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원대 금융 피라미드 전말

2008. 11. 15. 18:30이슈 뉴스스크랩

건강보조기구를 구매하면 고배당금을 보장해준다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투자자를 모집한 뒤 거액을 가로챈 다단계업체의 사기 사건(본지 7일자 6면, 8일자 4면 보도) 피해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만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이르는데다 피해 금액이 7조원대(비상대책위 주장)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로 꼽히는 제이유 그룹(1조8천억원대)을 뛰어넘는 규모. 전형적인 금융 피라미드인 이 업체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홀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수법을 썼나

금융 피라미드 사기 행각을 벌인 업체는 ㈜BMC라는 이름의 회사다. 대구에 본사를 둔 이 업체는 2004년 10월 임원 5명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대구에서 ㈜BMC, ㈜엘틴, ㈜벤스, ㈜티투, ㈜씨엔, ㈜리젠 등으로 활동했고 부산의 경우 ㈜챌린, ㈜리버스, 인천에서는 ㈜리브, ㈜리드앤 등 8개월~1년 단위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2006년까지 지점이 10개에 불과했지만, 이후 급속도로 성장해 지난 10월말 현재 15개 법인과 50곳의 센터를 둘 정도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들이 쓴 수법은 간단했다. 안마기 등 건강보조기구를 구입해 모텔이나 찜질방에 설치하고, 그 수익금을 배당해 준다고 광고했던 것. 업체측은 대당 440만원(1계좌)인 의료기기를 구입하면 주 5회에 걸쳐 하루 평균 3만5천원씩 8개월 간 580만원을 수익금으로 내준다고 현혹했다. 월 평균 원금 55만원과 배당금 18만원을 지급하는 격이니 8개월 수익률이 32.7%에 이르는 셈. 그러나 실제로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배당을 챙겨주는 식이어서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데 불과했다.

 

하위 투자자를 끌어오는 다양한 수단도 동원됐다. 업체측은 추천 수당 명목으로 끌어온 고객의 투자 계좌 수에 따라 계좌 당 9만8천원을 지급했다. 수습부장, 부장, 국장, 본부장, 단장, 센터장 등 직급에 따라 직급 수당을 월급으로 지급하고, 하위 투자자의 매출에 따라 직급별로 공유수당도 줬다.

특히 업체측은 재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꼬박꼬박 배당금을 지급했다. 임원들이 잠적하기 전까지 단 하루도 배당금 지급 날짜를 어긴 적이 없었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 호텔, 백화점, 재개발 등 각종 투자사업을 통해 고수익을 올린다고 속이기도 했지만 시늉만 했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업이 대부분이었다. 업체측은 투자자들의 의심을 덜기 위해 '웰빙타운'이라는 전시공간도 만들었다. 동구 신천동에 골반교정기, 승마기, 족욕기 등 건강 의료기기 8, 9가지를 비치한 체험실을 만들어 운영했다는 것. 피해자 김모(43·여)씨는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1만원씩하는 입장권을 구입해 고객들에게 나눠준 뒤 의료기 체험을 하게 하고 투자를 유도했다"고 귀띔했다.

 

◆왜 피해가 커졌나

'돈 놓고 돈 먹기' 식인 금융 피라미드의 특성상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하위 투자자가 없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업체측은 배당금과 원금을 계속 재투자하면 거액의 배당금을 만질 수 있다고 유혹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돌려받은 원금과 배당금은 물론이고, 빚을 끌어대가며 뭉칫돈을 넣었다. 5개월 전 투자를 시작한 권모(57·여)씨는 지난 5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의 권유로 쌈짓돈 1천100만원(2.5투자계좌)을 투자했다. 배당금과 원금 명목으로 8만7천원이 입금되자 가슴이 들뜬 권씨는 3일 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3천300만원을 투자했고, 다시 1주일 뒤에 2천860만원을 신용대출 받아 추가로 투자했다. 투자 원금만 7천260만원에 이르는 셈이지만 지금 권씨 손에 남은 것은 한푼도 없다.  

 

경찰과 금융당국의 허술한 대응도 문제로 꼽힌다. 이 업체는 법인 명을 수시로 바꾸며 실체를 숨겼고, 지난해에는 일부 센터가 적발됐는데도 정작 '몸통'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유사 수신행위로 단속된 센터는 벌금을 내고 피해자들과 합의를 통해 쉬쉬하며 넘어갔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심지어 지난달 24일 수도권에서는 이미 배당금이 지급되지 않고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중임에도 대구에서는 1주일 간 더 배당금이 지급됐으며, 심지어 대당 현금 3만원을 수당으로 주는 프로모션까지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A씨(55·여)는 "지난달 3일쯤에는 임원들이 각 센터장의 개인 통장에 수억원을 입금해준 뒤 1주일 뒤에 수표로 인출해 돌려받았다"며 "결국 임원들이 돈세탁까지 해서 달아난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투자금을 되찾기 힘들듯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액수도 6조, 7조원에 이르는데다 현금 투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조 회장 등 공개 수배한 임원들을 쫓고 있지만 붙잡힌 부회장 황모(52)씨를 제외하면 아직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특히 조 회장은 대구 토박이면서 냉동식품 회사에 다녔다는 사실 외에는 전과 등 범죄 기록이 전혀 없고 본인 명의로 된 재산이나 세무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잡힌다하더라도 투자금을 회수하기는 쉽지 않다. 유사 수신 행위와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되면 관련자들의 재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이 가능하지만 이미 다른 곳으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찰은 투자금이 입금된 계좌에 대해 지급 정지 조치를 하는 한편, 법인 소유 재산을 수사 기관에서 임시 보존 조치를 할 수 있는지를 검토 중이다. 피해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호텔과 법인 소유 건물, IT업체 투자금, 부동산, 법인 통장 등 남은 자산을 회수해 피해를 줄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워낙 피해규모가 커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은 앞으로가 미칠 사회적 파장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한다. 투자자들이 빚을 갚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장 대출 상환 및 신용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는 월말이 되면 심각한 가계 파탄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 피해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는 '죽어버리겠다'는 극단적인 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형편이다. 투자한 1억2천만원 중 8천만원이 빌린 돈이라는 박모(45·여)씨는 "보험 약관 대출, 신용대출 등 안 받은 대출이 없다"며 "당장 상환일이 다가오는데 손쓸 방법이 없는데다 아는 사람을 다 거지로 만든 것 같아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숨쉬기도 힘들 정도"라며 울먹였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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