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미모' 그녀가 배곯고 컸다고?
2010. 2. 7. 11:47ㆍ지구촌 소식
'완벽한 미모' 그녀가 배곯고 컸다고?
오마이뉴스 | 입력 2010.02.06 22:27 | 수정 2010.02.06 23:47 | 누가 봤을까? 30대 여성, 제주
[오마이뉴스 강정수 기자]
세계적인 컨트리 음악 가수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 44). 그녀를 생각하면 사람들은 어떤 것들이 떠오를까?
토론토대학의 연구 결과처럼 가장 황금비율의 얼굴을 가진 완벽한 외모? 컨트리 음악 사상 최다 판매기록을 가진 여자가수? 미국 폭스TV 인기프로 '아메리칸 아이돌'에 빅토리아 베컴, 에이브릴 라빈 등과 함께 객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국제적인 스타? 하지만, 그녀가 어릴 때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주리며 자랐고, 작은 마을에서 겨울에 난방비를 못내 난방이 끊기기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과연 많을까? 인터넷에서 그녀 이름으로 검색하면 화려한 이야기들이 주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가 지난 1월에 캐나다 CBC방송에서 밝힌 어린 시절 이야기는 다소 놀랍다. 온타리오주 윈저에서 태어난 그녀는 2살 때 부모가 이혼했고, 엄마는 그녀를 데리고 '티민스'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엄마가 캐나다 원주민과 재혼했고, 양부가 소득이 있을 때는 먹을 것이 있었으나, 돈벌이를 못할 때는 굶어야 했다.
"지저분한 옷에 도시락없이 학교 갈 땐 창피했다"
그래서 그녀는 8살 때부터 동네 술집에서 밤에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돈이나마 보태야 했다.
"온타리오 북부의 추운 겨울에 자주 난방이 끊겼다. 잠잘 때 옷을 잔뜩 껴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매우 추운 그곳에서 겨울용 부츠가 없어 고무장화를 신고 학교에 다닌 적도 있다. 간혹 돈이 생기면 전화요금, 자동차연료비, 난방비 중 어느 것을 먼저 지불해야 할지 고민했다. 세탁기가 고장났지만 고칠 돈이 없어 손으로 빨래를 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점심 도시락 없이 학교를 갈 땐 곤혹스럽고 창피했다." 그녀가 출연한 CBC 라디오의 < 더 커런트(The Current) > 라는 프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대담프로다. 진행자 애나 마리아 트리몬티는 총선 때 여당 당수(총리)와 세 야당 당수를 불러모아 대국민 토론회를 주도하기도 했고, 캐나다 장관들은 물론 가끔씩 총리도 이 프로그램에 '불려' 나와서 그녀의 질문에 진땀을 흘리곤 한다.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지원이 있지 않았냐고 묻자, 원주민 출신 양부는 자긍심이 강한 사람이어서 극빈층에게 주는 지원을 거부하곤 했다고 한다. 가끔씩 원주민보호구역 사람들이 사냥을 다녀와서 상자를 놓고 가곤 했다.
상자 안에는 사냥해서 잡은 토끼, 사슴, 생선 등이 있었고, 한동안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가끔 어머니가 먹을 것을 구하러 차를 몰고 700km나 떨어진 토론토의 노숙인보호소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한편, 샤니아는 남매들이 가난한 자신들의 환경을 학교에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왜냐면 아동보호소나 사회복지사가 아이들 보호차원에서 형제자매들을 데려갈까 두려워했다고 했다. 즉, 위탁가정에 보내거나 아동보호소로 보내게 되는 데, 그것은 곧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난이 무엇인지 겪어봐서 잘 안다"
그녀는 부유한 환경을 당연한 듯 여기고 주위를 돌보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녀가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듯 다른 아이들도 그런 환경에 처하게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녀는 'Shania Kids Can'이란 단체를 만들어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자선사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아이들이 처한 환경, 심정 등을 겪어봐서 잘 안다고 했다.
로빈 에가가 쓴 책 < Shania Twain The Biography > 에 나온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또 다른 묘사를 보자.
"매일 수십km를 걸었으며 무거운 나무를 날라야 했고, 화장은 물론 비누나 샴푸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호수에서 목욕과 빨래를 했지만 난 강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난 창의적이었고, 종종 숲속에서 기타와 개만 데리고 홀로 앉아 노래를 쓰곤 했다." 또한, 오지 산간마을에서 사냥, 땔감하는 법을 배웠고, 맥도널드에서도 일했고, 8살 때부터 동네 술집(바), 클럽에서 노래해 번 돈으로 가족을 도왔다. 8살 아이가 술집에서 돈을 버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밤 12시에 술판매를 금지하고, 바를 폐쇄하면 그 때서야 어린 샤니아가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한다. 술 취한 사람들과 담배연기로 자욱한 술집은 싫었지만, 노래는 좋아했다며 그곳이 바로 음악을 배우고, 훈련한 곳이라고 말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티민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밴드와 온타리오주를 연주 여행하며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토론토에서 노래지도를 받을 때 돈이 없어 선생의 집을 청소하기도 했다.
1984년 가을, 토론토 DJ 스탄 캠벨(Stan Campbell)은 < 컨트리 음악뉴스 > 의 기고를 통해, "그녀는 발성폭이 넓으며, 가창력 또한 뛰어나다. 또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힘, 야망,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그녀의 재능에 관심을 나타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녀가 22살이던 1987년 11월, 그녀의 양부와 친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3명의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다. 당시 10대 초반이던 동생들과 함께 살기 위해 온타리오 헌츠빌로 이사했다.
다행히 근처 리조트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로빈이 쓴 위의 책에서 그녀는 당시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한다. 음악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어린 동생들을 보고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후, 이런 저런 굴곡이 있었지만, 작곡가, 밴드, 음악감독, 앨범제작자 등을 만나며 오늘날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샤니아가 다음 날은 1시간 30분 동안 < 더 커런트 > 진행자로 전 세계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지 토론을 이끌었다.
"재능이 있든 없든 모든 아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샤니아는 아동분야 전문가 토론토대학 교수 카트리나 스캇과 온주 아동보호소 지넷 루이스와의 대담했다. 이들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어떤 재능이 숨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음악가, 작가, 과학자가 될 수도 있다. 설혹 재능이 없을지라도 아이들이 아무 걱정과 어려움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우기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이 그런 문제는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히 지속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칠 수 있도록 사회가 보호하고 안전하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요르단 왕비 라니아 알 압둘라(Rania Al Abdullah)와 인터뷰를 통해 왕비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함께 하는 세계적인 아동 교육지원 운동(1Goal 캠페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요르단 왕비는 샤니아와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 7200만 명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만이 가난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라며 아이들이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전 세계가 지원해야 하며, 특히 선진국 정치인들이 주도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라니아 왕비는 3천만 명의 서명을 받아 올 여름 캐나다에서 열리는 G8, G20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들에게 호소할 계획이다.
"빈부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요르단 왕비와 샤니아가 강한 의견 일치를 보인 클로징멘트는,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한국 아이들과 비교돼 많은 점을 생각케 한다.
"가난하게 태어났든, 부자부모 밑에서 자라든 모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룰이고, 기회의 균등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돈걱정 없이, 창피한 마음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가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가, 우리 모두가 함께 돌보아야 한다." [☞ 오마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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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대학의 연구 결과처럼 가장 황금비율의 얼굴을 가진 완벽한 외모? 컨트리 음악 사상 최다 판매기록을 가진 여자가수? 미국 폭스TV 인기프로 '아메리칸 아이돌'에 빅토리아 베컴, 에이브릴 라빈 등과 함께 객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국제적인 스타? 하지만, 그녀가 어릴 때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주리며 자랐고, 작은 마을에서 겨울에 난방비를 못내 난방이 끊기기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과연 많을까? 인터넷에서 그녀 이름으로 검색하면 화려한 이야기들이 주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가 지난 1월에 캐나다 CBC방송에서 밝힌 어린 시절 이야기는 다소 놀랍다. 온타리오주 윈저에서 태어난 그녀는 2살 때 부모가 이혼했고, 엄마는 그녀를 데리고 '티민스'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엄마가 캐나다 원주민과 재혼했고, 양부가 소득이 있을 때는 먹을 것이 있었으나, 돈벌이를 못할 때는 굶어야 했다.
"지저분한 옷에 도시락없이 학교 갈 땐 창피했다"
그래서 그녀는 8살 때부터 동네 술집에서 밤에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돈이나마 보태야 했다.
"온타리오 북부의 추운 겨울에 자주 난방이 끊겼다. 잠잘 때 옷을 잔뜩 껴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매우 추운 그곳에서 겨울용 부츠가 없어 고무장화를 신고 학교에 다닌 적도 있다. 간혹 돈이 생기면 전화요금, 자동차연료비, 난방비 중 어느 것을 먼저 지불해야 할지 고민했다. 세탁기가 고장났지만 고칠 돈이 없어 손으로 빨래를 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점심 도시락 없이 학교를 갈 땐 곤혹스럽고 창피했다." 그녀가 출연한 CBC 라디오의 < 더 커런트(The Current) > 라는 프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대담프로다. 진행자 애나 마리아 트리몬티는 총선 때 여당 당수(총리)와 세 야당 당수를 불러모아 대국민 토론회를 주도하기도 했고, 캐나다 장관들은 물론 가끔씩 총리도 이 프로그램에 '불려' 나와서 그녀의 질문에 진땀을 흘리곤 한다.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지원이 있지 않았냐고 묻자, 원주민 출신 양부는 자긍심이 강한 사람이어서 극빈층에게 주는 지원을 거부하곤 했다고 한다. 가끔씩 원주민보호구역 사람들이 사냥을 다녀와서 상자를 놓고 가곤 했다.
상자 안에는 사냥해서 잡은 토끼, 사슴, 생선 등이 있었고, 한동안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가끔 어머니가 먹을 것을 구하러 차를 몰고 700km나 떨어진 토론토의 노숙인보호소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한편, 샤니아는 남매들이 가난한 자신들의 환경을 학교에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왜냐면 아동보호소나 사회복지사가 아이들 보호차원에서 형제자매들을 데려갈까 두려워했다고 했다. 즉, 위탁가정에 보내거나 아동보호소로 보내게 되는 데, 그것은 곧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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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부유한 환경을 당연한 듯 여기고 주위를 돌보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녀가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듯 다른 아이들도 그런 환경에 처하게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녀는 'Shania Kids Can'이란 단체를 만들어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자선사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아이들이 처한 환경, 심정 등을 겪어봐서 잘 안다고 했다.
로빈 에가가 쓴 책 < Shania Twain The Biography > 에 나온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또 다른 묘사를 보자.
"매일 수십km를 걸었으며 무거운 나무를 날라야 했고, 화장은 물론 비누나 샴푸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호수에서 목욕과 빨래를 했지만 난 강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난 창의적이었고, 종종 숲속에서 기타와 개만 데리고 홀로 앉아 노래를 쓰곤 했다." 또한, 오지 산간마을에서 사냥, 땔감하는 법을 배웠고, 맥도널드에서도 일했고, 8살 때부터 동네 술집(바), 클럽에서 노래해 번 돈으로 가족을 도왔다. 8살 아이가 술집에서 돈을 버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밤 12시에 술판매를 금지하고, 바를 폐쇄하면 그 때서야 어린 샤니아가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한다. 술 취한 사람들과 담배연기로 자욱한 술집은 싫었지만, 노래는 좋아했다며 그곳이 바로 음악을 배우고, 훈련한 곳이라고 말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티민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밴드와 온타리오주를 연주 여행하며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토론토에서 노래지도를 받을 때 돈이 없어 선생의 집을 청소하기도 했다.
1984년 가을, 토론토 DJ 스탄 캠벨(Stan Campbell)은 < 컨트리 음악뉴스 > 의 기고를 통해, "그녀는 발성폭이 넓으며, 가창력 또한 뛰어나다. 또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힘, 야망,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그녀의 재능에 관심을 나타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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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근처 리조트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로빈이 쓴 위의 책에서 그녀는 당시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한다. 음악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어린 동생들을 보고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후, 이런 저런 굴곡이 있었지만, 작곡가, 밴드, 음악감독, 앨범제작자 등을 만나며 오늘날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샤니아가 다음 날은 1시간 30분 동안 < 더 커런트 > 진행자로 전 세계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지 토론을 이끌었다.
"재능이 있든 없든 모든 아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샤니아는 아동분야 전문가 토론토대학 교수 카트리나 스캇과 온주 아동보호소 지넷 루이스와의 대담했다. 이들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어떤 재능이 숨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음악가, 작가, 과학자가 될 수도 있다. 설혹 재능이 없을지라도 아이들이 아무 걱정과 어려움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우기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이 그런 문제는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히 지속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칠 수 있도록 사회가 보호하고 안전하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요르단 왕비 라니아 알 압둘라(Rania Al Abdullah)와 인터뷰를 통해 왕비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함께 하는 세계적인 아동 교육지원 운동(1Goal 캠페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요르단 왕비는 샤니아와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 7200만 명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만이 가난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라며 아이들이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전 세계가 지원해야 하며, 특히 선진국 정치인들이 주도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라니아 왕비는 3천만 명의 서명을 받아 올 여름 캐나다에서 열리는 G8, G20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들에게 호소할 계획이다.
"빈부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요르단 왕비와 샤니아가 강한 의견 일치를 보인 클로징멘트는,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한국 아이들과 비교돼 많은 점을 생각케 한다.
"가난하게 태어났든, 부자부모 밑에서 자라든 모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룰이고, 기회의 균등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돈걱정 없이, 창피한 마음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가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가, 우리 모두가 함께 돌보아야 한다." [☞ 오마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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