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정책이 화 키워..'구원투수'가 없다

2011. 3. 19. 09:36이슈 뉴스스크랩

세금정책이 화 키워..'구원투수'가 없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시장에 단기적으로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방법이 되기는 어렵다. 이번 도이치증권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 외국계 증권사의 주가조작 사건이 아니라 우리나라 증시의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또 다른 도이치증권이 나타날 수 있다. 다음에는 2조원이 아니라 20조원의 매물폭탄을 던질지도 모른다.

◆ 국내 파생상품 시장 ‘헤지펀드의 먹잇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 외국인의 비중이 현저히 높다는 점이다. 국내 증권시장은 현물(주식) 시장 규모에 비해 파생상품 시장이 훨씬 큰 왜곡된 구조를 갖고 있다. 현물시장에서 손실을 보면서도 가격을 조정하면 선물시장에서 크게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시가총액 규모를 기준으로 현물시장은 세계 증시에서 13위 수준이지만 파생상품 시장은 세계 1위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로 큰 타격을 입은 후 갈 곳 잃은 시중자금이 몰리며 급속도로 시장이 커졌다.

국내 파생시장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선물 · 옵션시장 일평균 거래대금은 57조원으로 31.8% 늘었다. 일부 증권맨들은 10년 전만 해도 유치원생 소릴 들었지만 이젠 어디 내놔도 밥값은 하는 성인이 됐다며 자랑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정글에서도 투자 기회를 노린다는 헤지펀드의 속성 상 파생시장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헤지펀드가 가장 선호하는 먹잇감인 셈이다.

외국인들은 주로 차익거래(差益去來, 현물과 선물 시장의 가격차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거래)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차익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소액이지만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래는 주로 컴퓨터를 통한 프로그램 매매에 따라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차익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매매가 되는 구조다.

예컨대 외국인들이 증시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은 100원의 손실을 입을 것을 각오하고 현물을 팔아치운다. 그러나 선물시장에서는 100원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선물시장에는 레버리지(빚을 지렛대로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현물에서는 100원을 잃겠지만 선물시장에서는 수만원을 벌 수 있다.

도이치증권 매물폭탄 사태 때 주가하락을 예상해 풋옵션을 매수한 투자자들은 최대 499배에 달하는 대박을 낼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외국인 투기세력 맞설 구원투수가 없다’

한국거래소는 그동안 파생상품시장 세계 1위를 자랑해왔다. 이번 사태에서 옵션거래량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며 한국거래소는 평소의 2배 가까운 매매수수료를 챙겼다.

문제는 파생상품 시장에서 외국인 투기세력에 대응할 만한 반대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외국인이 매물을 내놔도 이를 받아줄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전혀 없다.

최근 일본 대지진으로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대거 주식을 팔아치웠지만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반대로 주식을 사주면서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파생상품 시장은 그렇지 못하다. 이유는 정부의 세금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작년 1월부터 공모펀드에 대한 매매수수료(매매대금의 0.3%) 비과세 혜택을 없앴다. 기관투자자들은 공모펀드에 세금이 부과되기 전까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이용해 차익거래를 해왔다.

비공모형 펀드의 경우 인덱스 ETF를 이용해 공모형 펀드에 현물 매도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거래세를 피했던 것이다. 현물 매도를 직접 처리할 수 있는 공모형 펀드가 차익거래시 유리했고 실제 대다수가 이를 사용했다.

차익거래에는 주식과 선물 매매의 수수료, 시장 충격 비용, 추적 오차 등 적잖은 거래 비용이 수반되는데 이 비용은 대략 0.15~0.20p 수준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차익거래에서 0.20p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없다면 이 거래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공모형 펀드에 0.3%의 거래세가 부과됐다. 이 0.3%를 코스피200 지수로 환산하면 대략 0.65p 수준이 되는 것이다. 수익을 내는 돈보다 거래세가 더 높으니 차익거래를 할 수가 없게 된 셈. 이후부터 차익거래에 나서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크게 줄어들었다.

실제 지난해 ETF 전체 거래대금은 전년보다 137억원 줄어든 1102억원이었다. 공모펀드에 대한 증권거래세 면제가 중단되면서 차익거래 목적의 ETF 대량매매가 감소한 탓이다.

한 증권사 고위임원은 “기관투자자들이 차익거래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 파생상품 시장은 외국인들에 의해 좌지우지 될 만큼 변동성이 커졌다”며 “우정사업본부 등 국가단체를 제외한 연기금 등의 차익거래도 허용되지 않아 도이치증권 사태처럼 외국인이 대거 매물폭탄을 내놓은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 사후처리보다 사전대응 절실

이제 도이치뱅크 사태의 해결을 위한 공은 검찰에 넘어갔다.

그러나 도이치뱅크가 주식시장을 교란해 폭리를 취했더라도 처벌을 가하고 손실을 보상하기는 쉽지 않다.

또 검찰이 연계불공정행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인지를 밝히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제적인 연계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도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에 가입되어 있어 협조는 가능하지만, 우리 금융감독당국의 조사권이 미칠 수 있는데는 분명 어려움이 따른다.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후처리보다는 시장의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통해 사전대응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