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제지표. 가정경제 지표

2009. 10. 29. 08:36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한국 경제의 3분기 성장률이 전분기대비 2.9퍼센트를 기록하며 2분기의 놀라운 성장률마저 뛰어넘었다. 전년동기대비로도 0.6퍼센트 성장해 1년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물론 이 지표는 4분기 재정까지 미리 당겨서 지출한 결과다. 즉, 3분기의 놀라운 성장률은 정부의 지출 능력을 보여준 것일 수는 있어도 우리 경제의 체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 동안 생산을 늘리지 않고 창고에 쌓인 재고를 팔던 기업들이 다시 생산을 시작함으로써 줄어든 재고를 채우는 바람에 생긴 효과인 ‘재고조정 효과’가 민간 부분에서 크게 나타난 측면도 있다.

가계 경제 회복과 따로 노는 GDP 성장률

2.9퍼센트라는 경제성장률을 보며 떠오르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늘어난 GDP만큼 가계경제도 회복되고 있는가하는 의문이다. 유감스럽지만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 등 자산시장의 활황에 편승해 일부 소비심리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 외에 실제로 가계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국민 경제지표와 가정경제가 따로 노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생활형편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소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의 실질 소득은 올해 1분기에는 4퍼센트가 줄고, 2분기에는 3.8퍼센트가 줄어 지난해와 비교해 큰 폭의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부가 발표하는 협약임금인상률을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8년에 평균 4.9퍼센트를 기록하던 임금인상률은 올해 3월부터 1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지난 9월에도 1.5퍼센트로 바닥을 기고 있다(노동부 협약임금인상 통계자료). 여기에 물가인상률을 감안하면 마이너스인 셈이다. 이렇듯 국민들의 지갑으로 들어오는 돈은 여전히 줄어들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에 비하면 줄어든 월급이라도 안정적으로 받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9월까지 정부의 희망근로사업을 빼면 지난해에 비해 약 2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특히 최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매출이 늘어 소비가 회복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추석 특수가 있던 지난 9월에도 자영업 종사자는 함께 일하는 가족을 포함해 1년 전에 비해 무려 40만 명이나 줄었다(통계청 9월 고용동향).

국민들의 가계 소득에서 경제 회복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다. 줄어든 소득, 줄일 수 없는 교육비

주머니로 들어오는 소득이 줄고 있음에도 줄일 수 없는 지출이 있다. 교육비가 그것이다.
이미 우리 국민이 지출하는 교육비는 식생활비를 추월한 수준까지 올라가 있다. 2009년 상반기 기준으로 도시 근로자가 매달 교육비는 34만 원이 넘는다. 식생활비 29만 원보다도 많은 액수다. 먹고 사는 데 드는 비용보다 자녀 교육에 쏟아 붓는 비용이 더 큰 셈이다.

혹시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의식주와 같은 기초적인 생활비보다 교육비 등의 서비스 구매에 드는 지출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은 아닐까. 그러나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턱없이 높다. 한국은 2008년 기준 7.3퍼센트, 프랑스는 0.8퍼센트, 독일 0.8퍼센트, 일본 2.2퍼센트, 미국 2.6퍼센트 등으로 나타났다(<이데일리> 2009.10.18).

교육비 가운데 당연히 가장 큰 부담은 사교육비다. 2008년 기준 매달 지출하는 공교육비는 10만 7,000원으로 2003년에 비해 약 3만 원이 올랐다. 이는 대부분 대학 등록금 인상분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같은 기간 사교육비는 약 8만 원이 오른 20만 4,000원으로 나타났다. 전체 교육비에서 학원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63퍼센트로 커졌다.

여의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초ㆍ중ㆍ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성인 가운데 사교육을 시키는 가정의 사교육비 지출은 월 평균 50만 원 이상인 경우가 40퍼센트에 달했다. 매달 150만 원을 쓰는 경우도 3.7퍼센트에 달했다.

미국에는 의료비, 한국에는 사교육비

미국 오바마 행정부 앞에 놓인 최대 현안은 금융위기 탈출과 함께 단연 의료개혁이다. 사적 의료보험시장에 장악 당한 미국 의료시스템은 4,000만 미국 시민을 의료보험의 사각지대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의료보험에 가입돼있다 해도 막대한 의료비 부담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 결과 미국의 가계 총지출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15퍼센트를 넘어섰다.

이렇듯 막대한 의료비 지출은 가계지출 구조를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지금과 같은 불황 국면에서 소비구조마저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보건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이 불가능함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결국 오바마정부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의료개혁, 특히 사적 의료보험 체계의 개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의료비가 미국 경제와 미국의 가정을 짓누르고 있는 가장 큰 짐이라면 미국 의료비에 버금갈 정도로 한국 가정에 심각한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이 바로 교육비다. 한국에서 교육비가 부담이 된 것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그 경향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20년 전인 1990년에 가계 총지출 가운데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퍼센트를 넘지 않았지만 2008년에는 10.7퍼센트까지 상승했고 다시 올해 11퍼센트까지 늘었다.

다시 말해 획기적인 개혁조치가 없는 한 우리나라의 교육비는 미국의 의료비와 마찬가지로 걷잡을 수 없이 오를 것이 확실하다. 어쩌면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의 국론 분열을 감수하면서 힘겹게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언젠가 한국에서도 재연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의료와 한국의 교육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양자 모두 공적 체계가 무너지면서 비용부담이 팽창하고 있다는 점,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 그리고 이미 오랜 기간 누적되어 쉽게 개혁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그렇다.

교육비 지출 줄여야 내수 회복될 수 있어

이처럼 사교육 문제는 단순한 교육 문제의 차원을 넘어 경제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혹자는 교육비 지출도 결국 내수를 살리는 소비지출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은행에 따르면 교육과 의료 서비스 구입에 드는 비용은 다른 서비스 품목에 비해 타 산업에 미치는 전후방 연쇄효과가 약해 내수를 살리려면 오히려 교육과 의료부문의 지출을 줄여야 한다(<이데일리> 2009.10.18).

이쯤 되면 결론은 명확하다. 국민경제를 위해서든, 가계경제를 위해서든 지나친 교육비 지출은 결코 유익하지 않다. 정부는 이미 지나가버린 3분기 GDP 실적은 그만 잊고 진정 국민들의 시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살펴주길 바란다. 어제 이명박대통령도 GDP에 담기지 않은 ‘국민의 삶의 질’에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