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전자계열사 신임 사장들이 임직원에게‘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 가다듬기에 나섰다.
표면적인 적(敵)은 사상 최악의 글로벌 동시 불황과 경쟁사이지만, 전쟁의 진짜 성격은‘삼성 자신과의 싸움’이어서다.
세계시장에서 1등을 지키고 있는 상품이 많지만, 현재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행동으로 극복하자는 것이다.
신임 사장들은‘현장 러시’와 함께 심기일전을 주문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신경영’을 주창하며“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했던 것과 엇비슷한 강도의 발언도 거침없이 나왔다.
윤부근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DMC)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사장은 최근“가족보다 유통ㆍ거래선을 더 자주 만나라”고 지시했다.
같은 사업부에서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별도의 취임식은 없었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사실상 임직원 머리에 쥐가 나게 하는 것이었다.
윤 사장은 “유통ㆍ거래선을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번 만났다면 이제부터는 매일 만나라”며 구체적인 행동패턴까지 제시하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지만 결국 해답은 시장과 고객에 있다”고 강조했다.
장원기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LCD사업부장 사장도 “불가능에 도전하며 성취하는 삼성LCD만의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당면한 위기를 기회로 발전시켜 시장을 선도하는 초일류 삼성LCD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주문했다.
강호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사장은 ‘초심의 자기혁신’을 화두로 꺼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인력을 수혈받아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로 차세대디스플레이시장 석권 및 삼성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이끌어가야 하는 임무를 맡은 상황이어서 각오가 남다르다.
요즘 천안사업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그는 직원들과의 ‘현장대화’에 집중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자”고 격려하고 있다.
박종우 삼성전기 사장은 최근 취임사에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 시절 보여준 특유의 저돌적 움직임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한 번 결정된 것은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투철한 실행의지가 중요하다”며 “경영모토로 스피드, 효율, 손익 위주 경영을 삼고‘강한 삼성전기’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첫 조치로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 동안을‘현장 집중 근무시간’으로 정하고 현장 인력 대상의 회의ㆍ행사를 금지하는 등 효율 극대화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이헌식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은 ‘문제해결 DNA 갖추기’를 지시했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문제해결 DNA를 갖는 게 중요하다”며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계획이 분명해야 하고, 계획을 차질없이 달성하려면 과감한 의지와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CEO들은 이 전 회장의 경영 지침을 수시로 숙지하기 때문에 이들의 메시지에서도 비슷한 화두들이 나오는 것 같다”며“위기 돌파를 위해 현장형 CEO들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불황 극복의 활력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