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말 전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부자들의 재테크 방식이 '보수'로 돌아섰다.
은행의 몰락 속에 주가와 집값 등 폭락을 목격한 투자자들은 고수익을 줄 수 있지만 위험이 큰 투자보다는 안정적인 투자를 추구한 것.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절세나 연금 등 금융위기 전에는 재테크라고 하기 어려웠던 방식에 집중하고, 일본에서는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찾아 헤매는 '금리사냥'이 확산됐다.
◆ 현금ㆍ채권 선호도 급증
= 컨설팅회사 캡제미니와 메릴린치가 최근 공개한 '세계 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부자들의 투자자산 중 가격 등락이 큰 주식과 부동산 비율은 금융위기 이후 대폭 낮아진 반면 안전자산인 현금과 채권 비율은 월등히 높아졌다. 전 세계 71개국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는데, 이들은 거주용 주택을 제외한 자산 100만달러 이상 보유자들이다.
주식과 부동산 비율은 시장이 호황기던 2006년 각각 31%, 24%였지만, 2009년에는 29%, 17%로 낮아졌다. 올해는 이 비율이 더욱 떨어져 28%와 1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또 헤지펀드, 파생상품, 외환 등 위험도가 매우 높은 대체투자의 비율은 2006년 10%에서 지난해에는 6%로 급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현금ㆍ예금, 채권 투자비율은 2006년에 각각 14%, 21%에 불과했지만 2009년에는 17%, 31%로 높아졌다.
◆ 절세ㆍ연금ㆍ고금리상품에 목매
=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 부자들의 투자 방식이 전반적으로 보수화했지만 국가별 재테크 방식은 다소 차이가 난다.
미국은 금융위기의 진원지로서 어느 나라보다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미국인들이 선택한 재테크는 바로 '절세'다. 지난해 이후 세금 정산 기간이 되면 가장 많이 팔리는 프로그램에 세금정산 프로그램이 꼽힐 정도로 '절세'를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또 주택경기가 침체됐지만 세금 혜택이 가장 큰 30년 만기 장기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여전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와 함께 펀드 투자에서도 세금 부담이 있는 직접 가입보다는 세금 혜택을 위해 퇴직연금을 통해 펀드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비율이 지난해의 경우 70%에 육박했다.
금융산업이 발전한 영국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재테크 수단은 퇴직연금이다. 2008년 한 해 동안 판매된 개인연금 건수는 42만5000건으로 같은 해 태어난 아이 수보다 더 많다. 스티븐 화이트 헤드 PCA그룹 총괄이사는 "금융위기 이후에도 개인연금시장으로 자금이 안정적으로 유입되고 있다"며 "위기 이후 크게 유출된 은행권과는 다른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인들이 퇴직연금에 집중하는 이유는 금융위기로 복지 혜택이 향후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가족 중 아이가 태어나면 일시불로 250파운드(약 46만원)를 지급하는 혜택이 내년부터 중단된다. 2009년 현재 영국에서는 공적연금과 개인연금을 합친 소득대체율이 평균 70%로 퇴직 후 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부동산과 주식 폭락의 쓴맛을 1990년대 이미 맛본 일본에서는 높은 금리의 금융상품을 찾는 것이 재테크의 대세다.
실질금리 0% 시대를 맞아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상품에 주목하는 것이다. 일본 재테크시장은 대부분 이른바 '단카이세대'라고 불리는 전후 베이비붐 시대에 출생한 사람들이 이끌고 있는데, 은퇴자금으로 남은 노후생활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고금리 상품에 목맨다.
김도현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금리에 매우 민감하다"며 "특판예금 금리를 0.5%포인트만 올려도 투자자들이 엄청나게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 윤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