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원 움직이는 기금운용본부를 가다

2010. 8. 12. 09:47C.E.O 경영 자료

우리나라 자본 시장에서 단일 기관으로 가장 큰 손은 어디에 있을까? 증권사들이 모여 있는 여의도에 있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강남구 논현동 도산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철 3호선 신사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한 해 국가 예산과 맞먹는 300조원의 자산을 굴린다. 현재 우리나라 채권 발행 잔액의 16%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4.4%를 갖고 있다. 여기에서 지난해 58%에 이르는 주식운용 수익률을 올렸으며, 런던 금융가의 상징인 HSBC타워를 1조5000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총 123조원이 넘는 기금 운용 수익을 올리며 300조원 돌파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하고 있는 기금운용본부를 찾았다.

평범한 건물, 비범한 해외투자=300조원을 운용하는 이유로 인텔리전트한 고급 사무공간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기금운용본부는 그야말로 평범한 로비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하는 사무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대형 투자 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안 검색대조차 없었다.

그런 속에서도 건물 9층에 위치한 해외투자실 분위기는 평범하지 않았다. 해외 주식 시황을 보여주는 차트나 수치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 세명씩 모여 투자전략을 논의하는가 하면, 유창한 영어로 해외 투자처와 직접 대화하는 직원들도 눈에 띄였다. 이들이 바로 독일 소니센터, 영국 개트웍 공항 지분, 런던의 HSBC타워 등 수천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단행한 인물들이다.

해외투자실은 국민연금 300조원 시대를 맞아 가장 바빠진 곳이다. 오는 2015년까지 해외투자 비중을 20% 정도로 늘리는 것으로 되어 있어 다양한 투자처 발굴에 나서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는 해외 주식에 대한 직접 투자도 가능해져 더욱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 이런 탓에 해외 투자실은 기금운용본부에서 가장 늦은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다. 이런 노력은 결실로 이어져 지난해 해외 주식 투자에서 25%의 수익률을 올렸다.

기금의 미래 투자처를 발굴하는 까닭에 조직 규모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지난 2006년 해외 투자팀이 만들어졌으며, 다음해인 2007년 해외투자실로 격상됐다. 이렇게 커진 해외투자실에는 현재 총 22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는 200조원의 자산을 다루는 증권운용실 인원과 맞먹는 규모이다. 해외증권 투자에 12명이 투입돼 있으며, 나머지 9명은 해외 부동산 및 대체투자를 담당한다.

기금운용본부 안의 큰 손, 증권운용실=기금운용본부 안에서도 큰 손들은 증권운용실에 모여 있다. 23명의 직원들이 200조원 정도의 자산을 움직인다. 1인당 10조원 정도의 자산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펀드매니저들의 평균 운용 자산이 4186억원에 이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보다 20배나 많은 자산을 움직이고 있다. 23명 중에 5명이 국내 주식, 9명이 국내 채권을 담당한다. 그리고 8명이 리서치팀에 소속돼 각종 보고서를 작성한다.

소수정예로 움직이는 증권운용실이지만, 이들의 활약은 엄청나다. 지난해 국내 주식투자를 통해 무려 58%에 이르는 수익률을 달성했다. 이는 금액으로 환산하면 15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지난해 기금 운용을 통해 벌어들인 전체 수익금 26조원의 60%에 달한다.

증권운용실이 이 정도의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그 만큼의 리스크를 부담해야 했다. 다름아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증권운용실이 저가 매수에 나선 것. 1800포인트를 넘던 종합주가지수(KOSPI)가 900선까지 밀리자 증권운용실은 과감하게 주식을 매수하는 전략을 펼쳤고, 그 결과 2009년에 58%의 주식운용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증권운용실 관계자는 “당시 기금운용본부 차원의 결단이 있었기에 주식 매수가 가능했다”며, “팀웍을 바탕한 공동 의사 결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기금운용본부에는 이들 이외에 국내 부동산 투자 등을 담당하는 대체투자실과 지원부서 직원 등 총 12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한명 한명의 역할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오는 2020년에 기금운용을 통한 수익이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는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이들의 손에 국민연금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도제 기자/pdj24@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