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아시아’ 꿈꾸는 사람들
2010. 1. 5. 09:46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하나의 아시아’ 꿈꾸는 사람들 |
2050년 1월1일 아침 일찍 잠에서 깬 김우주 씨는 서울역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새해를 맞아 모처럼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친구를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시아횡단철도 티켓을 끊고 열차에 올랐다. 서울역을 출발한 고속열차는 금세 한·중 해저터널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했다. 1시간가량 정차한 뒤 열차는 다시 이스탄불을 향해 힘차게 질주한다. 아시아는 아시아연합(AU)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인 지 오래다. AU는 유럽연합(EU)과 북미공동체를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권으로 부상했다. 달러도 세계 기축통화의 자리를 아큐(ACU)에 내주고 변방 통화의 하나로 전락했다. 이제 아시아 대륙 어디에서나 아큐만 있으면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다. 아시아는 경제 통합을 넘어 한 단계 높은 정치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21세기 초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2050년 실제로 이런 일이 현실이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아시아는 거대한 대륙이다. 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이 지역에 거주한다. 이들은 매우 다양한 특징을 나타낸다. 인종도 다양하고 문화도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경제발전 수준도 극과 극이다. ‘하나의 아시아’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도 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는 이미 지역 통합의 시대를 맞고 있다. 처음 6개 나라로 출발한 EU는 어느새 전 유럽을 아우르는 규모로 팽창했다. 북미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들어섰고, 남미와 아프리카도 빠른 속도로 결집하고 있다. 좁게 보면 아시아에도 이미 통합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싱가포르 등 동남아 10개 나라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으로 뭉쳐 있다. 남아시아에는 파키스탄·인도·네팔·부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 8개국이 참여하는 남아시아지역연합(SAARC)이 있다. 심지어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들도 아프가니스탄·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 등 10개 나라가 중심이 돼 경제협력기구(ECO)를 결성했다. 소지역 단위에서는 유일하게 동북아에만 정부 간 협력 기구가 없는 상태다. 장기적으로는 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대(大)아시아 구상’이 나와야 한다. 물론 과거 아시아 공동체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0년대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며 아시아 지역의 규합에 나선 적이 있다.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단결해 아시아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포장하는 허울에 불과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의 깃발 아래 아시아 여러 나라의 자원과 노동력을 잔혹하게 수탈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아시아 공동체 주장에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것은 이러한 아픈 역사적 기억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후 통합 논의 탄력 이와 관련해 100년 전 안중근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동양 평화에 대한 그의 구상은 지금 봐도 놀랄 만큼 선구적이다. 안 의사는 동양평화회의를 창설해 조선과 일본, 청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회원을 모집하고 회원 1명당 회비로 1원을 모금할 것을 제안했다. 세 나라가 함께 은행을 설립하고 공동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금융과 경제면에서 공동 발전을 도모하자는 주장도 내놓았다. 오늘날 EU와 같은 경제공동체를 제안한 것이다. 또한 안 의사는 3국 청년들에게 최소한 2개 국어로 교육시켜 평화군으로 양성할 것도 주장했다. 1997년 터진 아시아 외환위기는 아시아 공동체 논의의 또 다른 촉매제로 작용했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선진국들의 싸늘한 태도와 국제통화기금(IMF)의 무리한 구조조정 요구에 시달리면서 금융 위기에 대한 아시아의 공동 대응 필요성에 눈뜬 것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판 IMF’인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과 공동 통화 발행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공동 통화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 위안화는 아시아 기축통화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하지만 기축통화가 되려면 천문학적인 국제수지 적자를 감내할 수 있어야 하고 자본계정이 자유화돼야 한다는 점에서 중국은 아직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은 일본대로 엔화를 기축통화로 밀고 있다. 또 다른 후보는 바로 아큐(Asian Currency Unit)다. 아큐는 유로화의 전신인 ECU를 참고해 일본경제산업연구소가 처음 고안한 개념이다. 미국의 반대로 AMF 창설이 무산되면서 이러한 논의는 그동안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발 금융 위기를 계기로 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전면에 내걸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와 인문학계에서도 아시아 담론이 봇물 터진 듯 쏟아지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주로 아시아의 근·현대사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잃어버린 공동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 인문학 분야에서는 서구식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아시아 문명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오히려 일상에서 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변화의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영화·음악·드라마·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아시아 간의 교류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중국·일본·홍콩·대만·태국 등을 제집 드나들 듯 여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베트남·네팔·태국·몽골 등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하나의 아시아’는 생각보다 훨씬 가깝게 우리 곁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
입력일시 : 2009년 12월 29일 11시 3분 3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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