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조정 2~3년 전망

2009. 4. 26. 11:22이슈 뉴스스크랩

바닥 친 뒤 한국 경제는?…완만한 U자형 전망 우세

매일경제 04/25 11:13
◆한국 경제 바닥 쳤나?◆

‘한국 경제는 U자형 곡선으로 완만하게 회복한다. 다만 밑바닥이 펑퍼짐한 모양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국내 경제전문가 30인의 설문을 토대로 매경이코노미가 내린 결론이다.

응답자 30명 가운데 20명이 U자형 경기 회복을 예측했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당당히 V자형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때보다 비관적이다. 바닥을 친 뒤 급속히 반등하는 V자형 곡선을 전망한 전문가는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단 한 명뿐이다. 그는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침체 정보가 빠르게 전해져 하강 속도가 빨랐는데 상승 속도도 비슷하게 빠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건을 달았다. “회복되더라도 경제위기 이전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 거품이 끼었던 만큼 성장폭은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같은 U자형이라고 답했어도 전문가들 사이에 ‘뉘앙스’ 차이가 꽤 크다. V자형에 가까운 U자형에서부터, 뒤집어진 사다리꼴처럼 완만한 U자형까지 다양했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은 긍정론을 앞세워 V자형에 가까운 U자형 회복을 전망했다. 하지만 대체적인 의견은 회복이 더딘, 바닥 넓은 U자형으로 모아진다. 살아나긴 하겠지만 위기의 골이 깊어 호락호락하게 오르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회복 시점을 짚자면 짧게 봐도 내년 상반기 이후다.

U자형
'금융ㆍ실물 복합 불황' 회복 더뎌
국내 경기 회복의 제1 변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의 회복이다. 서용원 현대증권(주가,차트) 리서치센터장의 분석이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지면서 전 세계 복합 불황을 낳았다. 과거 IT거품 붕괴 때보다 훨씬 여파가 컸다.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미국이 경기 부양책을 강하게 쓰고 있지만 고용 불안이 여전히 심각하다.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가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
문기훈 굿모닝신한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역에 따라 경기 회복에 시차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다른 국가보다는 빠르게 회복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2분기에 상승곡선을 탈 것이다. 반면 미국은 주택시장이 회복하고 소비가 늘어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내년 1분기는 돼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전망이라면 한국 경제 회복도 기다려야 한다.”

경기 회복이 더딘 원인을 세계 경제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한국 경제에 쌓인 문제도 많다. 특히 고용불안과 가계부채가 심각하다. 지난 3월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9만5000명이 줄었다. 10년 만에 최고의 감소폭이다. 실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하는 등 대량 실업 사태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

김선태 KB경제연구소 거시경제팀장도 이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고용 사정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며 “부양책으로 인한 상승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종현 우리투자증권(주가,차트) 리서치센터장도 “고용불안이 V자형 회복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 아킬레스건이 부채다. 국가부채 310조원과 가계부채 660조원을 합쳐 1000조원에 달한다. 치솟던 은행 대출 연체율은 다소 꺾였지만 여전히 안심하기는 이르다. 김선태 거시경제팀장은 “부채를 갚아가는 조정 기간이 적어도 2~3년은 이어질 수 있고 잠재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종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매우 완만한’ U자형 곡선을 전망했다.

그는 “미국과 함께 유럽 경제가 살아나야 하는데 유럽은 경기 부양에 써야 할 돈을 사회안전망 구축에 쓰고 있다. 경기 회복 속도가 늦은 이유”라고 주장했다.

L자형
부양책으로만 회복 못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 불황에 빠지는 L자형이나, 다시 한번 하강곡선을 그리는 W자형 경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많다.

L자형을 답한 전문가는 모두 5명. 물론 U자형이라고 답한 전문가보다 훨씬 비관적이다. 이창양 카이스트 경영공학 교수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강력한 위기를 맞아 외환위기 때보다 충격이 크다”고 우려했다.

“세계 경제 회복부터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 금융시장이 살아나도 실물경제가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또 V자형이나 U자형으로 반등하려면 세계 경제가 회복하는 동시에 국내 내수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하지만 수출시장이 위축됐고 중국과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게 분명하다. 여기에 가계부채 문제로 민간소비가 빠르게 반등하기도 어렵다. 성장률이 떨어져 이미 완만한 성장세가 예고되는 와중에 맞은 충격이라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종승 NH투자증권(주가,차트) 리서치센터장 얘기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2000년 이후 금융 레버리지가 심해졌다고 했다. 빚을 내 과잉 투자했다는 말이다.


“2000년 이후 산업 전 분야에 걸쳐 공급과잉 현상이 생겼다. 하지만 현재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없다. 금리 인하, 재정정책 등 수요진작책만 난무한다. 추가 하락을 막는 데 기여하겠지만 회복까지 기대하긴 어렵다. 세계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 한국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해운, 조선, 금융 등에서 추가적인 부실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조용두 포스코경영연구소 경제동향분석그룹장은 은행권 문제를 짚었다. 추가 부실을 우려한 은행들이 보수적으로 경영에 나서면 실물경제 회복이 매우 더뎌질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W자형
또 한 번 위기 온다
이른바 W자 형태의 ‘더블딥(Double dip)’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전문가도 4명에 달한다.

일단 상승하지만 곧 다시 추락하는 경기 이중하강 곡선을 말한다. 특히 리서치센터장들이 이 점을 지적했다. 전체 11명 응답자 가운데 3명이 이렇게 답했다. 박희운 KT(주가,차트)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분석은 이렇다.

“경기 부양책으로 돈이 풀려 경기가 살아날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언제라도 후퇴할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는 일정한 추세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기는 짧아지고 진폭이 커질 것이다. 인플레이션 우려마저 불거져 한 번 더 꺾였다가 오르는 곡선을 보일 것이다.”
홍성국 대우증권(주가,차트) 리서치센터장도 “설비과잉, 주택과잉, 역사상 최고 수준의 부채 등 근본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남았다”고 지적하며 “경기가 회복될수록 달러도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학주 삼성증권(주가,차트) 리서치센터장은 “첫 번째 충격이 투자은행에서 왔다면 두 번째 충격은 기업부실에 이어 상업은행에서 불거질 수 있다. 과잉설비의 축소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답했다.

[명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