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대출의 오해와 진실

2010. 4. 16. 09:50C.E.O 경영 자료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금리 올라도 이자 부담 감수할 만하다

실물 경기 회복세가 주춤하자 또다시 비관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의 일방적인 주장과 달리 구체적인 수치를 들이대면서 부동산 시장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타당한 논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가장 흔하게 거론되는 것이 ‘가계 대출’ 문제다. 일부 논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 대출, 그중에서도 주택 담보대출이 비정상적으로 많기 때문에 조만간 버블이 꺼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부채 규모가 550조 원에 달한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면서 공포감을 키우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나오는 매물 때문에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예상된다는 논리다.

게다가 대출금의 규모가 2008년에는 42조 원 가까이 불어났고 2009년에도 35조 원 가깝게 늘었다고 한다. 수치만 놓고 보면 가계 파산의 시기가 머지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으로 이어질까

그렇다면 이런 전망이 사실일까.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0년 1월 현재 우리나라 가계 대출 규모가 550조 원이라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마이너스 통장 등을 이용해 개인이 빌린 대출금과 학자금 대출 등이 포함된 수치다. 이 가운데 주택 담보대출은 은행권에서 264조8000억 원, 비 은행권에서 64조7000억 원으로 329조5000억 원에 불과하다. 전체 가계 대출의 60% 정도가 주택 담보대출인 것이다.

이 수치는 얼마나 큰 금액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추계 가구 수는 1715만2277가구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구당 평균 대출액은 1921만 원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구 수가 아니라 주택 수를 기준으로 보아도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이 100%를 초과했으므로 오히려 적게 나온다. 가구당 대출금이 1921만 원이라는 것은 대출금리가 1% 증가했을 때 가구 부담이 연간 19만 원 정도 증가한다는 의미다.

한 달에 1만6000원 정도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고 집을 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결국 550조 원이라는 수치만 보면 상당히 큰 금액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 규모나 가구 수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규모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도 일부 사실을 확대해석한 면이 없지 않다. 가계 대출 규모는 2008년에 41조9000억 원이 늘어 전년 대비 8.8% 불어났고 2009년에도 34조8000억 원이 불어나 전년 대비 6.7% 정도 커진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대출이라는 측면만 부각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면서 부채의 액면 가치가 커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것이 마치 재무건전성이 떨어진 것처럼 느끼는 착시 현상을 가져오는 것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자연히 부채도 늘게 되지만 동시에 자산도 불어나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개인 부문 부채 규모는 2009년 말 기준 855조 원으로 전년 대비 6.5% 늘었지만 개인 부문 자산 규모는 무려 1995조 원으로 전년 대비 18.5%나 불어났다고 한다.

2009년의 경우 금융자산이 금융 부채 대비 233%가 되는 등 재무건전성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국은행이 발표했다.

수치나 통계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례는 또 있다. 우리나라는 자산의 비중이 부동산에 편중돼 있는데 선진국은 부동산이 전체 자산의 30%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미국을 예로 살펴보자. 그런데 이것이 미국 사람들은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미국에서도 내 집 마련은 재테크의 1순위다. 먼저 내 집을 마련한 후 그다음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 후 몇 년 안에 대부분 내 집을 마련한다. 30대 초반의 중산층이면 대부분 집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체 가구 수에서 집을 가진 가구의 비율인 자가 보유율이 70% 정도로 65%인 우리나라보다 높은 것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기 집을 보유한 사람의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높은데 금융자산의 비율이 우리보다 더 높은 것은 어떤 이유일까.

재테크 시작은 내 집 마련

미국부동산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에 따르면 2010년 2월 말 현재 미국 주택의 평균 거래 가격은 21만 달러 정도다. 그런데 부동산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정도라고 했으니 미국 사람의 평균 자산 규모는 70만 달러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이 사실일까. 절대 아니다. 은행에 1만 달러(1000만 원 정도)만 예금해도 VIP 대접을 받을 정도다. 예금계좌에 1만 달러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이런 모순은 왜 발생할까. 우리 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미국 평균 주택 가격이 21만 달러라는 것은 통계에서 나온 정확한 수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21만 달러 전체가 순자산은 아니다.
 
미국에서 집을 살 경우 보통 80% 이상의 은행 대출을 끼고 산다. 결국 집값은 21만 달러지만 그중 부채가 대부분이고 순자산 개념으로 보면 4만~5만 달러 정도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역산해 보면 미국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우리식으로 해석한 70만 달러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러면 나머지 자산은 은행이나 증권 계좌에 있을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금융자산이 401k라고 불리는 은퇴연금 등에 묶여 있는 것이다.

결국 샐러리맨이 월급을 타더라도 강제 저축 형태인 401k에서 돈을 떼고 모기지론을 갚고 나면 저축할 여력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인 저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비율이 전체 자산에서 30% 수준으로 낮아지게 될 때가 올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대출에 규제가 있기 때문에 은행에서 대부분의 자금을 빌려서 집을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대출 규제가 있는 한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 가능성은 작다.

선진국이 될수록 부동산 선호 비중이 작아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선진국의 실상을 모르는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다. 재테크의 첫걸음이 내 집 마련에 있다는 것은 세계 그 어떤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