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블랙박스 '승객 몰카'로 변질

2011. 7. 20. 09:17이슈 뉴스스크랩

택시 블랙박스 '승객 몰카'로 변질

노컷뉴스 | 입력 2011.07.19 11:09 |

 

사고와 승객 폭행에 대비해 내부 블랙박스(CCTV)를 설치한 택시가 늘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거세다. 녹화된 승객의 모습과 대화가 본인 동의 없이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다.

18일 부산 동래구 도시철도 1호선 동래역 앞 택시정류소. 길게 늘어선 택시 행렬 속에서 블랙박스를 단 택시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서는 택시 내부 동영상이 손쉽게 검색됐다.

기사에게 욕을 하는 젊은 여성과 술을 마시고 시비를 거는 취객 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동영상은 자막까지 달리는 등 편집된 상태였다. 승객들의 얼굴과 음성이 그대로 노출됐다.

현재 부산지역 택시는 2만5000여 대로, 이 가운데 1만5000여 대에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다. 파악이 안 된 택시까지 합하면 2만 대 이상이 블랙박스를 달고 있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대부분의 택시는 부산시 보조금(7만5000원)으로 블랙박스를 설치했고 지침에 따라 전방 촬영만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내부 카메라까지 옵션으로 설치하는 택시기사가 급증하고 있다.

블랙박스 설치업체 관계자는 "5만 원 정도만 더 내면 내부 카메라를 달 수 있다"며 "하루에도 택시기사가 수십 명씩 찾아온다"고 말했다. 개인택시를 중심으로 내부 카메라까지 다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승객들은 "불안하고,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회사원 박수진(여·27) 씨는 "블랙박스에서 빨간불이 깜빡이며 소리를 낼 때마다 놀란다"며 "밀폐된 장소에서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싫고, 언제든 악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다"고 불평했다.

반면 기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사가 폭행당하는 사례가 늘어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5년차 택시기사 박모(54) 씨는 "뒷자리 승객이 조금만 몸을 앞으로 기울여도 위협을 느낀다"며 "내부 블랙박스를 단 뒤로는 승객들의 태도가 한결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했다.

국제신문 최승희 기자 / 노컷뉴스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