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Postech)는 1986년 국내 최초의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며 설립된 이후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 내에 카이스트와 함께 국내 과학기술 연구의 리더로 자리 잡은 대학이다. 학년당 300명의 소수정예로 교수 1인당 학생 수 5.6명, 전교생 기숙사 생활 등 뛰어난 교육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최근 이공계 위기와 함께 의대와 한의대 등에 우수 학생이 몰리며 우수 인재 확보에 대한 아쉬움도 느끼고 있다.
포스텍은 이학부와 공학부로 나뉘는데 올해 9월 연구부총장이 된 정윤하 부총장은 공학장과 산학협력단장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작지만 강한 대학을 표방하는 포스텍의 강점과 비전에 대해 들어 보았다.
이공계 위기가 지금도 계속된다고 보십니까.사회 전체가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인을 존중해 주고 기를 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말만 많았지 현실적으로 보면 이공계 출신의 최고경영자(CEO), 고위 임원, 행정 관료의 비중이 낮습니다. 우수 인재들은 의학전문대, 한의대로 몰리고 있는데 교육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선배 과학자들이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관심을 유발해 미래 비전을 심어줘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과학기술은 국가든 기관이든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랍니다. MB 정부에서 기초 원천 기술을 2012년까지 20%에서 50%로 확장하기로 하고 ‘
577’ 정책을 펴고 있는데요, 국내총생산(GDP)의 5% 투입, 7대 중점 과제, 세계 7위의 과학기술 입국이 그것입니다. 이게 잘 되면 과학기술계 인력이 기 좀 펼 수 있지 않을까요.
이공계 위기와 함께 포스텍도 좀 정체된 면이 있지는 않습니까.위기감보다 우리 대학이 세계적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 국가와 과학기술계의 리더급 대학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중입니다. 설립 초기부터 타 대학과는 다른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 왔고 단기간에 이만한 성과를 이룬 대학도 없을 겁니다. 최근엔 대외 홍보가 좀 없었기 때문에 실체와 달리 알려진 것에는 불만이 있지요. 연구 업적에 관해서는 세계적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2006년 개교 20주년을 맞아 2020년 세계 20위 대학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현재 거의 근접해 있습니다. 국내에서 노벨상이 나온다면 아마 포스텍이 가장 먼저 배출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습니다. 오늘(10월 28일) 베이징 사무소 개소식(10월 30일 개소)을 위해 출국하는데 유럽에도 만들 계획입니다.
교육·연구 강화 외에도 국제화,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대학을 만드는 것에 힘을 기울일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베이징 사무소는 어떤 곳입니까.형식적으로 로스앤젤레스(LA)에 분교를 내는 대학도 있지만 베이징 사무소는 실용적인 이유로 만든 겁니다. 포스코 차이나와 경비를 셰어(분담)하고 있어 많은 인원이 상주하고 있지는 않고요. 중국의 우수 인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지는 않지 않습니까. 공동 연구 진행, 우수 대학원생 유치, 베이징대, 칭화대와의 교류에서 거점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겁니다. 유럽(독일)에도 같은 사무소를 곧 개설한 예정인데 이를 통해
강도 높은 국제화를 진행할 겁니다.부총장을 맡으신 뒤 학교에 어떤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까.지난 2년 동안 산학협력처장을 맡다가 올해 9월에 연구부총장, 산학협력단장, 공학장을 맡았습니다. 우선 대학의 연구 역량 세계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존 10개 학과를 탈피해 내부적으로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소재기술(MT: Material Technology), 에너지기술(ET)의 4대 분야와 이들 분야를 전체적으로 서포팅하는 나노기술(NT)을 선정해 주력 연구 분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년부터는
정부 지원의 ‘세계적 수준의 대학(WCU, World Class University)’을 만들기 위해 융합생명공학부, 정보전자융합공학부, 첨단재료과학부의 3개 대학원 과정을 통해 폭넓은 학제 간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올해 세계 최대 기업인 엑슨모빌과 산학협력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향후 10년 동안 포괄적 연구 협약을 맺었습니다. 앞으로도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 경북, 포항, 정부 등과 연구 협약을 맺도록 노력할 겁니다. 국내 유일의 방사광 가속기도 4세대 설치를 성공적으로 마칠 계획입니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포스텍이 세계적 산학협력, 연구 중심 대학으로 올라서도록 할 생각입니다.
서울에서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데, 지역적인 불리함은 없습니까.학문의 수월성, 교수진의 질적 우월성은 서울과의 지역적 거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 한국에서만 ‘지역적’ 운운하지 글로벌 수준, 세계적 대학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런 불편은 없습니다. 오히려 학문하는 데는 지역의 조용한 곳이 더 효과적이지요.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도시 중심보다 지역에 우수한 대학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은 도쿄대에서 노벨과학상 2명을 배출한 데 비해 교토대에서는 7명을 배출했습니다. 본교 신입생들의 분포를 보면 서울·경기 40.1%, 부산·경남 24.5%, 대구·경북 16.9%, 광주·호남 9.6%, 대전·충청 6% 등 전국적 인구 비례와 비슷합니다. 수험생들이 포항이기 때문에 기피하지는 않을 겁니다. 초기부터 한 학년 300명 소수정예로 전원 기숙사 생활, 맞춤형 영재 교육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5.6명으로 국내 최고 수준입니다. 올해부터 300명 전원을 수학능력시험에 의존하지 않고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수시 모집하는 혁명을 단행했습니다.
전교생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 건 국내 최초고요. 성적 위주의 선발을 탈피해 학생들의 잠재력, 다양한 성장 가능성이 포스텍이 원하는 인재상입니다.
전원 기숙사 생활, 교수 1인당 최저 학생 수의 비결이 뭡니까.포스코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재정 지원이 충분합니다.
포스코와는 어떤 관계입니까.설립 주체로 특수관계인입니다.
1995년 포스코로부터 재단이 분리될 때 기초 출연을 받았고 이를 통해 발전적 동반자 관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 출연은 주식으로 받았는데 현 시세로 1조7000억 원에 달합니다. 또 재단 전입금으로 매년 500억 원을 받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도 실제로는 300억 원이 안 되는데, 이에 비하면 꽤 높은 비중입니다. 포스코 지원 연구비는 대학 총연구비의 26%인 400억 원 수준이고 이 중 20%(80억 원)가 연구원 인건비, 학생 장학금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발전적 동반자 관계를 위해 포스코의 철강 기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철강 대학원을 만들었습니다. 포스코가 비철강 소재 분야를 미래 사업으로 육성한다면 거기에 맞는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고 현재 이를 양성하고 있죠. 이처럼
산학협력의 발전적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에 걸맞은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가정에서 보면 투자 우선순위가 자식에 투자하는 것 아닙니까. 국가로 따지면 인재에 투자하는 것인데,
과학기술은 투자한 만큼 확실히 돌아오는 것이 특징입니다. 정치는 절반이나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만.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 국가의 지속적 발전은 힘듭니다. 정부도 젊은이들이 의대·법대 대신 과학기술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순수 연구비를 주는데, 연구를 통해 개발한 기술을 해외에 이전하고 받는 로열티가 세계 10위권 대학은 연구비의 3%에 근접합니다. 포스텍도 로열티 비중이 순수 연구비의 3%에 근접해 국내 최고 수준입니다. 또 기업들도 연구비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포스코가 포스텍만 지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대기업의 대학 지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입니다.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우수 인재가 기업에 와서 일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윤하 부총장은…1950년생. 경북대 전자공학과 학사·석사. 87년 도쿄대학 전자공학 박사. 도쿄대 연구원, 벨연구소 연구원, 워싱턴대 객원교수. 87년 포항공과대(포스텍) 전기공학과 교수(현). 2004년 포스텍 나노기술집적센터장(현). 2005년 산업자원부 산업발전심의회 위원(현). 2007년 포스텍 산학협력처장(현). 2009년 포스텍 연구부총장(현).
포항=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