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발주물량 절반 싹쓸이…한국조선 '10년 아성' 흔들

2009. 9. 13. 19:36이슈 뉴스스크랩

中, 발주물량 절반 싹쓸이…한국조선 '10년 아성' 흔들
[한국경제신문] 2009년 09월 13일(일) 오후 06:05   가| 이메일| 프린트
한국 수출산업 최고의 '달러박스'로 통해온 조선업이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적인 발주량 감소 속에서 저가 수주 전략을 앞세운 중국의 추격이 가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수주 급감으로 주요 업체들의 자금사정도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국내 업계는 아직 2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는 있다. 그러나 세계 해운경기가 장기 불황 조짐을 보이고 있어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수주가뭄 현상이 해갈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양상이 지속될 경우 '수주잔량 감소→중국과의 출혈경쟁→채산성 악화→구조조정 돌입→산업경쟁력 약화'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한국 추월하나
지난달 말 중국 조선업계는 경합을 벌여온 한국 조선사들을 제치고 이란 국영 해운사인 NITC사가 발주한 선박을 싹쓸이했다. 상하이조선과 다롄조선 등 중견 조선사 2곳이 32만DWT(재화중량t수)급 초대형 유조선(VLCC) 12척을 척당 1억달러에 수주하는 데 성공한 것.

중국 조선사 2곳이 국내 조선업체들을 가뿐하게 따돌린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다. 국영 은행인 중국수출입은행이 배를 발주한 NITC사에 선가의 90%에 해당하는 규모의 선박금융 지원을 약속한 것.선수금도 아닌 전체 배 값의 대부분을 오히려 선주에게 대출해준 것이다. 당시 중국 조선사들이 제시한 선박 수주 가격은 국내 조선업체들이 제시한 수준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선박금융을 앞세워 선주들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중국 조선업체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연이어 선박 건조 계약을 따내고 있다. 지난 7월에만 110만CGT(표준화물선환산t수)를 수주,전 세계 수주량의 70%를 싹쓸이했다. 반면 세계 1위인 현대중공업은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지난해 9월 수주잔량이 총 540척,625억달러에 달했지만 이달 기준으로 382척,497억달러로 대폭 감소했다. 삼성중공업대우조선도 처지는 비슷하다. 중국의 저가 수주 공세를 방치할 경우 기존 수주물량이 모두 소화되는 2년여 뒤에는 일손을 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상 최악의 수주실적
국내 조선업계의 올해 선박 실적은 '참담한' 수준이다. 대형 조선업체들마다 연초에 세웠던 수주 계획의 10분의 1도 달성하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166억달러의 수주 계획을 세웠지만,경비함 등 지금까지 고작 19억달러어치의 선박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각각 100억달러의 수주 목표를 세운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6억8000만달러짜리 LNG-FPSO(천연가스 생산 및 저장시설) 한 척,대우조선은 3억달러 상당의 여객선이 전부다.

STX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한진중공업 등 중견 조선업체들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그동안 해양부문이나 특수선 등에서 수주 명맥을 겨우 이어왔지만 대부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생 중소 조선사들은 이미 문을 닫기 시작한 지 오래다. C&중공업 녹봉조선 진세조선 등은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를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 이에 따라 대형 조선업체들조차 단기 유동성이 악화되고 있다.

◆수입은 줄고,지출은 늘고…
보통 대형 조선업체들은 업체마다 후판(선박 건조용 강재) 구매비용 등으로 분기당 1조~2조원 이상의 신규 운영자금을 투입한다. 이 돈은 대부분 신규 계약을 따내는 즉시 수주금액의 20%에 달하는 선수금과 네 차례로 나눠받는 중도금으로 스케줄에 맞춰 충당한다. 하지만 신규 수주가 끊기면서 선수금이 들어오지 않는 데다,이미 수주한 선박의 건조대금 유입마저도 발주사의 요청으로 늦춰지면서 단기 자금 운영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형 조선업체들의 현금성 자산은 대폭 줄어드는 반면 매출채권은 늘고 있다. 매출채권은 매출이 일어났지만 대금을 회수하지 못한 '외상'을 뜻한다. 지난 2007년 회사마다 1조~2조원대에 머물던 대형 조선업체들의 매출채권 규모는 4조~5조원 수준으로 늘어났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