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경기도교육감 ‘외로운 싸움’

2009. 8. 7. 09:12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포커스]김상곤 경기도교육감 ‘외로운 싸움’

위클리경향 | 입력 2009.08.06 16:35

ㆍ진보 색채 선명한 교육정책, 기득권 보호세력 벽에 부닥쳐

서울 집중 현상이 유난히 강한 우리 사회에서 지역의 교육 현안이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경기도교육위원회가 무상급식 예산안을 절반으로 삭감한 지난 6월23일 이후 경기도 교육계는 비판과 지지, 기대와 좌절이 교차하는 뜨거운 한 달을 보냈다.

↑ 7월21일 오전 경기도 도의회 건물 안에서 도의회 야당 의원들이 무상급식 예산안 삭감에 항의하는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원식 기자>

도교육위에서 반토막 난 무상급식 예산은 7월10일 도의회 교육위원회와 7월22일 도의회 본회의를 거치면서 전액 삭감됐다. 이 지역 야당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두고 정책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는 무관한 '진보교육감 길들이기'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처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이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쇳말은 김상곤 교육감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경기도 교육감 선거 때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진보진영은 지난해 7월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반MB 교육을 내걸고 출마한 주경복 후보가 공정택 후보에게 패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촛불로 달궈진 반MB 민심을 투표를 통해 집결해 냄으로써 정부의 일방독주에 제동을 건다는 희망이 거꾸러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8일 경기도 교육감 선거 결과가 이목을 끈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진보교육감 출현에 지역 교육계 긴장


선거 결과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주경복 학습' 효과의 덕을 볼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예상보다 표차가 컸다. 투표율(12.3%)은 역대 교육감 선거 가운데 가장 낮았지만 김진춘 전 교육감을 7만4000표(7.2%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후보들 중 가장 늦게 선거전에 뛰어들었다는 점과 선거 전의 낮은 인지도를 고려할 때 '의외의 승리'라는 평가가 어색하지 않았다.

'김상곤'이라는 이름에는 정책과 현실의 양면에서 '진보 교육감' '개혁 교육감'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김 교육감은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경기희망교육연대'가 선정한 '범도민 후보'였다. 선거대책위원회도 정당, 시민단체, 노동단체 인사들이 뒤섞인 '진보 연합군'으로 꾸려졌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대표하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김 교육감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김 교육감은 교육정책에서도 진보적 색채를 선명하게 내세웠다. 김 교육감은 처음부터 'MB식 특권교육 반대'를 선거 구호로 내걸었다. 현 정부가 공교육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내놓은 반면에 김 교육감은 자율형사립고와 특목고 확대는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줄세우기식 경쟁 교육을 지양하고 평준화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낸 것도 '진보 교육감' 이미지 형성에 한몫했다.

반면에 김진춘 전 교육감은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102개 보수단체, 한국노총, 도내 127개 사립학교 이사장들로 이뤄진 한국 사립초중고교법인협의회의 지지를 받아 선거를 치렀다. 결국 선거는 진보 대 보수 구도 하에서 진보 교육감 후보의 승리로 끝난 셈이다.

이처럼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대립 구도로 치러진 선거를 통해 당선한 진보교육감의 출현은 지역 교육계에 긴장감을 조성했다. 그 첫 신호는 김 교육감 취임 직전에 도교육청의 업무보고에서 터져나왔다. 도교육청이 4월22일 김상곤 당시 교육감 당선자 취임준비팀에 대한 업무보고를 거부한 것이다.

도교육청 기획예산과 간부들은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던 업무보고를 위해 도교육정보연구원에 대기하고 있다가 10시5분쯤 교육청으로 되돌아갔다. "보고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사건은 직선 교육감 당선자에 대한 업무 인수인계 절차가 규정돼 있지 않아 생긴 해프닝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교육청 관료들이 기존 교육계 출신이 아닌 김상곤 당선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지역의 기존 교육계 인사들과 진보교육감 사이의 불협화음은 도교육위원회 교육위원들과 김 교육감 사이의 관계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현직교사, 장학사, 교육장 등 대부분 20년 이상 초·중등 교육현장 경력을 지닌 지역 교육계의 실세라 할 수 있는 교육위원들은 도교육청과 여러 차례 의견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몇몇 경우에는 은연중에 보수적 색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교육위원들 반감 노골적 드러내

김 교육감과 교육위원들의 공식적인 첫 대면은 5월18일에 열린 제199회 경기도 교육위원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였다. 김 교육감의 주요 시책 보고와 교육청 실무자들의 업무보고, 교육위원들의 질의로 이뤄진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10분에 시작해 오후 6시 무렵이 돼서야 끝났다. 김 교육감은 이 자리에서 "임기 동안 추진해야 할 다양한 시책 중에서도 혁신학교, 무상급식 확대, 고교평준화 확대를 3대 핵심정책으로 설정해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무상급식 3단계 추진 방안' 등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보고했다. 이후 국·실별 실무자에 대한 질의에서 조돈창 교육위원은 "3대 핵심 20개 공약사업 중 무상급식 확대는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발언했다. 도교육청이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급식예산에 사용할 예산을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6월15일에 열린 제200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회의록을 보면 김상곤 교육감의 교육철학에 대한 교육위원들의 반감이 한층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이날 한상국 교육위원은 교육감에 대한 질의에서 '교육감께서는 무상급식 공약과 서울대 출신이라는 프로필' 때문에 '운좋게' 교육감에 당선됐다고 전제한 후 "전부 직장생활을 해서 그나마 한 끼를 식구가 함께 앉아서 먹고 있다. 그런 아침까지 무상급식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어지는 그의 발언이다.

"우리 김상곤 교육감은 MB정부 교육정책도 반대하신 분입니다. 저는 요즘 학교행사에서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학교행사를 하면 국민의례에서 애국가 제창이 있을 때 (학생들이) 장난치고 있습니다. 경기도 교육이 이렇습니다. 교육감께 여쭙겠습니다. 우리 단체 중에서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 단체가 있습니다. 전국소년체전 개회식 때 가서 보면 선수라는 학생들이 30분을 서 있지 못합니다. 이래도 운동장 조회를 안 해야 합니까? 이러고 경기교육을 해야 합니까?"

도교육위원들이 교육감이나 교육청 실무자를 상대로 날카로운 질의를 던지는 것은 집행기관인 교육청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도교육위 본연의 역할이다. 그러나 최창의 교육위원은 김상곤 교육감 체제가 들어선 이후 도교육위의 분위기는 이전 교육감 시절과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고 전했다. 그는 "교육위원이 된 후 지금까지 세 명의 교육감을 겪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예산 심의 때 질의 내용과 방식이 앞선 두 교육감 때와는 현격하게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무리 견제 기능이 있다고 하지만 정책과 관계없는 음해성 억측이 많이 나왔다. 과거와 달리 교육감에 대한 호칭이 '교육감님'과 '당신'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면서 "참여정부 때 교육위원들이 모였다 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욕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 도교육청 관계자는 김상곤 교육감에 대한 기존 교육계 인사들의 경직된 태도는 김상곤 교육감이 그만큼 '새로운 유형의 교육감'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교육계에서 관료 생활을 했던 사람이 교육감이 됐던 기존 관행과 달리 도민 직선으로 개혁 성향 교육감이 등장하면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교육계는 보수적인 세계다. 튀는 것을 경원시하고,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강하다. 개혁 성향 교육감의 등장으로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 성향 교육감에 대한 정서적 불협화음과 교육감이 내놓는 정책의 타당성은 서로 분리돼야 한다. 그러나 무상급식에 관한 한 경기도교육위원회와 도의회는 정책 타당성보다 '진보교육감 길들이기'에 더 기울어져 있다. 이 점은 경남도의 사례에 비추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남도교육청은 지난 7월16일 1708억원을 들여 내년부터 도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남도교육위와 도의회는 도교육청이 올린 예산을 그대로 승인했다. 정치적 성향에 따른 도교육위원과 도의회 의원, 지자체 단체장 들의 구성비가 경기도와 비슷한 경남에서는 문제없이 통과된 무상급식안이 왜 경기도에서는 좌초한 것일까. 박종훈 경남도교육위원은 "경기도는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이지 교육적인 판단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교육위원회가 교육감 말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면서 "경기도와 경남의 차이는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감이냐 그렇지 않은 교육감이냐의 차이이고, 진보진영 교육감에 대한 보수진영의 견제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무상급식 반대는 '교육감 길들이기'

경기도교육위원들과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경기도교육청의 무상급식 안에 반대하면서 내세운 논리 중 하나는 '도·농간 형평성의 부재'였다. 도교육청 무상급식 1단계 안은 올해 2학기에는 도서벽지, 농·산·어촌, 300명 이하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도 교육위와 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은 시골의 넉넉한 아이들이 도시의 가난한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혜를 받게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박종훈 교육위원은 "무상급식을 시행하려면 대상을 범주화해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게 맞다"면서 "경기도교육위와 도의회가 지적한 문제는 단계적 시행 과정에서 생기는 부분적 부작용으로써 군색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비판처럼 무상급식 안이 교육행정의 최상위에 놓여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경남도교육위원회의 한 교육위원은 "교육청이 쓸 수 있는 예산은 한정돼 있다. 무상급식에만 몰입하면 다른 데 들어가는 예산이 빌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부분은 인정할 필요도 있다. 현실적으로 무상급식 추진에 그늘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무상급식만이 아니라 김상곤 교육감이 내건 핵심공약 사항인 혁신학교 관련 예산과 학생 인권 조례 추진 예산도 삭감됐다. 혁신학교는 전액 삭감되고 인권 조례는 반으로 줄었다. 핵심공약의 허리가 꺾인 지금으로서는 2010년도 본예산에 승부를 거는 수밖에 없다.

도교육위원회와 도의회의 인적 구성은 본예산 심의가 이뤄지는 10월에도 그대로다. 관건은 인사다. 정책 집행에 필요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실무진의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김 교육감의 철학을 구현할 사람이 교육청 내부에 거의 없다. 김 교육감과 코드가 잘 맞는 사람들은 현장 교사들이다. 그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남은 길은 하나다. 이재삼 교육위원은 "이해와 설득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쉽지 않겠지만 도교육위원회 내부에는 어느 정도 동의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창의 교육위원은 "이번에 무상급식 안이 이슈가 되면서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시민이 관심을 보여줬다. 도교육청도 이러한 시민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도교육위원들과 도의회를 상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