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보는 사회 문화..

2009. 4. 1. 09:04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마르틴 프로스트 파리7대학 동양학부 교수(왼쪽)와 셈 베르메르슈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지난달 30일 진달래와 개나리가 핀 서울대 교정을 걸으며 한국사회와 한국문화를 얘기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 한국서 한국학 연구하는 외국인 교수들 눈에 비친 한국

서울대 교수 셈 베르메르슈 & 마르틴 프로스트 파리7대학 교수


《“다문화사회라는 공적 담론은 선진국이라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은 이제 출발한 단계이니 갈 길이 멀지요.”(셈 베르메르슈 교수) “지금처럼 타협하는 사람에게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라고 비판해서는 갈등만 재생산되겠지요. 젊은층의 인식이 바뀌고 있으니 한국 사회는 점점 균형을 찾아갈 겁니다.”(마르틴 프로스트 교수) 푸른 눈의 한국학 연구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서울대 종교학과에서 고려불교사와 동아시아불교사를 가르치는 베르메르슈 교수와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프로스트 교수를 지난달 30일 서울대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두 교수는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이야기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문화의 특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베르메르슈=박사과정 때 연구하러 왔던 기간을 합하면 7, 8년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살다 보니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이젠 유럽에 가면 왜 그렇게 느린지 답답할 정도예요(그는 벨기에 태생이다). 한국에서는 주문을 하면 바로 나오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아요. 유럽에 가면 제 성격은 한국인과 비슷해집니다. 하지만 술과 노래문화는 (익숙해지기) 어려웠어요. 예전보다 술도 좀 늘고 노래도 좀 부릅니다. 하하.

▽프로스트=1979년 서울생활을 시작한 뒤 모두 10년 정도 한국에서 살았어요. 저 역시 ‘빨리빨리’ 문화가 인상적이었어요. 장단점이 있어요. 일을 신속하게 하는 것은 효율적인데 어떤 때에는 조금 여유 있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참, 한국 사람들 친절해요. 그래서 말도 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사회는 다문화 다인종사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다문화 수준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십니까.

▽프로스트=아직까지는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을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이 강합니다. 그들을 사회구성원으로 대하지 않으면 끼리끼리 살게 되지 않겠어요? 아시다시피 (모국) 프랑스에서는 톨레랑스(관용)가 ‘공적 담론’ 중 하나입니다. 톨레랑스를 교육받아도 실제 생활에서는 이방인들에게 배타적인 사람도 많지만 공적 담론을 통해 어떤 일이 바르다고 가르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베르메르슈=한국이 최근 다문화사회 문제를 적극 다루는 것은 글로벌 기준에서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제 고국인 벨기에의 공적 담론은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벨기에서도 많은 사람이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에 대한 차별의식이 강해요.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젊은 사람들의 의식이 (관용적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 문제에 있어 출발 단계여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의 다문화 이슈를 둘러싼 두 교수의 논의는 한국사회 내부의 이념과 계층 갈등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갈등이 심각하다는 우려와 결국 균형을 찾아가지 않겠느냐는 긍정적 전망도 함께 나왔다.

▽베르메르슈=그 단적인 예가 북한(대북정책)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이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 햇볕정책이 남북교류를 터놓을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보지만 그때는 북한의 잘못된 부분을 완전히 무시했어요. 지금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다시 갔습니다. 북한을 너무 소극적으로 대하고 있어요.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간 것 같아요. 벨기에와 프랑스도 좌·우파가 있지만 타협하고 함께 갑니다. 한국은 둘이 같이 섞여 가지 않는 듯해요. 타협하고 조금이라도 함께 가는 방향을 모색하고 그런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프로스트=한국에서는 ‘주장’을 하지 않으면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봐요. 의견을 앞으로 내놓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도…. 프랑스에서는 좌파와 우파 어느 한쪽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지면 지식인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다시 언론이 비판하면서 균형을 찾아갑니다. (타협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고 비판해서는 사회가 경직될 수밖에 없어요. 다행히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대화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한국의 저력에 대해 베르메르슈 교수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프로스트 교수는 “교육열이 하나의 요인같다”고 말했다.

▽베르메르슈=100년 전 학자들은 유교 때문에 중국과 한국이 침체됐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한국과 대만이 급성장하자 다시 유교문화 때문에 발전한다고 했지요. 어느 하나 때문에 한국이 발전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역사를 공부한 저로서는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 국제한국학센터가 있는) 이곳 규장각을 설치한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성했잖아요. 조선시대에 불과 2년 만에 그런 일을 해냈던 사례를 보면 한국인에게는 예전부터 거대한 프로젝트를 빠르게 해낼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스트=글쎄, 교육열 덕분이지 않을까요. 요즘 한국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갑니다. 많은 학생이 배우러 나가지요. 유학은 비단 지금의 현상만은 아니에요. 조선시대에도 중국으로 가서 불교를 배우고 신학문을 배우고 늘 그렇게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교육을 중시했지요. 한국 역사에서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밝히는 일도 연구해볼 만한 과제입니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베르메르슈=벨기에에서 중국문학을 공부했어요. 1990년대 중반 중국어를 배우려고 중국 안후이() 성의 작은 마을에서 살 때였습니다. 인근에 불교의 성산(·holy mountain)이 있었는데 그곳 사찰에서 모시는 지장보살이 김교각이라는 신라인이었지요. 신라나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던 시절이었지요. 당시 불교와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 불교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벨기에로 돌아가 한국 관련 정부장학금을 신청해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프로스트=저도 비슷해요. 파리7대학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다가 프랑스 정부장학금을 받고 1973년부터 3년 동안 도쿄()대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때 일본 언론을 통해 한국에 대해 알게 됐어요. 유학을 마친 뒤 1976년에 3주 정도 한국을 여행했는데 첫인상이 좋았습니다. 조용한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활력이 있었어요. ―세계에서 한국학의 연구 현황은 어떻습니까.

▽베르메르슈=중국학 및 일본학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큽니다. 한국학이 성장하려면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핵물질의 최소질량)’가 필요합니다. 분야별로 한국을 연구하는 외국인 학자 수가 일정 수준이 넘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현재 고려시대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자는 저를 포함해 두세 명, 신라는 불교연구자 한 명, 백제는 한두 명 수준이에요. 조선 초기를 연구하는 학자도 드물지요. 학자들이 분야별로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국학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에서 외국인 학자들을 초빙해 연구를 지원하는 일을 하는 것도 그런 취지입니다. ▽프로스트=요즘 프랑스에서는 한국지리학을 연구하는 학자, 판소리 연구자가 있습니다. 파리7대학 명예교수였던 고() 이옥 박사 덕분이지요. 전문가가 늘어나야 한국과 한국문화를 깊이 있게 소개할 수 있어요. 영화를 예로 들면 프랑스에서 김기덕 홍상수 감독은 유명하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다른 감독과 작품은 잘 몰라요. 한국 영화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가 프랑스에 없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프로스트 교수는 1일 동아일보가 창간 89주년을 맞는다고 하자 “한국에서 가장 즐겨보고 좋아하는 신문이 동아일보”라며 “생일 축하한다”고 말했다. 두 교수는 모두 “인터넷시대라고 하지만 신문 없이 못 사는 열혈 독자”라고 말했다.

▽프로스트=인터넷 때문에 신문의 미래를 걱정하는 말이 많은데 저는 만지며 읽을 수 있는 종이신문이 좋아요. (종이)신문 기사는 꼼꼼하게 읽는 즐거움을 주죠. 저는 지하철 선반에 자신이 읽은 신문을 올려놓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도 좋습니다. 누구든 꺼내서 읽으며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 멋지지 않나요.

▽베르메르슈=생일 축하합니다. 한국어 실력이 중급이어서 아직까지 한국 신문을 영어신문처럼 정확히 이해하며 읽지는 못합니다.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다면 좀 더 깊이 다루는 기사를 읽어야 하는데 그건 인터넷도 방송도 아닌 신문에서만 가능하지요. 좋은 기사 많이 써 주세요.

정리=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 마르틴 프로스트 교수

△1951년 프랑스 태생 △파리7대학 박사(동양언어학 전공) △1980∼1983년 연세대 불문과 교수 △1990년∼ 파리7대학 동양학부 교수 △1992∼1996년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정관 △2002년∼ 왕립 고등교육기관 ‘콜레주 드 프랑스’ 부속 한국학연구소장 △2009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펠로

● 셈 베르메르슈 교수

△1968년 벨기에 태생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박사(고려불교사 및 동아시아불교사 전공) △2002∼2003년 하버드대 박사후과정(post-doc) △2005∼2007년 계명대 초빙교수 △2008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겸 국제한국학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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