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15. 09:14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한은, 금리 석달째 동결…‘환율’ 지키려 ‘물가’ 버렸다
한겨레 | 입력 2010.10.14 19:50
[한겨레] 9월 생활물가 4.1%↑
농산물 값은 32.7%↑
"물가잡기 손놨나"
환율하락 추세도
되돌리긴 힘들듯
"금리인상 또 때놓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연 2.25%인 기준금리를 석 달째 동결했다. 물가안정과 환율방어 카드를 놓고 딜레마에 빠져 있던 금통위가 물가 카드를 접고 환율 카드를 집어든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핵심 목표인 물가안정을 포기한 채 환율방어용 금리동결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은은 14일 금통위를 열어 "주요국 경기와 환율 변동성 확대가 세계경제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준금리를 현행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4분기 이후 내년까지 우리나라 물가상승률 예상치가 3%를 넘는 상황이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환율 등) 모든 변수를 고려할 때 '고뇌에 찬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금통위의 금리 동결 결정은, 금리 인상때 국내외 금리차가 확대되고 이는 글로벌 유동성의 국내 유입으로 이어져 환율 하락(원화 상승) 폭이 더 커지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 태국 등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환율전쟁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추세적으로 떨어지는 환율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다음달 초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양적완화 조처를 결정하고, 달러가 시중에 풀리기 시작하면 환율 하락 추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환율방어보다 더 시급한 것은 물가 오름세다. 물가는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6%, 생활물가지수는 4.1%로 급등했다. 서민들의 밥상머리 물가는 더 심각하다. 한은 자료를 보면, 농산물 가격상승률은 지난 8월 12.3%에 이어 9월에는 32.7%까지 치솟았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이번 달 농산물 가격 상승은 기후변화에 의한 예상치 못한 일로,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물가상승률이 3.6%이지만 이러한 외부충격을 고려하면 2.9%에 그친다"고 말했다.
김 총재의 발언과 달리, 대외적인 측면에서도 물가압력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9월 수입물가지수는 넉 달 만에 반등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7.8% 올랐다. 수입 물가는 보통 한두 달의 시차를 두고 생산자물가에 반영되고, 생산자물가는 두세 달 뒤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국제 곡물 값도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밀은 35.4%, 옥수수는 41.5%, 콩은 10.3% 올랐다. 국제 곡물 값은 보통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내년 초에는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곡물 값이 오르면 사료 값도 올라 육류 가격도 따라 오른다. 그동안 잠잠하던 국제 유가도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최근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다.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를 정상화하지 않는다면 가계 거품을 더 키우게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6월 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대출 잔액은 711조6000억원에 이른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부)는 "금리를 조금씩 올려 사람들이 가계부채를 정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그러지 못했다"며 "지금 금리를 못 올리면 언젠가 큰 폭으로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경제에 더 큰 충격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지난달 "우측 깜빡이를 켜면 우회전 한다"며 시장에 금리 인상 신호를 줬지만, 이번에도 신호와는 다른 길로 간 셈이 됐다. 한은 안팎에서는 이번에 금리를 동결하는 바람에 다음달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12월 연말 변수로 말미암아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총재의 '실기'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달에도 금리 인상을 머뭇거리다 한 달 사이 전 세계가 환율전쟁에 휩싸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도 금통위는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하고 정부의 8·29 부동산 대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금리를 동결해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현 정부 정책 기조가 환율을 하락시켜 내수기업과 중소기업을 살리기보다 환율을 올려 수출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을 선호했는데, 금통위의 이번 금리동결 역시 이에 따라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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