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家 연임 전쟁

2010. 1. 27. 09:13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잠못 이루는 CEO들, “나 떨고 있니”

금융家 연임 전쟁

이코노믹리뷰 | 박영환 | 입력 2010.01.26 16:53

 

대한민국 금융가는 요즘 연임전쟁중이다. KB국민지주, 신한금융지주, 한국씨티은행, 기업은행, 코리안 리를 비롯해 금융권 대표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임기가 잇달아 만료될 예정이어서 이들 수장의 연임 여부가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다.

재임 중 탁월한 실적으로 일찌감치 연임의 눈도장을 받아둔 최고경영자(CEO)가 있는 반면 외풍에 휘말리며 입지가 흔들리는 불우한 사례도 눈에 띈다.

올해 금융가의 주요 이슈인 연임 여부와 관련해,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최고경영자가 젠틀맨으로 통하는 강정원 KB국민은행장이다. 강 행장은 올해 10월 은행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황영기 전 회장이 파생금융상품 투자 손실 공방에 휘말리면서 퇴임할 때만 해도, 강 행장의 연임 전선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지난 2004년 KB국민은행장에 부임한 그는 재임중 해외진출·인수합병 부문 등에서 뚜렷한 실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파생상품 투자손실 등 재선가도를 위협할 '실기'도 딱히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뛰어난 리스크관리가 외국계 기업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그의 주특기이다. 강 행장이 이끄는 KB국민은행은 지난 2008년 미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후폭풍을 비껴가며 주변의 부러움을 산 거의 유일한 은행이다.

시중은행 일부가 리먼 사태에 후폭풍으로 대규모 손실을 입으며 투자자들의 원성을 산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런 그의 연임 전선에 '난기류'가 잔뜩 끼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KB금융지주사 회장에 지원한 후보들의 자신사퇴 이후다.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인선 절차의 불공정성을 빌미로 잇달아 후보에서 사퇴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는 당국의 경고에도 지주사 회장에 부임하며 감독당국과의 전면전을 예고했다.

강 행장은 지배 구조 논란에 휘말리면서 은행장 연임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지난 1월14일부터 종합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금융감독당국 감사의 칼끝은 매섭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BCC은행 투자 손실 문제 등이 강 행장의 재선을 뒤흔들 수 있는 뇌관이다.

국민은행은 카자흐스탄 BCC은행에 8000억원 가까이 투자했다가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2500억원의 손실을 입은 바 있다. 전임 황영기 회장의 퇴진을 부른 파생금융상품 투자 손실의 '데자뷔'이다.

은행측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카자흐스탄은 국내 건설업체들은 물론, 금융사들도 앞다퉈 몰려든 유망시장이었다" 는 것이 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외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는 시중 은행이 중앙아시아 시장의 거점 확보차원에서 지분 투자에 나섰다가 발생한 '손실'을 투기성이 강한 '파생금융상품' 투자와 동일선상에서 견줄 수는 없다는 게 골자다.

"강정원 KB국민은행장이 지배 구조 논란에 휘말리면서 은행장 연임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지난 1월14일부터 종합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금융감독당국 감사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 지가 관건이다."

더 큰 문제는 작년에 터진 황영기 전 회장에 이어 강정원 행장에 이르기까지, 금융지주사의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면서 일부 지점장들은 일손을 손에 잡지 못하는 등 조직 내부의 동요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도가 강 행장 재임에 다시 악영향을 주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주사 수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또 다른 금융사로는 신한금융지주가 있다.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라응찬 회장의 연임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지주측은 KB금융지주사태가 라 회장의 연임에 어떤 식으로든 변수가 되지 않을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주사 구성원들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들은 과거 라 회장이 신한은행장 시절 보여준 '중도 사퇴'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라 회장의 연임에 방점을 두고 있는 분위기이다.

라 회장은 지난 1999년 정부의 인사 외압에 맞서 용퇴결정을 내려 신한은행의 내부인사 발탁 관행을 지켜낸 무용담의 주인공이다.

금융지주사 구성원들의 지지가 절대적인 점은 라 회장 연임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씨티은행 하영구 은행장도 임기 만료
올해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또 다른 은행장이 하영구 한국 씨티은행장이다.
2004년 한국씨티은행 출범 이후 은행장을 맡고 있는 하 행장은 오는 3월 지주회사 출범에 맞춰 회장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서브 프라임 사태로 단행된 씨티그룹 본사의 수장 교체가 권력지도에 미칠 여파가 주요 관심사이다.

척 프린스 미국 씨티그룹 전임 회장이 투자 손실의 책임을 지고 지난 2007년 회장직을 사임하고, 인도 출신인 '비크람 팬디트' 씨티그룹 CEO가 후임으로 부임하면서 이 그룹의 수뇌부도 대폭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하 행장이 무난히 재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가 지주사 회장으로 영전하고 은행장에는 다른 인사가 부임할 것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4년 간 씨티그룹 아시아 태평양지역 본부에서 마케팅 본부장직을 수행하고 작년 씨티은행의 개인금융그룹장에 부임한 이흥주 부행장 등 후발주자들의 역할도 주요 관심사이다.

올 하반기엔 김태영 농협 신용대표 임기가 7월, 윤용로 기업은행장 임기가 12월 만료된다. 보험업계에선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의 5연임 성공 여부도 이목을 끌고 있다.

사장은 그간 뛰어난 실적을 올린 데다 대주주의 신임 또한 두터워 7월에 또다시 연임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방영민 서울보증보험 사장은 6월 임기가 만료되는데 연임에 성공할지, 후임자가 선정될지는 미지수다.

장형덕 여신협회장의 임기도 3월까지인데 여신협회장은 카드사와 캐피털사가 교대로 맡아온 만큼 이번엔 캐피털사 가에서 맡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밖에 올해 17개 증권사 수장들도 줄줄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금융권은 어느해 보다 뜨거운 시기를 보낼 것으로 관측된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