기까지 관계기관이 관여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시원들이 법적규제를 받는 경우는 다중주택에 설치하는 개인화장실이나 취사시설 등을 별도로 설치, 다중이용업안전관리에관한특별법을 위반했을 때가 거의 유일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상당수 고시원들은 공동취사시설을 갖춰놓고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규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정부, 관련법 개정 `미적' = 관련 법안에 대한 `정비' 요구는 고시원 화재가 날 때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거북이 걸음'이다.

고시원업계 마저도 "욕을 먹느니 규제를 받겠다"며 2003년부터 관련 법안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지만 여전히 가시적 성과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2002년 이른바 `고시원 안전관리기준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됐지만 흐지부지됐다.

또 작년 보건복지부가 `공중위생관리법'에 고시원업을 포함시켜 고시원 위생상황을 점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에 냈지만 17대 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개정안이 자동폐기된 데 대해 "해당 상임위원회에 다른 법안들이 너무 많이 밀려 있어서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고시원의 규모, 층수, 면적, 통로폭 등 화재예방 등과 직결된 부분들을 규제하기 위한 건축법, 소방법 등의 보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논의조차 안되고 있다.

한국고시원협회 황규석 회장은 "고시원에서 사고가 터질 때마다 고시원업계가 싸잡아 욕을 먹는다"며 "법령을 마련해달라고 그렇게 요구를 해도 실현이 안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소방전문가는 "고시원이 사실상 숙박시설인 만큼 하루빨리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한다"며 "특히 인허가제로 전환해 구청이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방법을 적극 검토해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