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두 마리의 서로 다른 운명

2011. 7. 27. 09:06이슈 뉴스스크랩

 

[기고] 곰 두 마리의 서로 다른 운명

  •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 2011.07.25 23:05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로 일하던 10여 년 전쯤 한 디자이너가 필자의 법률사무소에 와서 자신의 곰이 죽게 됐다며 하소연한 일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디자이너가 만든 '빤짝이 곰'이라는 인형은 모 이동통신사의 CF에 등장했다고 한다. 가수 조성모이정현이 "잘 자~ 내 꿈 꿔"라고 말하면서 이 인형을 주고받는데, 이 말이 유행어가 되면서 곰 인형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데 며칠 안 돼 중국에서 짝퉁 빤짝이 곰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짝퉁 곰 인형의 통관을 막기 위해서는 법원에서 저작권 침해 판결을 받아야 했다. 결국 빤짝이 곰의 운명은 판사의 손에 달리게 된 것이다.

시판되는 대부분의 곰 인형은 황색 털이나 붉은색 옷을 입고 있어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빤짝이 곰은 부직포 천에 직경 3㎜ 정도의 작은 원형 은박을 온몸에 붙이고 있어 매우 차갑고 이지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귀여운 인형이었다. 이를 두고 필자는 기존 곰 인형의 진부함을 탈피한 포스트모던 스타일이라고 하면서 빤짝이 곰을 살리기 위해 스토리텔링 기법까지 사용했다. 하지만 변호사를 잘못 만난 탓인지 빤짝이 곰은 살아나지 못했다. 1·2심에서 연달아 패소한 후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빤짝이 곰이 창작물로 보호할 정도는 아니라며 상고를 기각했다. 수많은 봉제인형 중에서 길거리 캐스팅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후라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호사 속에 천수(天壽)를 누리는 곰도 있다. 디즈니사의 곰돌이 푸 역시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갔었다. 미국 연방의회는 미키 마우스와 함께 디즈니사의 대표적 캐릭터인 곰돌이 푸의 저작권이 만료되어 공중자산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98년 저작권 보호기간을 추가로 20년 연장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이 법률은 논란 끝에 위헌법률심사를 받게 됐는데 연방대법원은 곰돌이 푸의 수명을 20년 연장한 이 법률이 미국 헌법에 반(反)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곰돌이 푸 캐릭터의 가치는 무려 미화 200억달러로, 디즈니사의 총 기업가치 800억달러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몇 해 전 삼성 그룹의 타원형 로고의 경제적 가치가 170억달러 정도로 보도된 바 있으니 이 곰 인형만도 못한 셈이다. 계산상 곰돌이 푸를 팔면 서울 여의도에 있는 63빌딩 수십 채를 사고도 남는다. 그러니 자국의 저작권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은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이 수긍되기도 한다. 이 합헌(合憲) 판결 이후 미국에서 이 법률은 '미키 마우스 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뽀로로'라는 만화캐릭터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디즈니사에서 거액을 주고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비쳤다는 말도 들린다. 이처럼 잘 만든 캐릭터 하나는 공장 몇 개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이나 '라이온 킹'의 동물들이 출연료를 올려달라며 임금협상을 하거나 파업을 하지는 않는다. 이 같은 저작권 산업이야말로 대표적으로 '굴뚝 없는 녹색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창의성에 관한 한 세계 1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만들기만 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잘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든 두 가지 서로 다른 예에서 알 수 있듯 여기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적극적 의지도 결코 간과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