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유지수단된 법정관리…

2011. 4. 15. 09:00건축 정보 자료실

경영권 유지수단된 법정관리… 기업들, 이틀에 1개꼴 신청

조선비즈 | 홍원상 기자 | 입력 2011.04.15 03:05

 

작년 12월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하도급 건설업체 S사가 파산했다. 1년 전쯤 100억원 규모의 아파트 공사를 맡은 게 화근이었다. 발주업체인 A건설은 공사비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고 10억원짜리 어음을 준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A건설은 지난해 가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S사는 공사비를 떼였다. S건설 사장은 "발주업체가 느닷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바람에 어음 결제가 정지돼 공사비를 한 푼도 못 건졌다"며 "돈 없고 힘없는 현장 노무자나 영세 자재업체까지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하도급업체·개인투자자 피해 속출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들이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채권자는 물론 하도급업체들도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2007년 29곳에 불과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려온 2008년 110곳으로 크게 늘어나더니 2009년엔 193곳에 달했다. 올해 1분기에도 45곳이 신청해 작년 같은 기간(32곳)보다 40%쯤 늘었다. 서울중앙지법이 관리 중인 기업만 174곳에 달하며, 그 자산을 모두 합치면 12조원이 넘는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은 법원이 모든 채권·채무를 동결시키기 때문에 한숨 돌리게 된다. 하지만 상거래 채권까지 동결되기 때문에 발주업체로부터 주로 어음을 받는 하도급업체들은 돈을 받을 길이 사실상 끊기게 된다.

지난 1일 법정관리에 들어간 LIG건설의 하도급업체는 205개에 달한다. 이들 업체가 LIG건설과 맺은 계약은 모두 3087억원인데,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예전과 달리 기업들이 부도를 내지 않고 갑자기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하도급업체나 투자자들이 낌새를 채지 못한 채 기습적으로 당하고 있다. 지난 12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부토건은 은행들과 대출 만기 연장을 논의하던 도중 느닷없이 법원에 법정관리 신청서를 내밀었다.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이 회사가 발행한 60억원어치의 기업어음(CP)을 사들인 투자자들도 속절없이 당했다.

◆마지막 생존수단에서 경영권 유지 수단으로

법정관리 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관련 법이 채무자인 부실기업에 유리하게 돼 있는 데도 원인이 있다. 지난 2006년 통합도산법이 개정되면서 중대한 위법 사실이 없으면 기존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고 있다. 과거엔 법정관리를 받으면 경영권을 뺏긴다는 이유로 주저했는데, 그럴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금융 당국은 최근 3년 이내에 법정관리 신청 기업 중 80% 이상이 기존 경영진이 유지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법정관리가 남발되면서 부실기업들이 경영 실패를 책임지지 않는 모럴해저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법원은 최대 10년까지 걸리던 법정관리를 6개월에서 1년 만에 졸업하게 해주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이달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빨리 부실을 털어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면서 무책임한 법정관리 신청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