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서민 일상 파고든 ‘대출의 덫’

2011. 5. 25. 08:22이슈 뉴스스크랩

[한겨레] 버스·지하철부터 학교 골목길까지 유혹


케이블방송 하루 최대 58차례 노출 '심각'


"돈 필요할 땐 어김없이 문자·광고 보게돼"


[약탈적 대출 사회를 고발한다]
상. 피해자 소송에 나서다


대한민국이 '빚의 수렁'에서 신음하고 있다. 개인 금융부채는 1000조원에 육박하고, 중산층 가정까지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럼에도 '간편하고 손쉬운 대출'을 내세운 금융회사의 마케팅은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고객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이뤄지는 '약탈적 대출'의 유혹에 넘어간 서민들의 피해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이에 < 한겨레 > 는 < 참여연대 > · < 에듀머니 > 와 함께 금융회사의 약탈적 대출 행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획을 3차례에 걸쳐 싣는다. 약탈적 대출의 유혹은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신용카드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 택시기사 양창근(40)씨는 "돈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대출광고 문자가 오고, 대출광고 전단이나 전화를 받게 되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빚을 지고 둘러대는 핑계만은 아니다. 실제 케이블방송을 켜놓으면 대출을 권하는 친근한 시엠(CM)송이 쉴새없이 흘러나오고,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대부업체 광고가 승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거리에는 한밤 중에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대부업체 자동화기기까지 등장했다. 대학생 박관혁(26)씨는 최근 학교 주변 골목길에서 대부업체 광고 전단 10여 장을 발견했다. '엄마 대출', '쉽고 빠른 대출' 등의 광고 문구를 보며 "대학생도 정말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박씨는 '우리 캐피탈론, 고객님은 월 5만2000원으로 900만원 사용 가능'과 같은 문자메시지도 매일같이 받는다.

서민들을 유혹하는 대출 광고의 심각성은 통계 수치로도 확인된다. 케이블방송 채널의 경우 대부업체 광고를 하루 최대 58차례나 내보내고, 광고매출의 최대 15%를 대부업체 광고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은 '2010년 7월 방송프로그램 제공업체(PP) 대부업 매출현황' 자료를 보면, 모두 29개 케이블방송 채널 가운데 대부업체 광고를 가장 많이 내보낸 채널은 '큐티브이(QTV)'로 하루 평균 58차례에 달했다. 대부업체뿐 아니라 저축은행이나 신용카드사 등 제2금융권의 대출광고까지 포함하면 케이블채널의 대출광고 노출 빈도는 훨씬 늘어난다.

전체 광고매출에서 대부업체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리얼티브이'가 15%로 가장 높았다. 지상파 방송사도 자회사인 케이블방송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부업체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엠비시 드라마넷', '엠비시 에브리원' 등 4개 채널을 소유하고 있는 문화방송(MBC)의 자회사 '엠비시 플러스미디어'는 지난해 7월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96개의 대부업체 광고를 내보내 3억2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에스비에스(SBS)도 같은 기간 '에스비에스(SBS) 스포츠' 등 자회사 4개 채널에 하루 평균 54개의 대부업체 광고를 노출해 5억2천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한동안 잦아들었던 유명 연예인 출연 대출광고도 다시 늘고 있다. 배우 이보영·윤해영·명계남, 가수 이하늘·장윤정, 방송인 강수정·션-정혜영 부부, 외국배우 제시카 고메즈 등이 현재 케이블방송 채널 광고 모델로 나와 대부업체나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권하고 있다. 서민들이 대부업체 등의 대출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대부업체 이용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대부업체 이용자는 221만명으로 대출잔액은 7조5655억원에 달했다. 6개월 전에 견줘 대부업체 이용자는 16.6%(31만명), 대출잔액은 11%(7497억원) 늘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서민을 빚의 굴레에 빠지게 유혹하는 대출광고가 휴대전화부터 텔레비전까지 거의 모든 매체에 만연해 있다"며 "간편 대출, 무방문 저금리 등 각종 광고 문구로 치장한 대출광고를 규제할 수 있는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참여연대와 에듀머니는 양창근씨를 시작으로 금융회사의 약탈적 대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소송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소송에 참여하려면 금융소비자협회가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cafe.daum.net/recredit)에서 신청하거나 전화(02-786-7793)로 문의하면 된다.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