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제휴의시대

2010. 1. 3. 19:01C.E.O 경영 자료

◆ 한ㆍ일 新100년을 열자 / ② 한ㆍ일 기업 손잡고 미래로 ◆

 

 

 

↑ 일본 기후현에 위치한 오가키정공 본사에서 한국인 견습생들이 부품소재 견습 공정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오가키정공은 한국에 합작회사를 세운 뒤 중국 진출에도 성공했다.

 

도쿄에서 남서쪽으로 380㎞ 떨어진 기후현에 위치한 오가키정공(大垣精工). 1층 서관 견습실을 방문했더니 '일본과 한국이 손잡고 중국으로'라는 구호가 게시판에 걸려 있다. 주물형 부품소재 전문업체인 이 회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ㆍ일 합작기업으로 중국시장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오가키정공은 1987년 한국 중소기업인 신한기술과 대구 달성공단에 한국성산(현 MB성산)이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했고 14년 만인 2001년에는 한국성산이 55억원을 투자하는 형태로 중국 칭다오에 위치한 중성전기유한공사 지분 55.8%를 인수했다.

일본금형공업회장을 맡고 있는 우에다 가쓰히로 오카기정공 회장은 "한국과 일본 기업이 손잡고 제3국 시장에 진출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한ㆍ일 양국 기업은 기술력과 영업력 등 각자 장점을 살리면 글로벌 신흥시장을 개척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제휴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가키정공은 3억엔을 투자(지분 65%)해 한국에 합작회사를 설립한 뒤 지금도 삼성전기 등 한국 대기업에 전자코일, 알류미늄선 등을 현지 납품하고 있다. 매년 10~15명씩 지난해 말까지 총 270명의 한국 견습생을 3개월 일정으로 교육했다. 이곳에서 일본 부품소재 원천기술을 습득한 한국인 견습생들은 기후현 본사 공장에 취업하거나 한국 또는 중국 합작회사에 입사해 일급 기술공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70~80년대 일본산 부품ㆍ소재 수입과 원천기술 제공 등에 머물러 왔던 한ㆍ일 양국 기업 간 제휴가 글로벌 시장의 급격한 변화 속에 제3국 공동 진출이라는 새로운 제휴관계로 확대되고 있다.

마쓰시타 다카미쓰 일본환경경영연구소장은 "한ㆍ일 기업은 2000년대 이후 활발했던 상호 출자와 IT 부문 제휴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는 친환경ㆍ에너지 등 차세대 산업 분야에서도 제3국 시장에 합작 진출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말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라는 경사를 맞았다. 한국이 일본과 프랑스 연합군을 꺾은 국가적인 쾌거로 기록됐지만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과 일본 기업이 공동 승리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최대 원전업체인 도시바가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를 통해 200억엔대 계약료를 받고 두산중공업 등 한국 기업에 원자로와 증기발생펌프 등 핵심기술을 제공하기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대형 수주 경쟁은 국가 대항전이 아니라 기업 간 합종연횡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UAE 원전 수주를 통해 한국이 단숨에 원전 수출국가로 입지를 구축함에 따라 원천기술력을 보유 중인 일본 기업들에서 '러브콜'이 한층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소 유타카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은 "양국 강점인 ITㆍ환경 분야에서 기업 간 제휴를 확대하려면 고급 인력에 대해 상호 자격을 인증하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바는 웨스팅하우스를 통해 이미 두산중공업과 신형 가압경수로(PWR) 개발ㆍ생산 부문에서도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한ㆍ일 양국 대표 기업인 포스코와 신닛테쓰도 기술ㆍ자본 제휴에만 머물지 않고 공동으로 제3국 진출을 성공시킨 사례다.

두 회사는 지난해 10월 포스코가 85%를, 신닛테쓰가 15%를 각각 출자해 베트남에 연간 120만t 규모 냉연 합작공장을 설립했다. 장병효 포스코재팬 사장은 "2000년 신닛테쓰와 전략적 제휴를 한 이후 신소재 분야 공동 기술 개발과 비용 절감 등 사업 시너지 효과도 크다"고 소개했다.

특히 포스코ㆍ신닛테쓰 제휴 사례는 불필요한 시장경쟁을 배제하는 한편 글로벌 철강업계에서 '공룡'으로 불리는 인도 아르셀로미탈의 아시아 시장공략을 공동으로 방어하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두 회사는 사업 제휴에만 그치지 않고 포스코가 신닛테쓰 지분 3.50%를, 신닛테쓰는 포스코 지분 5.04%를 각각 보유하는 등 탄탄하게 자본 제휴도 맺어놓은 상태다.

한국시장에서도 한ㆍ일 기업 간 합작 사례가 빛을 발하고 있다. 한라그룹과 닛신보그룹 합작법인으로 출발한 새론오토모티브가 대표적 사례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이 회사는 한ㆍ일 강제 합방의 상징적 장소인 천안 독립기념관과 불과 4㎞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독립운동 발상지인 아우네장터 바로 옆에 한ㆍ일 합작기업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볼 수도 있다.

이 회사 중국법인은 2008년부터 도요타에 납품하기 시작했고 새해에는 닛산자동차에도 납품할 계획이다. 또 폭스바겐용 자동차부품도 중국법인이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간 합작 경영이 제3국 시장에서도 톡톡한 성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이 회사 후카미쓰 마사하루 CFO는 "일본이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건너는 스타일이라면 한국은 돌다리를 만들면서 건너는 스타일"이라며 "닛신보 단독으로 중국에 진출했다면 아마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인석 새론오토모티브 대표도 "양국은 정서적으로 이질감이 없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GS칼텍스와 신일본석유가 50%씩 지분을 보유 중인 파워카본테크놀로지(PCT)도 양국 대표적인 석유회사가 녹색에너지산업을 위해 손을 잡은 사례다.

서원배 PCT 사장은 "양국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한국 시장이 작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한ㆍ일 두 나라 시장을 합치면 규모의 경제가 형성된다"고 합작법인을 설립한 이유를 설명했다.

GS칼텍스와 신일본석유는 두 회사가 보유 중인 마케팅 능력과 원천 기술력을 결합해 아시아 정유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 매일경제신문ㆍ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공동기획

[기획취재팀 = 팀장 변상호 차장 / 허연 차장 / 도쿄 = 채수환 특파원 / 신현규 기자 / 세종연구소 = 진창수 박사 / 김도형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