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여성들의 반란

2010. 11. 12. 09:05이슈 뉴스스크랩

<30대여성들의 반란> ③ 심판대에 오른 결혼(끝)

결혼하지 않는 여성 증가세..비혼자 공동체 인기
새 가족제도 시도되고 출산율 급락도 불가피 전망
1인가구 지원책 전무..비혼자 배려정책 마련해야

연합뉴스 | 입력 2010.11.11 07:31 | 수정 2010.11.11 08:18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제가 원하는 따뜻함과 도움은 비혼(非婚) 친구들과 꾸린 공동체에서 다 충족돼요. 굳이 결혼할 필요를 못 느끼죠."

서울에서 여성주의 의료생활협동조합 발족을 추진 중인 유여원(30.여)씨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과 공동으로 집을 구해 함께 산 지 올해로 7년째다.

늘 같은 사람들과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동거인들은 언제나 함께 집안일을 하고 삶의 계획과 고민을 공유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의사와 물리치료사인 현재의 동거인들은 여성주의 활동을 하며 만났고, 의료전문가들과 함께 의료나 건강 관련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료생협 활동도 추진 중이다.

유씨는 "내 삶은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다른 여성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만 "비혼의 삶에 큰 불편은 못 느끼지만, 신혼부부와 다자녀 부부가 누릴 수 있는 대출이나 청약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 미혼여성 계속 늘어날 전망

현대 여성들에게 이제 결혼은 당위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다.

통상 결혼 적령기를 조금 넘겼다고 보는 30대 초반 여성은 10명 중 3명, 30대 후반 여성은 10명 중 1명꼴로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된다.

40대 이상 여성들이 주로 20대에 혼인을 해 현재 99%가 결혼을 경험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결혼에 대한 통계청의 올해 사회조사에서는 15세 이상 미혼여성의 46.3%가 '결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답했다.

'해야 한다'는 응답 46.8%와 비슷했지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답도 4.7%에 달해 미혼여성의 계속적인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작년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30~34세 미혼여성이 주로 꼽은 이유는 '결혼시기를 놓쳐서'(17.6%),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15.8%), '상대방에 구속되기 싫어서'(10.7%), '결혼생각이 없어서'(7%) 등이었다.

'소득부족'(8.5%)이나 '결혼비용이 마련되지 않아서'(5.5%) 등의 경제적 이유도 있었지만 많은 여성은 가치관과 관련된 이유로 결혼하지 않았다.

이는 경제가 성장하고 노동시장이 안정된다고 하더라도 결혼에 즉각 나설 여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9~44살 미혼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1.9%가 '결혼의 적령기는 없다'고 답했다.

윗세대가 정한 '적령기'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말은 사회와 가정에서 아무리 결혼 압력을 받는다 하더라도 자기 확신이 없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정책센터장은 "조사한 미혼여성들은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을 못 만났다'고 말하는데 결국은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남자의 조건을 까다롭게 따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센터장은 "지금의 여성은 20대의 주된 과제가 취업이지 결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미혼에서 오는 심리적 좌절감이 있다 해도 성취 지위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를 상쇄한다"며 "큰 변화가 없는 한 여성들의 미혼율은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 기존 가족 흔들리고 새 가족제도 탄생

원했든 원치 않았든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면 전통적인 결혼과 가족제도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젊은 남녀들은 결혼제도에 진입해 가족을 이루면서 법률적 보호를 받았다.

자녀의 생산과 양육은 결혼을 통한 가족 안에서 주로 이뤄졌다.

가족 구성을 포기하는 여성이 늘면 혈연의 재생산을 근간으로 하는 가족제도는 힘을 잃고 출산율은 더 곤두박질 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유럽 국가처럼 혼인외 출산이 늘어날 가능성도 적다.

아이를 원한다 해도 맞벌이 부부조차 겁내는 육아비용을 홀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여성은 소수에 불과하다.

반면 개인 삶의 영역에서는 미혼여성들이 이전 세대 여성들이 보여주던 생애주기를 탈피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황정미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만혼 또는 비혼이 늘면서 20대 결혼, 30대 출산이라는 기존의 공식은 무력해졌다"며 "사회적 성취를 위해 매진하거나 혈연 가족의 틀에서 해결했던 고독, 양육, 경제적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다양한 시도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연스럽게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표본가족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 또는 공동체가 이미 등장했다.

전주의 한 비혼여성공동체의 구성원 7명은 같은 아파트에 따로 집을 구해 살면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여기서는 다양한 학습과 토론을 통해 결혼하지 않고도 자신을 성장시키며 행복하게 사는 방안을 고민하고 구성원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함께 대처한다.

8년 전 이 모임을 시작한 김난희(40)씨는 "'비비'는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는 든든한 배경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됐다"며 "지향점은 다르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많은 형태의 공동체가 구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 1인 가구 정책 부재

미혼이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큰 불편을 느낀다는 30대 여성은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한 부부를 중심으로 각종 사회보장이나 복지가 설계돼 있어 앞으로 미혼여성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혼운동을 벌이는 '언니네트워크'의 정현희 운영위원은 "노동시장이 갈수록 불안해지는데 여성은 근무기간이나 재취업 기회에서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다"며 "자원이 없고 가난한 여성은 결혼하지 않으면 그 기반이 더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다 미혼자를 고려하는 제도는 전무해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생애 전체에 걸쳐 국가의 배려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1인 가구에 가장 중요한 주거 문제를 보면, 1인 가구가 늘면서 장기임대주택을 더 많이 짖는 등 주택유형이 다양화되는 움직임도 일부 있지만, 주택 분양시장은 부양가족이 없고 가구주가 아니면 진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김 센터장은 "저출산 사회에서는 1인 가구를 지원하기 위한 논리개발이 무척 힘들다"며 "신혼부부 지원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합리적이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난다면 그들이 삶을 계획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회도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withwi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