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의 달인

2009. 2. 25. 18:05분야별 성공 스토리

보험영업 달인의 사전에 위기란 없다
 

경제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투명하고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점점 축소 지향으로 나가고 있다. 직장인들은 언제 내몰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을 졸이게 되고, 막 사회로 들어오는 새내기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모든 게 어려워 보이지만 영업 달인들의 사전엔 위기란 단어조차 없다. 오히려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해 4분기 생명보험사의 보험료는 전년 동기에 비해 15%나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서도 각 보험사들의 신규계약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달인들은 이 같은 추세를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 새로운 시장이 무궁무진한데 무슨 걱정이냐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삼성생명에서 9년 연속 연도대상을 탄 10억대 연봉의 예영숙 금융컨설턴드(대구지점)는 편안한 마음으로 열 번째 대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대한생명 장암지점의 김옥주 세일즈매니저(SM)는 요즘도 매일 한 건씩의 신규계약을 받아내고 있다. LIG손해보험 디아이인슈 대리점의 김영옥 대표는 지난 1년 동안 25억5000만원의 보험매출을 올려 4억원 이상을 벌었다.

웬만한 사장님 부럽지 않은 이들의 출발이 모두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는 이들을 꺾지 못하고 오히려 강하게 만들었다.

“위기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묻지요. 경기가 좋으면 다 성공하느냐고.” 김영옥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경기가 나쁘다지만 웰빙 붕어빵을 만들어 한 달에 500만원씩 버는 사람도 있다”면서 “경기 때문에, 나라가 어렵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은 모두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옥자 세일즈매니저는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보아야 한다. 소액의 보장성 보험은 이럴 때 더욱 빛을 본다”며 위기란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예영숙 금융컨설턴트도 “금융컨설팅은 각자의 처지에 맞는 것을 찾아주는 것”이라며 “상황이 변하면 또 거기에 맞는 수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업의 달인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게 있다.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라. 반드시 정통의 영업을 고수하라”는 것이다. 예영숙 컨설턴트는 “말실수 하는 것보다는 말을 못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모두 고객들이 알아서 홍보를 해줄 만큼 신뢰를 얻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입소문 마케팅을 이미 오래 전에 체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열정과 상상력으로 자신을 발전시켜야"
삼성생명 대구지점 대륜브랜치 예영숙 금융컨설턴트(FC)

예영숙 씨는 말 그대로 돌아다니는 보험대리점이다.

지난 2007년에 신계약 203건, 수입보험료 185억원, 13개월 유지율 99.9%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의 고객들이 하루 평균 5000만원씩 회사에 입금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그는 스타강사의 반열에 올라섰다. 2년 전엔 청와대에서까지 특강을 했을 정도다.

성공한 오늘날과 달리 예 씨의 출발은 가시밭길과도 같았다.

계명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녀는 잘 나가는 공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두 아이를 둔 나름 유복한 집안의 가정주부였다. 그런 예 씨는 우연히 보험사를 찾았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보험을 전혀 몰랐던 시기에 남편의 선배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목격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안이 있다는 것을 알 게 된 것이다.

그녀는 보험 전도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1993년의 일이다. 등록을 하고 교육을 받는데 남편이 펄펄 뛰었다. 시부모님은 돈만 안다며 꾸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부어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보험 설계사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시기였다.

남편은 일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으나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 을 어떻게 돌볼 것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저녁 7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 아이들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때부터 예 씨는 뛰다시피 움직였다.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하루도 어김없이 7시 전에 귀가했고 주말에는 꼬박 가족과 함께 지냈다. 일과 가정을 모두 정상으로 유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불같이 화를 냈다. 남편의 아는 사람과 보험계약을 했는데 보험증서가 제때 도착하지 않자 남편에게 문의를 한 것이다. 그때부터 예 씨는 ‘매일 감사받는 심정’으로 일을 했다. 어떤 경우에도 정도를 지켰다.

그래서 예 씨는 늘 남편에게 감사한다. 엄격한 남편이 있어 자신에게 더욱 엄격했고 그게 오늘날의 성공을 낳았다는 얘기다.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녀는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늘 깔끔한 정장을 입고 나섰고 모든 금융기관의 상품을 달달 외워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컨설팅을 했다. 1년이 지나니 사람들이 ‘저 사람은 다르다’고 인정해 줬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 씨도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는 엄청난 시련이었다. 어렵게 뚫은 법인거래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워크아웃과 법정관리가 이어지면서 금융거래가 중단되는 상황이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 때 예 씨는 잘 나갈수록 절제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고비를 넘겼으니 웬만한 것은 위기라고 할 것도 못됐다. 환경이 변하면 거기에 맞는 수요가 또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 씨는 사명감과 식견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 라이프 플래너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언제나 정도로 가고, 남과 차별화를 하라고 조언한다.

매년 6~7명씩 설계사로 이끄는 그녀는 후배들에게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고, 사업가처럼 장기적 투자를 하라고 조언한다.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말과 돈에 대해선 철저히 지킬 것을 요구한다. 이 두 가지는 정직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계약 권유보다 필요성 알리는데 주력"
김옥주 대한생명 장암지점 세일즈매니저

김옥주 씨에겐 공치는 날이 없다. 지난 해 260건의 새로운 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토요일과 공휴일을 빼면 매일 한 건씩 계약을 한 셈이다. 2003년 7월에 입문했으니 짧은 기간에 대단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김 씨는 공무원인 남편과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런 그녀가 보험 영업에 뛰어든 것은 친정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게 계기가 됐다. 당시 그녀는 가내부업을 해서 월 7~8만원의 용돈을 벌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고 후 보험이라도 들어야겠다며 보험사를 찾은 게 인연이 됐다.

공무원인 남편은 보통 반대를 한 게 아니다. 수금영수증을 가위로 잘라서 버릴 정도였다. 밤새 울면서 남편을 설득했다. 아이들도 반대가 심했다. 딸은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고 남편이 갖다 주는 월급만 가지고 살 거야”라고 할 정도였다.

반대를 무릅쓰고 하는 것이기에 그녀는 철저히 준비를 했다. 신상품이 나오면 스스로 먼저 들었다. 그래야 철저히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품을 팔려고 하지는 않았다. 보험이 왜 필요한지를 가르치고 고객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다.

억센 사투리로 친화력이 강한 그녀는 원래부터 동네에서 인기가 있었다. 고향에서 먹을 게 올라오면 늘 그날 동네에서 모두 풀었기 때문이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먼저 가르쳤다. 처음엔 보험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가겠냐며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진실로 대하는 김 씨의 모습을 보고 하나 둘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는 사람들을 연결해줬다.

김 씨는 지금까지 스스로 개척한 고객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모두 고객들이 연결해준 게 오늘날 성공의 비결이라고 했다.

그녀는 보장과 금융이라는 보험의 두 기능 가운데 철저히 보장 쪽에 섰다. 스스로 보험의 강점은 보장 기능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고객들의 자산을 분석해주니 알아서 움직이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많이 벌지만 3분의 2가량을 활동비로 쓴다. 일할 기회를 준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한다. 스스로 ‘택배업자’라고 말할 정도다. 감자며 고구마를 몇 가마씩 사서 포장해 고객들에게 나눠준다. 그렇게 정을 이어가는 것이다.

남자들은 피땀 흘려가며 일을 하는 만큼 여자들도 무엇인가 하라고 김 씨는 강조한다. 보험설계사가 아니어도 좋으니 어떤 일이든 하라는 것이다.

한번은 공사장에서 어깨가 다 까진 상태로 등짐을 지는 남자를 보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그의 부인에게 야단을 쳐 설계사로 끌어들였다. 지점에는 그가 끌어 모은 사람들이 절반이나 된다.

그들에게 그녀는 절대로 보험을 권유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설계사는 교사이자 의사이며 천사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험을 가르쳐 주고, 자산컨설팅을 해서 문제를 알려주고, 혜택을 받아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보험은 금융업이다. 어디 가서 이처럼 깨끗하고 발전 가능성이 큰 직업을 쉽게 찾을 수 있냐.” 그래서인지 남보다 열심히 일한다. 아침 7시40분이면 출근한다. 오후 6시에 사무실을 나와 또 서너 명의 고객을 만나고 귀가한다. 부지런히 살아가는 엄마를 보고 아이들도 반듯하게 컸다. 처음엔 바쁜 엄마를 싫어했던 딸도 이제는 당당한 엄마를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다.

"고객에게 도움주니 모두가 대변인 돼"
김영옥 LIG손해보험 디아이인슈 대리점 대표

김영옥 씨는 수많은 대변인(?)을 두고 있다. 그들 덕에 김 씨는 달인의 경지에 올랐고 많은 대리점 가운데 최고의 실적을 올리는 탄탄한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결혼하기 전 김 씨는 잘 나가는 철강 세일즈우먼이었다. 한해 여름에 샌들 일곱 켤레를 신을 정도로 뛰어다녀 굴지의 그룹 계열사들과 경쟁에서 이겨내기도 했다.

잘 나가는 공무원과 결혼한 그녀는 아이들을 키우며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피아노 조율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그녀의 일거리를 빼앗아갔다. 학습지 방문교사도 해봤지만 회사의 계약조건이 너무 열악했다.

그러던 차에 설계사를 하던 친구가 보험 일을 해보라고 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손해보험이 나을 것 같았다. 이왕 하는 것 아예 대리점을 하자고 본격적으로 준비를 했다. 또한 남편 직장이나 시댁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내친 김에 친정에도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가정도 지키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야속했다. 남편은 인맥도 넓었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도움이 됐다. 남편이 도와줬더라면 거기에 안주해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란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그녀는 연고가 없는 아파트 단지를 돌며 전단을 뿌렸고 안내 편지를 수없이 보냈다. 아파트 단지를 찾아가 무료점검 서비스도 했다.

그렇게 들어온 고객이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자다가도 달려가 해결해줬다. 사고 난 고객이 억울하다고 하면 현장을 찾아가 자료를 수집해 경찰을 설득하기도 했다.

고장난 차는 직접 고쳐서 갖다 줬다. 정비소에서 사례비라도 주려고 하면 그만큼 신경 써서 고쳐달라고 했다. 새 차를 사려는 사람에겐 딜러를 소개해줬다. 사례비를 주려고 하면 그만큼 고객에게 깎아주라고 했다. 그렇게 신뢰를 쌓으니 그들이 모두 고객이 됐다.

은행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은행을 연결해주면 또 은행이 고객이 됐다. 아는 한복집에 손님을 연결해 주면 또 거기서 손님을 보내줬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두 김 씨의 대변인이 됐다. 인적네트워킹이 커다란 자산인 셈이다.

그러나 보험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아무리 대리점이지만 회사에 손해가 되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실적이 쑥쑥 오르자 다른 보험사에서 좋은 조건을 내걸고 제안을 해오지만 김 씨는 미동도 않는다.

신뢰를 잃어선 결코 오래갈 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적이 수직으로 상승하고 최고의 대리점이 되기는 했지만 그녀는 가정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일요일과 김장하는 날 하루를 빼고는 어김없이 출근하지만 저녁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을 삼고 있다. 가족을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든든하게 버텨준 남편이 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그녀는 한편으로는 남편이 돈 때문에 유혹에 흔들리는 일 없이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큰 보람으로 알고 있다.

그녀는 영업을 하려면 예전의 나를 버리라고 한다. 아울러 크던 작던 모든 계약자를 고객님으로 모시라고 한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면 고객의 마음이 내게 온다는 것이다.

[정진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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