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신용등급 의미

2009. 3. 21. 06:54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정부는 지난 12일 6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반영한 민생안정 긴급지원대책을 발표하면서 금융 소외계층인 저(低)신용자대출상품을 확대해 서민금융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저신용자란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7~10등급 저신용자는 816만명으로 전년 말에 비해 50만명이 늘어났다.

현재 저신용자 대출상품을 취급하는 곳은 우리, 농협, 하나 등 5개 은행이고 국민, 신한 등 10개 은행이 계획하고 있다. 올 초부터 2000억원 한도 서민대출을 취급하고 있는 A은행의 경우 20일 현재 8억 7000만원(116건)의 실적을 올리는 데 그쳤다. 지난해 4월부터 100억원 한도로 대출 신청을 받고 있는 B은행도 현재까지 대출 실적은 10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달 영세사업자들을 위한 소상공인 대출 5000억원이 20여일 만에 바닥난 것과 대조된다.

실적이 부실한 건 정부의 바람과 달리 은행들은 연체나 부실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꺼리기 때문이다. 7~10등급 저신용자를 위한 상품이지만 실제 은행별로 별도의 신용등급 기준을 적용, 연체 경험이 있거나 소득이 불확실한 경우에는 대출을 거부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들은 "은행권 대출 경험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는 "현재 연체 중이거나 대출이 많을 때, 또는 신용정보 조회를 많이 한 사람은 심사에서 탈락시키고 있다."면서 "9~10등급의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히 대출을 위해 대부업체에 수십 차례 전화를 한 사람들은 하루 만에 신용등급이 최저 수준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저신용자 대출상품을 준비 중인 C은행 담당자는 "연체가 진행 중이거나 지금은 회복됐더라도 과거 신용불량자였다면 대출을 거부한다." 면서 "신용평가 기준이 7등급이더라도 내부 평가에 따라 10등급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돈이 떼일 게 뻔한데 위에서 하란다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대출상품을 준비 중인 D은행 담당자는 "저신용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황당한 문의도 많이 들어온다."면서 "저신용자에 대한 제대로 된 기준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득이 6000만원인데 7000만원을 빌려 달라고 하거나 소득도 없이 현금서비스·카드론으로 300만원을 연체해 돈 갚을 의지가 없는 사람도 있다고 소개했다.

신용등급을 다루는 업체 전문가는 "대략의 등급별 기준은 있지만 내부 기준이 수백가지여서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몇 등급이 되는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은행 관계자는 "위험 부담 때문에 일단 500억원 한도를 정해 놓았다."면서 "대출자가 많으면 다시 한도를 늘리겠지만 일단 정부 지시가 있으니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털어놨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