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도 질좋은 교육 받는 사회를”

2010. 6. 19. 07:58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가난한 아이도 질좋은 교육 받는 사회를”
고액과외 강사였던 신선영씨
공부방 직접 차려 무료수업
떠돌던 아이들 검정고시 합격
“인생 사는 방법도 가르치고파”
한겨레 송채경화 기자 메일보내기 박종식 기자 메일보내기
» 공부방 ‘조이 스터디’의 신선영 선생님(가운데)이 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동 공부방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성동구 마장동 허름한 다세대주택 3층에 있는 공부방. 이곳에선 저녁마다 아이들의 서투른 영어 발음이 흘러나온다. 공부방을 만든 이는 유창한 영어 발음을 가진, 전직 고액 영어과외 선생님 신선영(51)씨다. 신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당 15만~20만원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2000년부터 3년 동안은 서울국제학교에서 영어 교사 생활도 했다.

신씨가 인생의 항로를 바꾼 건 지난 2004년 5월. 성동구 행당동에 ‘조이 스터디’라는 공부방을 직접 차린 뒤 마장동으로 옮겼고, 지금은 이곳에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친다.

“1998년부터 소년원에서 상담사로 활동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생활을 알게 되었어요. 국제학교 학생들이나 고급 과외를 받는 아이들과는 너무 달랐고, 부잣집 아이들만 고급 과외를 받는 현실이 불공평하다고 생각돼, 결심을 한 거죠.”

1983년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재미동포인 남편을 만나 정착했던 신씨는 1992년 이혼 뒤 한국으로 돌아와 홀로 외아들을 키워왔다. 한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에 저항하면서, 세상을 보는 신씨의 눈은 더 깊고 넓어졌다. 신씨는 “넉넉한 형편의 아이들이야 얼마든지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공부방을 운영하면서도 고액 과외 제의가 계속 들어왔지만, 그만큼 공부방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 써줄 것 같아 거절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조이스터디’를 거친 학생들은 서른 명이 넘는다. 특히 이 가운데 4명은 지난해까지 신씨의 아들 백한전(20)씨와 함께 공부방에서 먹고 자며 ‘홈스쿨링’을 했다. 정규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영어뿐 아니라 운동을 하고, 음악을 듣고, 연극도 하며 자유로운 공부를 했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피시(PC)방을 떠돌았던 이 학생들은 공부방에서 함께 공부하며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신씨는 이들에게 엄마이자, 선생님이자, 상담사였다. 신씨는 “언젠가 아들이 어버이날이 아닌 스승의 날에 꽃을 달아주더라”며 “가정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공부방 아이들을 6년 동안 내 자식처럼 키웠다”고 말했다.

최근 신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잠시 중단하고, 다른 교사들한테 아이들을 맡겼다. “살면서 자신이 살아온 동네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한테 중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부터 배워야 해요.”

신씨는 현재 이 공부방에 다니는 15명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해 줄 체계적인 교육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 신씨는 “기초지식이 있어야 학습에도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아이들이 삶을 의욕적으로 살 수 있는 마음의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