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8. 08:11ㆍ이슈 뉴스스크랩
금융기관은 늘 고객을 왕처럼, 가족처럼 모시겠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사정이 어려워질 때면 정작 고객들은 은행의 왕이나, 가족이라는 느낌보다, 봉이나 호구가 됐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기 마련인데, 고객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운 게 이유의 전부일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금융기관의 꼬임에 넘어갔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럿 있어 보인다.
금융기관이 고객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순진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회사가 돈을 벌기 위해서다. 펀드를 팔아서, 보험상품을 팔아서 금융기관이 얻는 것은 수수료다. 좋은 상품의 기준은 고객들의 자산을 얼마나 불려주느냐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회사에 돈을 얼마나 더 많이 벌어주느냐도 중요하다. 두 가지 기준이 균형을 이루는 게 이상적이지만, 금융기관들은 아무래도 후자로 기우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일례로 물론 제조업체도 같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이익집단이지만, 금융기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회공헌활동을 벌인다.
우리나라 주식형펀드는 평균 2% 정도의 수수료를 뗀다. 이 가운데 펀드 운용댓가는 0.7%정도, 나머지 1.3%는 판매사 몫이다. 펀드 운용사가 공장이라면, 은행이나 증권사는 할인마트나 백화점 정도에 비견할 만하다. 올바른 상도(商道)라면 좋을 물건을 가져다, 좋은 값에 파는 게 다행이지만, 당장 수익을 따진다면 이익이 많이 남는 상품을 많이 파는 것만 같지 못하다.
성과가 좋은 펀드보다는 수수료를 많이 벌수 있는 펀드, 많이 팔려서 절대 매출액이 높은 펀드가 은행이나 증권사에게는 최고의 펀드다. 펀드는 미래수익률이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펀드가 과거수익률을 기초로,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 포장된 채 팔려 나갔다. 운좋게 시장이 도와주면 수수료도 벌고, 고객들의 평가도 얻지만, 시장이 좋지 않아도 수수료 수입은 이미 확정됐고, 고객들의 불만은 운용사로 향하기 마련이다.
지난 해 서울 시내 초특급 호텔에서 가장 많이 열린 행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펀드 설명회였다. 운용사들이 은행과 증권사 펀드 판매 직원들을 초청해 펀드매니저로 하여금 펀드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자리였다. 한창 때는 500명이 넘는 금융기관 직원들이 모였고, 운용사는 하룻밤에 수 천만원의 비용을 쏟아부었다.
특히 외국계 운용사들은 일반투자자들이 1차 정보를 얻는 국내 언론이나 대중매체보다는 투자자에게 대면접촉으로 펀드를 판매할 수 있는 금융기관 직원을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1대 다수의 대형행사에서 참석한 판매직원들이 얻는 정보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개별 지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있다고 하지만, 업계를 통털어도 수 백명에 불과한 펀드사 마케팅 인력이 수 천, 수만명에 달하는 금융기관 판매직원들은 정교하게 교육시키기는 애초에 불가능해 보인다.
지난 해 이같은 대형행사를 가진 펀드들 상당수는 올 해 수익률 바닥권을 형성하고 있다.
일례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인사이트 펀드를 보자. 꼭 1년전 인사이트가 열풍을 일으킨 이유는 2가지다. 당시만해도 '투자의 신'으로 여겨졌던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직접 운용한다는 소문이 표면적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판매사에게 돈이 되는 펀드라는 점이 상당한 유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인사이트펀드 출시 당시 미래에셋증권은 1억원을 팔때마다 30만원 정도의 판매수당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뜩이나 박 회장의 명성으로 인기가 폭발하던 터에 판매직원들의 판매욕에까지 불을 붙였다. 미래에셋에서 잘 팔리니 다른 은행과 증권사들도 앞다퉈 판매에 나서고, 덕분에 불과 한 달만에 3조원 넘는 돈을 끌어 모았다. 당시 국내금융기관 내부에서는 중국경제에 대한 과열신호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인사이트가 중국에 '몰빵'한다는 것을 투자자에게 안내한 곳은 없었다.
설정 며칠만에 판매직원들이 인사이트 펀드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한다는 것도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됐던 인사이트 펀드로 은행과 증권사들은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뒀다. 그리고 최근 수익률이 부진하지만 운용주체인 미래에셋에 대한 비난은 높지만, 인사이트 펀드를 판매했던 은행, 증권사에는 그다지 화살이 향하고 있지 않다,
인사이트 돌풍 한 달 후, 신한BNP파리바에서 한국증권 창구를 통해서만 내놓은 펀드가 인기몰이를 했다. 상품 자체의 이유도 크겠지만, 인사이트 펀드보다 많은 1억원에 50만원의 판매수당 지급조건이 판매직원들을 자극한 게 성공의 비결이었다.
특히 펀드 판매 수수료에 집착한 은행의 영업행태는 예금자산의 급격한 이탈을 가져왔고, 이에 앞서 벌였던 주택담보대출과 중소기업대출 열풍과 결합해 은행 재무구조를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대출자산은 많은 데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승자박인 셈이다.
문제는 은행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투자상품에 대해서 은행보다 전문성이 높다는 증권사들 역시 고객보다는 수익을 앞에둔 영업활동을 벌였다. 가장 극명한 예가 바로 주가연계증권(ELS)다. ELS는 금융전문지식을 가져야만 정확히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첨단 상품으로, 금융선진국에서도 일반 개인들에게는 잘 판매하지 않는다.
하지만 판매액의 1~3%에 달하는 막대한 수익은 증권사들을 ELS 과당경쟁으로 몰고 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ELS의 성과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었다는 점. 증권사들은 ELS를 판매는 하면서도, 자신들이 과거 내놨던 ELS의 성과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이른 바 '묻지마 투자'를 연상하게한다.
지난 2006년 한 때 가장 대표적인 상품인 투 스탁ELS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됐지만, 증권업계의 반발로 금융당국은 아무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ELS가 손실이 나더라도 증권사들은 거의 손해를 보는 일이 없다. 손실은 투자자가 가져가고, 증권사는 수수료 수익만 가져가면 그뿐이다.
결국 지난 3년간 가장 많은 국민의 돈이 몰렸다는 펀드, 그리고 ELS의 최대 수익자는 은행, 그리고 증권사였다. 투자는 투자종료 시점에 수익이 날 수도, 손해가 날 수도 있지만, 한번 확정된 수수료는 결코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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