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다운 집 한옥

2010. 2. 23. 08:36건축 정보 자료실

가장 한국다운 집

 

 

한민족의 전통과 함께한 한옥


한옥은 말 그대로 ‘한국의 가옥’이다. 한옥은 보통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알고 있지만 뿌리를 따지면 이보다는 더 오래되었고 그 범위도 더 넓다. 한반도에서 오랜 기간 사람들이 살면서 자연환경, 문화, 사상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공통적 주거형식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조선시대 들어서 정형화된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현재 조선 이전의 주거 유구는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긴 하나, 고려 후기에 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옥의 전형인 조선시대 형식에 근접하게 된다. 계급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반드시 양반들만의 가옥일 필요는 없다. 흔히 민가라고 하는 중하층의 주거에도 한옥 요소들이 일부이기는 하나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한민족의 가옥을 구성한 것이니 한옥은 이것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최근 한옥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그 방향이 점점 규모가 크고 형식도 어느 수준 이상이 되는 ‘고가의 부잣집’으로 잡혀가고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작은 규모의 개인집에 전통 민가의 특징을 섞으면 그 또한 한옥을 현대화한 훌륭한 예에 해당된다. 단, 좁혀보자면 한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한정 지을 수 있다.

 

 

 

 

한옥을 낳은 배경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웅장하지는 않으나 변화무쌍한 산과 강, 사계절이 뚜렷하면서 해가 좋은 빛, 겨울에는 서북풍이 불고 여름에는 남동풍이 부는 바람 등이 자연환경 요소이다. 문화 요소로는 상대주의 국민성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그때그때 각 집마다 사정에 맞춰 개성을 충분히 살린다는 뜻이다. 사상은 고려시대 때 융성했던 노장이 제일 큰 밑바탕을 이루며 여기에 유교의 형식미가 가미되면서 완성되었다. 고려시대 주거는 외형은 조선시대의 한옥과 유사하나 많이 단순해서 변화무쌍하고 아기자기한 한옥 특유의 특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 차이는 유교 형식미의 유무에 따른 결과이다. 원래 유교 형식미는 매우 엄숙하고 정형적이지만 이것이 노장사상 및 한국적 상대주의와 합해지면서 규칙적이면서도 동시에 변화무쌍한 다양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융합 또는 통섭의 좋은 예일 수 있는데, 실제로 노장사상과 유교사상의 영향권 아래 드는 한·중·일 삼국의 주거를 비교해 봐도 한옥이 제일 변화무쌍한 특징을 보인다. 더 근원적으로 따지자면 유교와 노장은 서로 반대편에 서는 사상인데 이 둘을 하나로 합해서 규칙적 정형성과 변화무쌍한 다양성을 동시에 얻어낸 예는 가히 한옥이 유일하다. 한국인 특유의 혼성 기질이 여지없이 드러난 대표적 예가 바로 한옥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옥의 구체적 특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 가지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 세 가지를 요약했다.

 

 

 

 

햇빛과 친하고 바람이 잘 드는 한옥


첫째, 한옥은 바람과 햇빛을 받아들여 이용하는 데 매우 뛰어난 가옥구조를 자랑한다. 집밖과 집안에 그 비밀이 있는데, 집밖에서는 자연 지세에 맞춰 집을 짓는 풍수지리가 그 비밀이다. 집안에서는 통(通)을 최대한 살린 배치구도가 그 비밀이다. 둘을 합해보면 이렇다. 바람도 자동차처럼 다니는 길이 있는데 그 길목에 집을 짓되, 그것이 거추장스럽지 않게 집을 짜면 집 안에는 항상 시원한 바람이 오간다. 햇빛도 마찬가지이다.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는데, 이를테면 해바라기처럼 거기에 맞춰 집도 쫓아다니면 집 안에는 항상 따뜻한 빛이 가득 찬다. 물론 겨울에는 바람을 피하고 여름에는 햇빛을 피하는 상식쯤은 가장 잘 지키는 지혜로운 집이 또한 한옥이다. 바람은 여름에 유리하고 햇빛은 겨울에 유리하니 한옥을 친환경 주택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통을 살린 배치구도는 곧 한옥의 공간적 특징으로 발전하는데,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구조가 그것이다. 문을 다 열면 각목으로 짠 상자 뼈대처럼 되는데, 여기서부터 문을 하나씩 닫을 때마다 집은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한다. 뚫리고 막히는 방향과 정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쪽을 막고 저쪽을 뚫을 수도 있고 이쪽저쪽 다 막고 요쪽만 뚫을 수도 있다. 가히 가변형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그것도 힘들이지 않고 창문 여닫을 힘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셋째, 한옥은 마당과 함께 있어야 건물의 장점이 충분히 발현된다. 한옥의 건축적 공간적 성격은 집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집 밖의 빈 마당이 있어야 완성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옥에서는 많은 방들이 앞뒷면에 모두 창이나 문을 갖는데 이것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앞뒷면에 모두 마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도 다닐 수 있고 바람도 잘 통하며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혹은 한옥은 각 채에 꺾임이 많은데 이것을 담아내는 주변의 여백이 있어야 불편해지지 않고 오히려 공간이 풍부해지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데, 중요한 것은 한옥의 특징들은 번호 붙여 나열할 성질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러 특징들이 교합으로 작동하면서 다양한 특징들을 추가로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통은 식구들 사이의 간접 의사소통을 늘려주면서 동시에 집안에서 환기와 통풍을 최대로 늘려준다. 사람 사이에 연락이 오가는 길과 바람이 통하는 길은 결국 같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구조는 남향을 면한 벽의 면적을 늘려서 겨울에 햇빛을 집안 구석구석에 들이는 데 유리하다. 한옥은 마음만 먹으면 북향 방이 하나도 안 나오게 할 수도 있는 구조를 갖는 가옥이다.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구조는 마당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효과도 준다.

 


사실 마당 없는 한옥은 흔히 하는 말로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이런 여러 내용들이 종합적으로 잘 드러나도록 돕는 것이 마당이다. 마당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가회동의 도심 한옥만 가도 사람들은 좋다고 난리들인데 마당을 맘껏 살린 시골에 있는 진짜 한옥은 도심 한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요즘 아파트에 싫증난 사람들이 한옥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옥의 특징을 충분히 알고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옥에 사는 진짜 의미를 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옥은 최소한 여름에 에어컨 없이 살아야 진짜 한옥에 사는 것이다. 껍질만 한옥처럼 지은 다음 통유리 붙이고 에어컨 달고 사는 것은 한옥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목조-기와-개인집’에 사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한옥이 절대선도 아니다. 한옥에 살아본 적이 있는 어르신들은 불편한 점에 대해서도 많이들 말씀 하신다. 한옥이 안 맞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신경이 예민하거나 프라이버시 침해가 정말 싫은 사람은 한옥을 피하는 것이 좋다. 한옥의 장점은 매우 세밀하고 섬세한 것이어서 적성에도 맞고 그것을 잘 알고 즐길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선물을 선사할 것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별무 효과이고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다도(茶道)와 같다. 티백으로 된 녹차 마신다고 어디 가서 다도라고 할 수 없듯이, 한옥에도 도가 있어서 이것을 지키고 즐길 줄 알아야 한옥에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