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
은행연합회는 25일 은행지주회사와 은행의 CEO(최고경영자)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지 않고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권장하는 내용의 '은행권 사외이사 제도 모범규준'을 의결해 발표했다. 이 제도는 은행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할 경우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전락하고 있는 금융계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대부분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다. 하지만 연합회는 동시에 '선임사외이사'를 두면 CEO나 내부 경영진이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도 허용한다는 예외조항도 마련했다. 시중 금융회사나 은행들은 이 예외조항을 활용해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어서 은행연합회 모범규준의 실효성이 논란을 빚고 있다.
다시 풀어 읽는 경제기사
최근에 신문기사를 보면 사외이사라는 말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상장기업들의 주주총회가 몰렸던 지난 3월에는 어떤 기업이 유명 대학의 모교수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는 등의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사외이사는 말 그대로 회사 밖에서 온 이사라는 뜻인데, 오늘은 이 사람들이 뭘 하는 사람들이고, 왜 필요한지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주주를 대신해 경영자를 견제·감시하는 사람
사외이사제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기업이 작으면 대체로 기업을 소유한 사람이 경영도 하기 때문에 소유자와 경영자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즉, 동네 분식집 같은 곳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점점 커져서 여러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게 되면 기업의 소유자는 여러 명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거기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더 많은 투자를 받기 위해 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되면 지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기업의 주식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기업의 소유자가 됩니다.
기업의 소유자가 한 명이고, 회사 규모도 작을 때는 소유자가 경영까지 하는 것이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유자가 여러 명이고 덩치도 커진다면 누가 경영을 맡아서 해야 할까요? 소유지분이 가장 많은 최대주주가 경영을 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최대주주라고 해서 경영까지 잘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죠. 그것보다는 기업의 소유자인 주주들의 합의로, 기업을 정말 잘 경영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해 CEO로 앉히고 경영을 맡기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이 경우 기업의 소유자와 경영자가 서로 분리됩니다. 자, 그럼 이럴 땐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기업의 경영자는 기업의 소유자인 주주들이 뽑아준 사람이므로 주주들을 위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즉, 경영자는 회사가 가능한 한 최대의 이익을 내도록 경영을 해서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경영자의 이익이 주주의 이익과 항상 일치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영자의 이익이 항상 주주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주주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회사 규모를 확대하기보다는 내실을 기해야 할 때가 있는데, 경영자는 자신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자꾸 회사 규모를 키우려 할 수 있습니다. 즉, 주인(주주)이 직접 일을 할 수 없어서 대리인(경영자)에게 일을 위임했더니 대리인이 주인과 다른 목표를 가짐으로써 주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대리인인 경영자가 주인인 주주들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라고 합니다. 기업지배구조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 이사회(board of directors)입니다.
이사회는 주주들이 뽑은 이사들로 구성돼 주주의 이익을 위해 경영자들의 의사 결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사회의 구성원인 이사 중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회사 밖에서 온 사람도 있습니다. 회사 밖에서 온 사람들을 사외이사라고 합니다.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전문성이 높아야
사외이사를 두는 이유는 경영진의 의사 결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데는 한솥밥을 먹는 회사 내부 사람들보다는 외부 인사가 더 적합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의 중요한 자격요건 중 하나로 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하면 서로 잘 모르는 사람이라야 제대로 견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 밖에서 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회사 경영진의 친척이라든지, 그 회사에서 최근에 근무했던 적이 있던 사람 등이 사외이사로 오면 아무래도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관련된 자격요건들은 대체로 법규정에 명시돼 있습니다. 은행 같은 경우에는 이를 좀 더 세밀하게 규정한 모범규준을 만들어 자율적으로 준수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사외이사의 중요한 자격요건은 전문성입니다. 회사 경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경영진의 의사 결정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은행권의 경우 사외이사 모범규준에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관련된 자격요건을 지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외이사제도의 올바른 정립은 국가 경제발전에도 기여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사외이사는 기업 경영자가 주주가치 즉,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경영을 하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업의 경영자가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 등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고 기술혁신을 통해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모든 기업이 이렇게 운영될 때 그 나라 경제는 가장 효율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따라서 사외이사제도의 올바른 정립은 기업가치의 증진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정책당국에서는 사외이사제도가 올바르게 정착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배우는 경제 tip
주인이 직접 일을 할 수 없어 대리인에게 그 일을 위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주인과 대리인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아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도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를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고 합니다.
주주의 경우 회사가치가 극대화되고 이익이 많이 나야 자신의 이익도 극대화됩니다. 하지만 경영자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영자는 주주들이 원하는 최적의 투자안보다 덜 위험한 투자안을 선택함으로써 투자실패에 따른 책임을 피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업무 추진에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회사 비용으로 호화사옥을 짓거나 개인 비서를 여러 명 두는 등 지나치게 많은 경비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경영자가 회사보다 개인을 위해 일하더라도 주주들이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회사 경영의 일선에서 떨어져 있는 주주들은 회사의 경영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실제로 일을 하는 대리인이 주인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정보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이 주인-대리인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