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송희영 논설주간
영세상인, 중소기업 돈줄 마른건 은행 대형화 정책의 산물
최대·최고가 最强이 아니라 최악의 악마가 될 수 있다
‘북극해의 골드만삭스’라던 은행이 있었다. 아이슬란드 카우프싱(Kaupthing)은행이 1996년 이후 몸집을 해마다 두 배로 늘리면서 얻은 애칭이다. 6년 전 덴마크 중견은행을 인수했을 때 몸값은 최고점을 찍었다. 다른 사람이 불러주던 별명은 이때부터 은행 임직원 스스로가 뽐내며 자랑하는 이름으로 변했다.
북극해의 골드만삭스가 신봉한 경제 신앙은 ‘큰 것은 강하다’였다. 남의 돈 빌려서라도 덩치를 키우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3배 이상 많아지고 2007년에는 유엔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치켜세웠을 때 온 국민의 대물(大物) 숭배는 비등점을 넘어섰다.
버블이 무너진 지금 그들에게 새롭게 스며든 종교는 ‘큰 것은 위험하다’거나 ‘큰 것은 나쁘다’는 것이다. “밤새 열대야에 잠을 설치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앞마당에 하얀 눈이 30㎝나 쌓였더라.” 금융 위기의 충격을 어느 이코노미스트가 이렇게 말했다.
카우프싱을 포함한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은 거대한 악마로 변해버렸다. 죄 없는 국민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세금을 더 내야 하고, 인플레와 부동산·주식값 폭락에 쪼들린 고난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거대할수록 튼튼할 것이라는 믿음을 맹목 추종했던 대가다.
어디 아이슬란드뿐인가. 대부분의 나라가 클수록 선(善)하고 좋다는 대형화 정책을 추진하다가 참사를 겪었다. 세계 최대의 은행 씨티, 세계 최대의 증권회사 골드만삭스, 스위스의 최대 은행 UBS와 크레디스위스 등 ‘최대’ ‘최고’라는 간판이 하나같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덤터기를 씌웠다.
거대화가 몰고 온 재앙에 질겁한 나머지 큰 것을 경계하는 정책이 벌써 세계적인 흐름이다. 그저 감독의 강도를 높이며 감시의 눈총을 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형 금융회사에는 별도 세금(은행세)까지 물리는 추세다. 더구나 아예 덩치를 키우지 못하게 누르고 너무 큰 것은 쪼개라는 강압적인 주문까지 나온다.
오바마 정권이 추진하는 금융개혁이 대표적이다. 금융회사의 무한정 팽창을 제한하고, 금융 재벌은 분할 경영을 하라는 취지다. 유럽서도 적정 규모 논쟁이 한창이다. 회사의 적당한 크기에 대한 정답이 있을 턱은 없지만, 망하더라도 국민과 국가 경제에 치명상을 주지 않을 크기를 탐색하는 공감대가 강하다.
이처럼 고장난 부위를 고치는 데 열중하는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은 지켜보고만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오바마 개혁안이 통과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선진국이 하는 것을 다 본 후에 천천히 해도 된다고 했다. 미국·유럽은 너무 커서 줄여야 할지 모르지만, 한국은 회사 규모를 지금보다 더 키워야 한다는 논리도 강하다. 어쨌든 긴박감은 낮고 느긋한 관람객 행세다.
하지만 무작정 대형화로 달렸던 정책은 이미 문제를 낳고 있다.
13년 전 외환위기 이후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이 시장의 7할 이상을 점유하게 됐다. 4대 은행은 지난 5년 사이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고객에게 대출을 3분의 1로 줄인 반면, 1등급 고객에게는 2배 이상 늘렸다는 통계가 있다. 영세상인과 중소기업이 갈수록 돈줄을 찾지 못하는 현실은 바로 대형화 정책의 산물이다.
그러면서도 2008년 금융위기 때는 4대 은행이 모두 달러 부족에 허덕이며 자금 경색을 부채질하는 모습을 보였다. 큰 은행이 방파제가 되기는커녕 위기를 가중시킨다는 논란을 빚었다.
금융업에 골몰하는 재벌에도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 내 금융 계열사는 10개에 달하고, 금융 계열사가 그룹 내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50.9%·2008년)이 넘는다. 그룹 전체의 순이익 중 금융 쪽 비중도 15.8%다. 이런 금융·산업 복합 재벌을 쪼개지 않으면 한국판 카우프싱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만약’은 일어나기 힘든 상황을 전제로 하지만, 삼성의 금융 사업이 실패하면 온 나라가 맛볼 타격은 측정하기 힘들다. 우리는 최대가 반드시 최강(最强)은 아닐뿐더러 도리어 최악의 악마가 될 수 있음을 실컷 보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반문조차 해보지 않고 믿었던 신앙을 가장 극적으로 뒤집는 배신자는 언제나 최대 규모의 회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