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네 다섯 식구의 기구한 삶

2009. 4. 12. 22:53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건물 옥상서 석달째 노숙… 소희네 다섯 식구의 기구한 삶

 

'집 없는 아이' 소희(가명·12·여). 초등학생인 소희는 날마다 학교에 가는 게 싫다. 역한 냄새가 난다며 놀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친구들이 노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도 두렵다. 그러다보니 소희는 이른 아침이면 공중화장실에서 찬물로라도 고양이 세수를 하고, 탈취제를 몸에 듬뿍 뿌린다.

서울 신길동 학원가 한 건물.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 앞 두 평 남짓한 공간에 소희네 다섯가족이 머물고 있다.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이 다 빠져나간 밤 10시30분쯤이면 소희네는 어김없이 건물 앞에서 만나 뒤꿈치를 들고 5층 꼭대기로 올라간다. 옥상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는 스티로폼과 이불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곳곳에 깨끗하게 비워진 컵라면 용기와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문제집이 흩어져 있다. 소희네가 사용하고 있는 생활용품의 전부다.

소희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전깃불도 없는 어두컴컴한 옥상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3개월째다. 맹추위가 계속됐던 지난 겨울에도 식구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이불 한 장으로 지냈다. 이마저도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건물 관리인의 배려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소희네 가족이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피해 6년 전 엄마 황모(37)씨는 딸 셋과 막내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았다. 아이들이 잠이 들 시간에는 음식점에 나가 서빙일을 도우면서 어렵사리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전세보증금 500만원 등 전 재산을 사기당하면서 인근 영화관 등을 전전하게 됐다.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전에 황씨는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추스르기조차 힘겨웠다고 털어놨다. 세상에 대한 원망은 말할 수 없이 커졌다. 황씨는 "대물림하지 말아야 할 가난을 물려줘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이렇게밖에 해줄 수 없는 나를 이해해주기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네 남매는 씩씩했다. 방과 후면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이리저리 노숙자들을 돕는 센터나 단체에서 나눠주는 식사로 근근이 끼니를 때웠다. 가끔 행인들이 쥐어주는 단돈 몇 천원을 모아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인근 여관에서 입고 있던 한벌의 옷을 손으로 빨고 편한 잠을 자기도 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제때 학교에 가지 못해 또래보다 두 살 많은 첫째딸 주희(가명·17)는 "3년만 있으면 내가 스무 살이니까 배고프지 않게 해줄게"라는 말을 동생들한테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소희는 "우리 네 남매의 꿈은 똑같이 한 가지, 돈 많이 벌어서 엄마한테 새 집을 사주는 것"이라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글·사진=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