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털어 회사살리기 ‘올인’
신발업체서 첨단기업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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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화승그룹 고영립(60·사진) 회장은 “고통스런 회생작업이 한창이던 2004년 당시 피부암과 위암까지 겹쳐 생사의 기로에 직면했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했다”며 “그 결과 외환위기 직후 8400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2조6000억원까지 올라서는 등 튼튼한 회사로 거듭났다”고 밝혔다.
고 회장은 “매일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회사를 돌며 올빼미, 소방수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투혼을 불사르고, 1년 중 반을 해외에 있을 만큼 달리고 또 달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사재까지 출연하면서 도산 위기에 빠진 그룹을 되살린 고 회장은 그룹 오너 집안과는 관련이 없는 전문경영인이다. 그는 1976년 그룹 공채로 입사해 입사 32년 만인 2008년 그룹의 총수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고 회장이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루기까지는 시련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르까프’ 브랜드로 유명한 화승그룹은 1990년대 세계 최대 신발 생산회사로 국내 재계 22위에 랭크될 만큼 잘 나가는 중견기업이었다. 그러나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던 화승그룹도 외환위기의 칼날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1998년 계열사 가운데 화승과 화승상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 원인이었다. 그룹이 도산 위기를 맞게 되자 오너인 현승훈 회장은 고 회장을 ‘구원투수’로 두 회사 대표에 임명했다.
고 회장은 당시 9억3000만원 정도 되던 전 재산을 담보로 잡히고 회사자금을 대면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금융 등 비주류 업종을 정리하는 등 11개 계열사를 8개로 줄이고, 핵심역량사업에 집중해 회생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베트남에 세계 최대의 신발생산회사를 설립하고, 첨단사업으로 업종을 변경하는 등 적극적인 경영으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이같은 그의 노력으로 2005년 회사는 6년 만에 화의를 종결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화승그룹은 스포츠 브랜드로 대변되던 기존 사업군 외에 자동차 부품소재, 정밀화학, 물류유통 분야 등으로 신사업을 개척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이다.
고 회장은 “올해 매출 3조원 달성하고, 2020년에는 매출 10조원을 올리는 글로벌 그룹으로 거듭날 또 한 번의 드라마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홍성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