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황정일] A건설은 2006년 매출의 90% 이상을 주택사업에서 번 것이었다. 주택업이 위험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김모 회장은 2007년부터 레저업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모색했다. 그러다 ‘밭만 갈고 씨를 뿌리지 못한 채’ 지난해 부도가 났다. 김 회장은 “주택사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사업 방향을 진작 틀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요즘 중견 건설업체들이 벼랑 끝에 몰린 것은 주택사업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A사처럼 주택업에만 명운을 맡기는 업체가 많다. 문제는 주택사업 자체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나 금융권에 쉽게 휘둘린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많은 업체가 쓰러졌지만 침체의 시작은 지금처럼 부동산 규제 정책이었다.
집값 상승을 우려한 김영삼 정부가 1995년부터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를 내놓으면서 주택시장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분양이 늘기 시작해 97년 말에는 8만8000여 가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장희순 교수는 “집은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여서 정부가 주택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시장논리를 중시하는 현 정부조차 대출규제 확대 등 주택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규제가 강화되는 시점에 금융권이 자금줄을 조이는 상황도 외환위기 때와 같다. 지난달 부도난 B사는 은행에 20억여원의 추가 대출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 회사는 번 돈보다 대출이자로 내는 돈이 더 많았다. 메리츠증권 강공석 연구원은 “미분양 등에 돈이 묶여 있는 주택업체들은 은행이 돈줄을 죄면 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외환위기 때는 은행들이 살기 위해 자금회수에 나선 것이지만, 요즘은 정부와 금융권의 부실채권 정리 차원이라는 게 다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어려운 회사는 정리를 하든가, 워크아웃을 통해 회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중견업체들이 벼랑 끝에 몰린 게 단지 이 때문만은 아니다. 마구잡이로 땅을 사 미분양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2005~2007년 경기가 좋을 때 공급을 늘리고, 고가 분양을 한 것도 화근이 됐다는 지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분양대행사 사장은 “광주광역시 같은 지방 일부 대도시는 2006년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는데도 수만 가구씩 추가 공급이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주택사업 비중이 큰 주택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지던 외환위기를 경험하고도 주택사업에만 치중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중견건설사 임원은 “외환위기 이후 사업다각화를 위해 토목이나 해외 사업에 눈을 돌린 중견업체들도 적지 않다”며 “이런 업체들도 요즘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주택전문 업체들처럼 최악의 상황에 몰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찬호 연구위원은 “주택사업은 정부 정책에 쉽게 휘둘리는 천수답 구조”라며 “그 때문에 사업다각화 등의 리스크(위험요소) 분산을 통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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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위기 고질병’ 왜
2010. 6. 11. 09:04ㆍ건축 정보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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