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어도 살수없는 파텍필립

2009. 7. 11. 09:05분야별 성공 스토리

돈 있어도 살수없는 파텍필립
4억원 호가…3년 기다려도 대기명단에도 못올라

◆명품시계 이야기 (1)◆

남자들에게 시계는 어떤 의미일까. 시계 마니아들은 "시계는 곧 인격"이라고 정의한다. 예컨대 수천억 원대 자산가가 롤렉스 빈티지를 차고 있다면 검소하고 소탈한 성품이겠거니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패션, 와인, 수입차에 이어 명품시계가 남성 트렌드에서 핫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휴대폰을 들고 다니게 되면서 시계를 안 찬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한편에서는 갖고 싶은 시계를 못 사서 안달하는 마니아층이 생겨나고 있다. 여성들이 명품 가방에 열광하듯 남성 세계에서도 명품시계 사랑이 시작됐다. 재미있고도 깊이 있는 명품시계 이야기를 연재한다.

일전에 스위스 시계박람회인 `바젤` 페어에서 만난 노신사는 자신을 `시계 컬렉터`라고 소개했다. 중소기업 오너인 그는 매년 바젤이나 SIHH(고급 시계 박람회)에 와서 새로 나온 시계들을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제품은 사간다고 했다. 그에게 최고 시계가 무엇인지 묻자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이라는 말이 바로 나왔다.

30대 초반인 한 젊은 사업가는 파텍 필립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워치인 `5078`(시가 4억원)을 사기 위해 3년 전부터 스위스 본사와 세 차례 접촉했다. 그 시계를 왜 사고 싶어 하는지, 그동안 어떤 시계들을 경험해 봤는지, 갖고 있는 시계 목록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상세하게 인터뷰를 했다. 10대 시절부터 시계 매력에 빠져 `파네라이` 등 명품 시계를 수십 개 보유하고 있는 그였지만 아직까지 5078을 팔겠다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는 "구하기 힘들다는 에르메스 벌킨 가방은 웨이팅 리스트(대기자 명단)라도 있지 않습니까. 5078은 언제쯤 주겠다는 언급조차도 없으니 애가 탑니다"고 말한다.

그는 파텍 필립을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 "미닛 리피트(현재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가 뛰어나고, 무엇보다 클래식이 느껴지는 심플한 디자인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시계 마니아들은 최고 시계로 파텍 필립을 꼽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 자체적으로 만든 품질인증 실(Seal) 도입

= 최근 스위스 제네바를 기반으로 한 고급 시계업계에서 최대 이슈는 파텍 필립이 `제네바 실(seal)`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자체 품질인증 마크인 `파텍 필립 실`을 사용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1886년에 탄생한 제네바 실은 시계 무브먼트에 `제네바`라고 새겨진 품질보증 인증마크다. 이 실을 받으려면 12가지 항목으로 된 까다로운 규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파텍 필립 측은 "우리는 이미 제네바 실이 요구하는 이상을 실행하고 있다"면서 "제네바 실보다 더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력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파텍 필립은 1839년 키 없는 시계를 최초로 만들어낸 아드리안 필립과 그 재능을 알아본 폴란드 망명 귀족 안토인 노베르트 드 파텍이 설립했다. 창업자 두 사람 이름을 따서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당시 괘종시계는 키를 끼워 태엽을 감았는데, 아드리안 필립은 지금과 같은 용두(크라운)를 개발해낸 인물이다. 1932년 미국에서 `헨리 스턴 워치` 에이전시를 운영하던 현 경영주 스턴 패밀리가 인수했으며 오늘날 가족 경영과 소유를 겸한 몇 안되는 제네바 시계 제조회사다.

◆ 정교한 컴플리케이션 워치의 리더

=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파텍 필립이 시계 부문 왕좌를 지킬 수 있게 만든 분야다. 윤년이나 월의 길이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날짜를 바꾸는 영구 캘린더, 복잡한 구조로 된 크로노그래프, 지정된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별의 시간 측정과 일출ㆍ일몰, 12궁도를 포함하고 있는 천문학적 컴플리케이션을 담고 있다. 달걀만 한 시계 속에 그 많은 기능을 담으면서 하루 동안 최대 3초 이상 늦거나 빠르게 가는 것도 단 2초만 허용할 정도로 정확성을 지켜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올해 파텍 필립은 2006년 출시해 컴플리케이션 워치 중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5960 애뉴얼 캘린더` 신제품을 내놨다. 로즈골드 케이스에 어두운 실버그레이 다이얼 색상이 매력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 제품은 30일과 31일을 자동으로 구분하며 매년 3월 1일 오직 한 번만 날짜 조정을 하면 된다.

시계 마니아들은 1초도 차이가 나지 않는 디지털 시계 대신 매번 태엽을 감아주어야 하는 기계식 시계를 찾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살아 움직이지 못하니까."

[김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