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영웅 최신원 SKC 회장

2009. 10. 22. 09:46분야별 성공 스토리

“‘이 공장은 나 아닌 국민의 것’ 선친 말씀, 귀에 쟁쟁”

‘사랑·희망 전령사’ 릴레이 인터뷰 - 美포브스 선정 기부영웅 최신원 SKC 회장
김병직기자 bjkim@munhwa.com

사진=김동훈기자
[인터뷰=김병직 경제산업부장]

SKC 직원들은 최신원(57) SKC 회장을 ‘카리스마 최’라고 부른다. ‘독사’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대기업 총수로서는 이례적으로 해병대 출신인데다, 외아들도 해병대를 제대한 해병대 가족이다. “고생을 좀 해봐야 사람이 된다”는 신념이 확고하다. 회사 경영에 있어서도 ‘패기’와 ‘열정’을 강조한다.

언뜻 보기에 ‘사랑과 나눔’과는 ‘담을 쌓고(?)’ 지낼 것 같은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SKC 회장실에서 만난 그는 “나눔은 기업과 사회지도층의 의무”라며 ‘행복 나누기’를 위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 나눔은 선친의 유지(遺志)

최 회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대기업 회장으로는 처음으로 가입하며 다양한 기부를 해왔다. 올 3월에는 미국 ‘포브스’로부터 ‘기부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개인 기부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배경이 궁금했다.

“저의 할아버님은 물론 SK 창업주이신 선친(고 최종건 회장)께서는 어려운 이웃을 보면 항상 도와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어른이셨습니다. 이런 어르신들의 활동을 어려서부터 봐온 것이 자연스럽게 제 기부와 봉사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 있어서 기부와 봉사는 세상을 통해 제가 받은 것을 다시 환원해 나눈다는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주변을 돌아보며 서로 돕고 나누면서 살아가야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겠어요.”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실질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행복을 나누는 것이 기업인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최 회장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2004년 설립한 ‘선경최종건재단’을 통한 장학사업을 또 다른 제 업(業)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며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는 “이 재단을 통해 현재 27개 고교 2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장학생들에게도 나눔의 뜻을 전파하기 위해 김장나눔이나 장애시설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에 반드시 동참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제2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술학교 설립이 꿈

최 회장과 얘기하다 보니 무언가 하고자 하는 게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이나 소망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선친의 이야기를 꺼냈다.

“SK그룹 사료에 보존된 테이프에 담긴 선친의 육성을 잠시 인용해보겠습니다. ‘내가 기업을 하고 있지만 저 공장은, 저 재산은 저 개인의 것이 아니고 국민의 것입니다. 또 종업원의 발전이 회사의 발전이요, 회사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입니다’.이 두 마디에 선친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선친께서는 기업 발전의 초석을 이룰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파악하셨고, 이들에 의해 성장한 기업이 곧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며 “장기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후대에 알리고 또 선친의 유지인 기술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기술학교’ 설립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자 그는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것처럼, 저 또한 이러한 목표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대학 설립이 아니라 KIST처럼 대학을 나와서 대학원 형식으로 진학할 수 있는 전문 기술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경영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해병대 정신’

최 회장과 별세한 최 회장의 형(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 모두 해병대 출신이다. 최 회장의 외아들인 성환(28)씨도 해병대를 제대했으니 말 그대로 ‘해병대 가족’이다. 아들에게 해병대 입대를 권유한 이유를 물었더니 “군대에서 고생을 좀 해봐야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속칭 힘 있고 백 있으면 군대에 안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일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며 “군 생활을 통해 어려움을 겪어봐야 후에 남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해병대 정신은 경영현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SKC의 모든 임직원들은 3년에 1번씩 해병대 캠프에 다녀온다. 최 회장은 “매년 하고 싶지만 (직원들이) 도망갈까 봐…”라며 빙그레 웃었다.

최 회장은 “SKC 노사가 지난 2007년 ‘항구적 무분규 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진정한 화합과 가족적인 단결 도모를 중시하는 해병대 정신과 일맥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점심 식사 후 틈나는 대로 주변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재래시장에서 무엇을 찾는 것일까.

“재래시장에 가보면 삶의 활력과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죠.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남대문시장에 가보라고….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다시금 살고자 하는 희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 가장 아쉬웠던 선택… 가장 잘한 선택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최 회장이 지내온 삶 속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선택과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선택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슬쩍 물었더니 그는 SK상사(현 SK네트웍스)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가장 아쉬워하는 선택은 지난 1999년 SK상사에 SK유통을 합병시켜 준 것입니다. SK유통은 제가 독자적으로 책임경영을 했던 첫 회사여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던 데다 당시 상당한 규모의 현금을 갖고 있었던 알짜 회사였어요. 그런데 당시 그룹의 모태인 SK상사가 어렵게 되자 그룹에서 유통과 상사의 합병을 제의해왔는데 딱 2시간 듣고 아무 조건 없이 OK 했습니다. 창업자의 아들인 제가 선친의 손길로 설립되고 선친의 땀과 열정으로 키워진 모기업이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어찌 외면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 후에 SK글로벌사태로 귀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의 결정을 매우 아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당시의 선택은 또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며 “창업자의 아들이 모기업이 어렵다고 하는데 합병을 반대했다면 창업자 집안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결과가 나쁘긴 했지만 제 처지에서는 꼭 해야 할 선택이었던 셈이지요. 그게 바로 아버님의 창업정신을 살리고 그룹을 위하는 길이었으니까요.”

김병직 경제산업부장 bj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