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발언 중 예산

2009. 8. 5. 09:40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여기도 지원… 저기도 지원… 잇단 ‘위험한 약속’

[동아일보] 2009년 08월 05일(수) 오전 02:56 


[동아일보]
■ 이명박 정부 내년 재정건전성 시험대에

친서민-국책사업 본격화… 부처 요구액 갈수록 늘어

세수 부족 속 부담 가중… 예산당국 해법찾기 고민

내년에 집권 3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제위기 탓에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되고 세수(稅收) 부족이 심각한 상태지만 경제 정책 기조를 ‘확장’에서 단숨에 ‘긴축’으로 바꿀 경우 경제에 미칠 충격이 클 수 있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선택하기 쉽지 않다. 더욱이 정부 각 부처들의 예산요구액은 갈수록 늘고 있고 ‘친(親)서민’을 강조하는 새로운 복지정책이 앞을 다퉈 발표되면서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돈은 부족한데 쓸 곳은 많아”

정부는 내년부터 대규모 재정 투입이 필요한 국책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역점사업은 4대강 살리기를 포함한 녹색성장 대책으로 올해 이미 17조5000억 원이 투입된 데 이어 내년부터 2011년까지 2년간 48조3000억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예산당국은 당장 내년에 배정할 예산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국토해양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들은 올해 예산에서 약 7조 원을 더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지갑을 가볍게 할 법인세와 소득세의 2단계 감세(減稅)도 계획대로 진행된다.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은 올해 각각 22%, 35%에서 20%, 33%로 낮아져 약 13조 원이 덜 걷힐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달 초에는 내년부터 신(新)성장동력 및 원천기술을 위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혜택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으로까지 확대하고 정부의 R&D 재정투자도 2013년까지 연평균 10.5%씩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이처럼 곳간을 풀기 위해선 재정이 튼튼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획재정부전체 국세(國稅)의 약 85%를 차지하는 내국세 수입이 내년 130조5000억 원으로 올해(130조400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초 올해 내국세 수입 전망이 141조8000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년 연속 11조 원대의 세수가 증발해 2007년 수준(130조2000억 원)으로 후퇴할 것으로 예상한 셈이다.

○ 슬금슬금 늘어나는 복지사업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에는 친서민 행보를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침에 맞춰 서민층을 위한 복지성 예산사업까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서울 관악구의 한 보육시설을 찾은 자리에서 “부부 소득 합산 방식을 개선해서 맞벌이 부부가 보육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자 내년에 25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맞벌이 부부 보육비용 경감 대책이 나왔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상습 수해지역 주민들이 안전한 지역에 모여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해당 부처가 강원 산간지역 등 상습 수해지역 주민의 이주대책을 구체화하면 예산을 추가로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각의 복지성 예산사업은 나름대로 도입 필요성이 있지만 재정건전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되는 탓에 예산당국의 고민은 깊어진다. 이미 정부는 6월 중순 현재 249개에 이르는 복지사업을 159개로 대폭 정비한다고 발표해 놓고도 이후 복지성 예산사업을 하나둘씩 늘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6월 30일에는 ‘하반기 달라지는 서민생활’ 대책을 통해 9개의 신규사업을, 7월 28일 생활공감정책을 통해 15개의 사회복지분야 사업을 각각 발표했다. 모든 신규사업이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지사업의 특성상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워 재정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내년 재정이 더욱 문제”

정부가 한번 씀씀이를 늘리면 좀처럼 줄이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내년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올해 재정지출을 크게 늘린 탓에 재정적자(관리대상수지 기준)는 지난해(16조6000억 원)의 3배가 넘는 51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당분간 확장적 정책 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어 내년에도 수십조 원의 재정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채무 역시 같은 기간 308조3000억 원(국내총생산·GDP 대비 30.1%)에서 366조 원(35.6%)에 이르고 내년에는 400조 원(40%)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OECD 회원국 평균(80%)보다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2000∼2009년 증가 속도는 회원국 중 6번째로 높아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의 신용평가회사들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는 사회여서 재정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있지 않으면 재정건전성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