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산업의 힘

2009. 2. 28. 09:53분야별 성공 스토리

이 불황에도 수주 물량만 1조원 넘어 … 녹색 산업의 힘 !
[중앙일보] 2009년 02월 28일(토) 

[중앙일보 조민근.송봉근] ‘쿵쾅, 쿵쾅’. 이달 중순 부산 강서구 지사과학산업단지에 있는 평산의 생산공장. 9000t 규모의 프레스가 시뻘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내리찍자 묵직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섭씨 1800도로 가열된 철구조물들이 이동하며 후끈한 열기를 뿜어댔다. 지난해부터 가동된 2만4000㎡ 규모의 이 공장에선 금속을 두들겨 풍력발전기와 선박 엔진에 들어가는 대형 부품을 만들어 낸다. 한마디로 ‘거대한 대장간’이다. “고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강원석 공장장은 “요즘 같은 때 일하느라 힘든 건 오히려 복”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 녹색 성장은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매출에서 풍력발전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13%에서 지난해 76%로 커졌다. 같은 기간 매출도 566억원에서 5700억원(해외 자회사 포함)으로 10배가량으로 늘었다. 현재 풍력발전기 제조업체들에 수주를 받아 놓은 물량만 1조원이 훌쩍 넘는다. 김중명 회장은 “금융위기로 미국이 주춤거리고 있는 대신 중국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연초 이후 중국에서 긴급 주문이 들어오고 있어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발전기의 원통 몸체를 이어주는 이음매인 ‘타워플랜지’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32%)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다롄에 베어링 공장을 가동하고, 독일의 증속기 생산업체를 인수하는 등 부가가치가 더 높은 부품으로 생산품을 확대하고 있다.

방문객도 부쩍 늘었다. 원영수 IR 담당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만 해도 일주일에 3~4팀이 찾아 온다”고 말했다. 태웅·현진소재·태광·용현BM 등 인근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원래 선박 부품을 주로 만들던 회사다. 그러다 경기 침체로 수주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자 재빨리 풍력으로 방향을 틀며 새로운 성장 활로를 열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전 세계 풍력 단조부품 시장의 절반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올 들어서도 굵직굵직한 수주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인 조선사들에 부품을 대며 다진 탄탄한 제조기술에서 나온다. 기술에서는 일본에 밀리고, 가격에서는 중국에 치인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평산의 김 회장은 “설비 규모나 기술에서 중국에 앞서 있는 것은 물론 일본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은 단조업체부터 제품을 마무리하는 가공공장들이 밀집한 허브구조를 이루고 있어 원하는 제품을 원스톱으로 만들어 낸다”며 “이것이 바이어들이 부산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들이라고 글로벌 위기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평산의 경우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지만 원화가치 급락에 환손실을 보는 바람에 창사 이래 처음 적자를 냈다. 환헤지용 파생상품인 키코(KIKO)에서 손실이 난 데다 외화 차입금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련도 오래 가진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이종환 연구원은 “그간 손실을 털어낸 데다 이익 기반과 성장성이 탄탄하다”며 “올해 순이익에서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제조업체로는 드문 17% 선에 달했다. 평산은 올해 매출 예상치를 8700억원 선으로 늘려 잡았다.

전화위복일까. 유례없는 경제위기에 ‘그린 뉴딜’이라는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린 에너지 붐’은 10년 전의 정보기술(IT) 붐에 비유된다. 외환위기 당시 IT·벤처가 돌파구를 열었다면, ‘녹색 성장’이라는 희망의 바람은 동남쪽의 굴뚝기업들로부터 서서히 불어오는 양상이다. 제조업이라는 실물 바탕을 지니고 있어 거품으로 끝날 가능성도 작다는 분석이다. 한화증권 이충재 연구원은 “벤처는 성장 가능성만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풍력 부품업체들은 이미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도 발전기 제조에 뛰어들고 있다. 산업연구원 조창현 환경에너지팀장은 “풍력은 조선산업, 태양광은 반도체산업과 각각 기술적 연관성이 높다”며 “이미 마련된 기반 위에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고 새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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