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공회 신자 품에 안는다

2009. 10. 23. 09:14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가톨릭, 성공회 신자 품에 안는다
교황령 발표, 사제·신도 원할 경우 받아들이기로
고유 전례도 허용…영 언론 “성공회 타격 입을것”

 

로마 가톨릭 교회(천주교)가 성공회 교회의 사제와 신자를 가톨릭으로 받아들이되, 성공회 고유의 전례와 전통을 허용하기로 했다. <가디언>은 “16세기 종교개혁 운동 이후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해 나갔던 특정 종교 공동체가 전부 가톨릭과 재통합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교황청은 20일 “세계 각지 성공회 성직자와 신도 그룹들로부터 가톨릭 교회와 온전하고 분명한 일체가 되기를 원하는 다양한 요청에 응답한다”며 교황령을 발표했다. 동시에 이날 영국에선 로언 윌리엄스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와 웨스트민스터 가톨릭 교구의 빈센트 니컬스 주교의 공동 기자회견도 열려 이런 방침을 확인했다.

 

‘개인 교구’를 허용한 이번 교황령에 따라, 원하는 성공회 사제들이나 신자들은 가톨릭교도로 인정받아 자신들의 전례를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결혼한 성공회 사제들은 주교는 될 수 없지만 가톨릭 신부로 인정받으며, 성공회 기도서도 전례에 쓸 수 있다. 가톨릭으로서도 ‘대담하고 흥미로운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에 이번 조처가 최근 몇년간 여성, 동성애자의 사제 서품 문제를 두고 반대해온 성공회의 전통주의자들을 끌어들이는 의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전통성공회공동체(TAC)와 같은 그룹을 비롯한 일부 보수적 세력들은 최근 몇년간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교황청에 성공회 신자들을 쉽게 받아들이는 길을 열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이런 가운데 나온 이번 방침으로 성공회 안, 또는 다른 기독교 계열 종교에서도 앞으로 논란이 일 가능성은 높다.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교황청 발표 몇주 전에야 이런 내용을 통보받았다. 그는 이번 결정이 “성공회 문제에 대한 교황청의 어떤 특정한 의미의 코멘터리로 봐선 안 된다”며 두 교회 사이에 ‘정례적인 관계’의 하나라고 강조했지만,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세계성공회공동체의 공식 웹사이트(anglicancommunion.org) 또한 “이번 방침은 로마 가톨릭과 성공회 교회 사이 교회일치(에큐메니컬)를 위한 대화의 한 결과”라고 밝혔지만, 영국 언론들은 성공회의 분열을 막으려던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노력이 교황청에 ‘선수’를 빼앗겨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성공회는 16세기에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교황 클레멘트 7세에게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청원했다가 거절당한 뒤 가톨릭과 결별을 선언하면서 설립됐으며, 전세계 신자는 8000만명 정도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대표 격이긴 하지만, 전세계 38개의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지역교회로 이뤄져 있어 이번 방침에 대한 선택은 다양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