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셰어링 확산 희망

2009. 3. 16. 07:00이슈 뉴스스크랩

윤증현 장관 “기업들 투자하라 … 우리 경제 가장 먼저 회복될 것”

[중앙일보] 2009년 03월 16일(월) 


[중앙일보 고현곤.이상렬.최현철 .김상선] 만난 사람 = 고현곤 경제정책 데스크

“우리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이 103%라는 것은 왕성한 투자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 아닙니까. 외환위기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보더라도 지금이 투자의 적기입니다.”

한국 경제의 야전사령관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요새 같은 때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야 세계에서 우리 경제가 가장 먼저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인터뷰 내내 ‘희망’을 강조했다. 최근 확산하는 ‘일자리 만들기 나누기’(잡 셰어링)에서 희망의 씨앗을 보았다고 밝혔다. 고통을 나눠 위기를 극복해내는 한민족 특유의 기질이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에 이어 최근 ‘잡 셰어링’에서 발현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잡 셰어링 기업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줄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국민은 수천년간 헤어나지 못했던 절대 빈곤을 타파하는 기적을 이뤄냈다”며 “(경제의) ‘봄날’은 결국 우리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윤 장관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영국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인 11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 장관 집무실에서 1시간30분간 이뤄졌다. 윤 장관 취임 후 첫 단독 인터뷰다.

-경기 상황이 어떻습니까.

“예측기관에서 올 1분기 성장률을 마이너스 6~마이너스8%로 전망한다는 보도가 있었지요. 다음 달 20일께 1분기 성장률이 나오면 시장에 충격이 클 텐데 걱정입니다.”

-30조원 규모로 알려진 ‘수퍼 추경’이 경기 흐름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추경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추경안이 4월에 국회를 통과하면 5월에 바로 집행하도록 준비 중입니다.”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호소가 많습니다. 언제쯤 경제가 회복될까요.

“외환위기 때 나라 바깥은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잘 추스려 일어서니 수출이 늘어나 ‘V’자형 회복이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수출시장이 얼어붙었습니다. 앞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얼마나 안정을 되찾느냐가 중요합니다. 다만 긍정적인 신호가 있습니다. 1월 광공업 생산이나 건설 투자, 서비스 생산 등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상황이 낫기도 하고요. 저는 노·사·정과 정치권이 노력을 합치면 조속한 회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투자가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돈을 쌓아두고도 쓰지 않는다고 봅니까.

“수익성이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는 게 기업입니다. 기업들도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겠지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정부는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는 등 역대 어느 정부보다 기업 활동의 족쇄를 제거했습니다. 이제는 기업들도 투자와 고용을 늘렸으면 합니다.”

-돌이켜보면 외환위기 때도 좋은 투자기회를 놓친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진로그룹 기억 납니까. 진로가 망해 캠코가 1250억원에 사들였어요. 그걸 골드먼삭스가 사서 1조원 이상 남기고 팔았습니다. 그때 진로 소주 마시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런 국민입니다. 엄청난 성장 에너지가 있지요. 국민이 진로 소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골드먼삭스가 미리 간파하고, 진로를 사들인 것이지요. 아마 통찰력 있는 기업은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판단할 겁니다. 기업이 왕성한 투자에 나서면 우리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회복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업 구조조정이 늦다는 지적은.

“부실이 현재화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했는지는 주거래은행이 가장 잘 압니다. ”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신빈곤층이 늘고 있습니다. 사회 안전망 강화가 시급한데요.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금액이 전달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같은 100만원이라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현금 구호, 공공근로, 저리 대출 등 세 가지 형태의 맞춤형 지원책을 내놓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특히 누수가 없는 복지 전달체계를 만들 겁니다.”

-일본은 전 국민에게 1만2000엔의 소비쿠폰을 지급했습니다만.

“그런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경기 진작에는 약간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원칙에는 맞지 않습니다.”

-다행히 잡 셰어링이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 민족은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런 게 없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떻게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뤘겠습니까. 잡 셰어링은 전 세계에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코리안 모델’로 발전·승화됐으면 합니다.”

-추가 감세를 할 의향은 없습니까.

“양도세는 완화하기로 했고, 상속·증여세 인하안은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50%에 육박하는 세율은 죽은 세율이라는 얘기가 있지요. 글로벌 마켓에선 모든 세율이 경쟁관계에 있는 만큼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검토돼야 합니다.”

글=이상렬·최현철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윤증현(63) 기획재정부 장관=한 달 전 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의 리더인 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시장과 맞서 싸우기보다 소통과 설득을 중시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지냈으며, 이로 인해 외환위기의 책임을 지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금산분리 완화, 생명보험사 상장을 적극 추진했다. 당시 정권 내 386 세력의 견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친시장, 친기업’ 발언을 자주 한 소신파로 통한다. 재정부 장관 취임 이후 따뜻한 인간미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으로 경제 부처를 이끌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실제로 동료와 선후배가 고초를 겪을 때면 눈물을 아끼지 않는다. 따르는 후배가 많아 ‘윤 다거(大哥:큰 형님이란 뜻의 중국말)’라는 별명이 있다.

▶고현곤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hyunk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