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교수 "저소득층이 금맥 될 것"

2011. 1. 23. 10:58C.E.O 경영 자료

 

[Weekly BIZ] [Cover Story] '피라미드 저변' 이론 만든 하트 교수 "저소득층이 금맥 될 것"

앤아버(미국 미시간)= 배성규 기자 vega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위만 보지말고 아래도 보세요"
40억명… 시장 규모 5兆달러 도와줄 대상 아닌 기회의 땅…
상·중류층 시장은 포화상태…
中이 생산하고 美가 소비하는 '차이나메리카 시대' 한계…가난 해결에도 크게 도움 돼

지구 상에는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저소득층이 40억명에 이른다. 전 세계 인구의 약 70%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저소득층은 늘 소외됐다. 기업에는 상위층과 중산층만이 고객이고 시장이었다. 저소득층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이따금 도와주고 나눠줄 기부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거대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저소득층은 시장 규모가 5조달러에 이르는 거대 시장이다. 물론 이들에게 맞는 싸고도 질 좋은 제품을 만들고, 그러면서 돈도 버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하지만 까다로운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생긴 기술과 노하우는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선진국 시장에 적용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빈곤 문제를 시장 메커니즘 안에서 푸는 묘약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이야기 같은가? 바로 '피라미드 저변(Bottom of the Pyramid·BOP)' 이론이다.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쪽, 다시 말해 빈곤층을 새로운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지난 10년간 글로벌 기업의 경영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배성규 기자
프랑스 식품업체 다논(Danon)이 방글라데시에서 77원짜리 요구르트를 내놓은 것도, 유니레버가 인도에 120원짜리 세제를 출시한 것도 이 이론의 영향이다.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가 주창한 '창조적 자본주의' 역시 이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이론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스튜어트 하트(Stuart Hart) 코넬대학 교수를 Weekly BIZ가 만났다. 그와 함께 BOP 이론을 창시한 C K 프라할라드(Prahalad) 교수는 지난해 고인이 됐다. 두 사람이 함께 쓴 논문 〈저소득층의 부(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는 이 분야의 고전이다.

―저서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Capitalism at the crossroads)≫에서 자본주의가 갈림길에 서 있으며, 대변화와 재앙의 시대가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인류는 지금 가장 중요한 때를 살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지구 인구는 20억명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살아온 60년 동안 67억명으로 급증했고, 앞으로 80억~90억명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이로 인한 정치·경제·사회·환경적 변화는 그전에 없었던 것들입니다. 우리가 쉽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있었지만 이러한 변화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제 인류는 이 같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 속에서 새로운 웰빙(well-being)의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소비하고 중국이 생산하는 차이나메리카(Chinamerica) 시대는 드디어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미국이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엔진 역할을 했지만, 소비 능력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상당 정도 미국의 소비 지출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런 상호 의존 상태도 무너질 겁니다. 이와 함께 환경 파괴와 사회적 불평등, 도시화, 금융 불안정 등의 문제가 함께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합니다."

―21세기 초반의 상황은 20세기 초반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이 그런가요?

스튜어트 하트 코넬대 교수.
"인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세계화는 19세기 말 그리고 20세기 초까지 영국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영국이 시작한 자본주의적 세계화는 20세기 초에 무너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세계 경제공황이 있었으며, 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위기가 곪아 터진 것이죠. 이 모든 일들이 영국적인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무너지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 이끄는 자본주의적인 세계화는 19세기 말보다 더 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20세기 초의 상황보다 더 중대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20세기 초반과 유사한, 아니 그보다 더한 위기라는 겁니다."

지난 50~60년간 선진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저개발 국가들의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엄청난 돈을 지원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이젠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공부문이 실패한 일을 어떻게 사기업이 주도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보시는 건지요?

"정부나 국제기구들이 해왔던 좋은 일들을 비판하자는 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업의 사업 계획에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포함돼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기업의 모든 자본주의적 사업 계획은 고소득층에 국한된 것이 많습니다. 자본주의는 고소득층을 위한 것이 됐고, 저소득층은 원조를 통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은 시장 밖에 있는 셈입니다. 이런 일들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로 접근하는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피라미드 저변 비즈니스 모델'은 소득 피라미드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부(富)를 쌓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겁니다.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bottom up) 접근 방식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냥 원조만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득을 높이고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스튜어트 하트(Hart) 코넬대 교수를 만난 곳은 미시간주 앤 아버에 있는 미시간대학 경영대 건물이었다. 그는 한때 이곳의 교수였고, 프라할라드 교수와 동료였다. 그가 깊이 관여하고 있는 지속가능경영연구소도 여기에 있다. 그는 매년 방학 때면 이곳에서 연구활동을 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친환경 지속 가능기업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인터뷰 전날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의 ‘피라미드 저변(Bottom of the Pyramid·이하 BOP)’ 이론은 우리 정부의 보고서에도 반영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9일 발표한 ‘빈곤층 대상 비즈니스산업의 의의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해외의 중산층 이상 시장을 주로 공략해 왔지만, 미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선 차세대 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는 BOP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와 인터뷰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미안하다. 예상치 못하게 화상 회의 약속이 잡혔는데 잠시 인터뷰를 중단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BOP 이론과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국제 콘퍼런스가 열리고 있는데, 화상으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인터뷰는 40여분 후에야 재개됐다. 그는 다양한 손짓을 써가며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하트 교수는 지금까지 피라미드 하부, 다시 말해 빈곤층 시장은 NGO나 사회복지기구가 담당해야 한다는 ‘해묵은 분업’ 논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런 조직은 혁신 능력이나 자금 동원력면에서 기업보다 훨씬 부족하다. 기업이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는 사회문제 해결에 기업이 적임(適任)이라고 보는 또 하나의 이유로 실행력을 꼽았다.

“정부가 활동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어요. 국민적 합의, 정치권의 합의가 필요하지요. 국제기구 역시 의견 일치를 보는 게 아주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기업은 다릅니다. 기업의 경우 뭔가를 추진할 때 고위층에 있는 몇 사람만 설득하면 됩니다. 그만큼 피라미드의 아래층을 위한 혁신적인 사업을 하기가 쉽다는 거죠. 더구나 다국적 기업은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짊어질 의무와 그걸 수행할 돈·기술·자원·조직과 같은 힘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피라미드의 바닥에서 금맥(金脈)을 찾는다

―많은 기업들이 봉사활동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을 돕고 있습니다. 그런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말씀인지요?

“그렇습니다. 물론 종업원들이 봉사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게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기업들이 저마다 똑같이 그런 식의 사회봉사를 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이런 활동은 아무리 많이 해도 항상 부족할 뿐 아니라 회사에도 별 이득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멕시코 세멕스社의 시멘트.
―결국 기업이 피라미드 저변 모델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이익도 창출하라는 말씀인데, 사례를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세계 3대 시멘트 회사인 멕시코의 세멕스(CEMEX)가 대표적인 예이지요. 1994년 페소화 위기가 닥치면서 세멕스는 중상층 고객 매출이 절반 이하로 급감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도 빈곤층 매출은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빈곤층이 ‘자기 스스로(DIY) 자기 집을 짓는 일’은 계속 됐고, 시멘트를 필요로 했거든요. 세멕스는 빈곤층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세멕스가 처음 한 일은 빈곤층도 살 수 있게 시멘트를 싸게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멘트를 작은 봉지에 넣어 싸게 팔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니 소용량으로 팔자는 취지였죠. 하지만 실패했어요. 저소득층이 정말 원하는 게 아니었던 거죠. 세멕스의 간부들은 빈곤층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알기 위해 6개월간 직접 판자촌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트 교수는 긴 설명을 이어갔다. 세멕스 간부들이 파악한 판자촌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집 지을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돈이 생길 때마다 집을 조금씩 짓는다. 그러다 보니 방 네개 짜리 집 하나 짓는 데 무려 13년이 걸렸다. 세멕스의 해결책은 ‘계(契)’였다. 집 지을 사람들을 상대로 우리나라의 계와 같은 것을 조직해 매주 돈을 모으게 했다. 곗돈을 타면 한 번에 집을 지을 수 있다. 대기업의 지위와 공동 구매의 이점을 십분 활용, 자재 공급업자들로부터 싼값에 좋은 자재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건축설계사도 소개해줬다.

“결국 판자촌 사람들은 더 나은 디자인과 고품질의 자재를 사용하면서도 이전의 절반 기간에 3분의 2 비용으로 자기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세멕스에게도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됐고요. 이런 게 작고 미미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차별화되는 이런 접근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과 공동으로 가치창조(co-creation) 하는 방법론을 만들었습니다.”

■작게 시작해 점차 크게 나아간다

그는 “이미 피라미드 상부 시장은 완전히 개발된 상태이고 포화 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익숙한 비즈니스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아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것은 피라미드 하부를 시장으로 진입시키는 단계를 벗어나 시장 창출에 관한 문제입니다. 시장 진입과 시장 창출은 완전히 다릅니다. 단지 시멘트 포장 봉투를 작게 만드는 것 같은 제한적인 눈이 아니라 계를 만드는 것처럼 큰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세멕스 같은 기업의 노력이 아주 일부이고, 실험적인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런 시도가 훨씬 더 많아져서 빈곤층에 대한 공공 프로그램을 대체할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봅니까?

“물론입니다. 커지는 데 최선의 방법은 작은 규모로 시작해서 점차 크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반면 기업에선 늘 큰 것이 더 좋다고 하죠. 그런데 환경기술이 산업과 만났을 때는 큰 것만이 늘 옳다는 생각은 뒤집어집니다.”

인도 뉴델리의 한 빈민촌에서 한 어린이가 마스크를 한 채 아버지의 등에 올라타 있다. 인도에선 하루 2달러 이하로 사는 빈곤층이 전체의 70%를 넘는다. / AP 연합뉴스
그는 멕시코 수도 문제의 사례를 들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멕시코의 상수도가 비소와 불소로 오염되면서 식수 위기를 겪게 됐다. 정부 차원에서의 중앙 수도 관리를 통해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 예산이 너무 커져 파산 지경으로 치달았다.

“더워터이니셔티브(The Water Initiative ·TWI)라는 회사의 해결책은 ‘바닥으로부터(bottom up)’였습니다. ‘위로부터(top down)’가 아니라 말입니다. 이 회사의 해결책은 각 가정에 비소와 염소, 불소 등을 제거할 저렴한 정수기를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맛이 이상해서 병에 담긴 비싼 광천수를 사먹었던 문제도 해결하고, 물을 시원하게 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부산물로 과일 맛이 나는 음료 개발 등 부수적 아이디어들이 나왔습니다.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이 회사는 작은 지역에서 시작해서 점차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비슷한 문제를 가진 다른 지역에도 이 아이디어를 이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규모를 키우는 제대로 된 방식입니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들과 교류하면 혁신이 나온다

―기업이 피라미드의 저변으로 가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동시에 혁신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설명 부탁 드립니다.

“제 책에서는 ‘경쟁력 있는 상상력 만들기’라는 말로 표현돼 있는데요. 기업이 주변부의 ‘비주류 이해관계자들(fringe stakeholders)’과 상호 교류하고, 그들과 관련된 창의적 사업 아이디어를 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겁니다.”

―주변부 이해관계자란 어떤 사람인가요?

“현재 당신의 비즈니스 모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당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고, 과거에는 너무 가난해서 당신과 마주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현재 사업의 핵심적인 이해관계자(core stakeholders)들은 현재의 사업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하더라도 그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재의 비즈니스 형태에 이미 투자를 많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혁신 아이디어는 결국 피라미드 하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주변부 이해관계자들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서 기존 연구소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혁신적 아이디어들을 얻고, 경쟁력 있는 상상력을 쏘아 올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진 제품을 확장시켜 갈지, 어떻게 하면 저소득층까지 도달해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지, 단순히 저가시장 공략이 아니라 보다 창조적인 방법으로 많은 것을 해결할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