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만원도 못버는 자영업자 300만(자영업자의 57%)…

2011. 8. 17. 09:23이슈 뉴스스크랩

[자본주의 4.0] 월 100만원도 못버는 자영업자 300만(자영업자의 57%)… 복지시스템 최대 불안요인

[11] 영세 자영업자에 희망을
돈 된다 싶으면 묻지마 창업, 출혈경쟁 벌이다 폐업 속출…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
특정 업종 쏠림현상 막고 창업·퇴출 효율적 관리해야

조선일보 | 김덕한 기자 | 입력 2011.08.17 03:21 | 수정 2011.08.17 08:51

 

서울 상계동에서 제과점 '쉐프하우스 프리앙'을 운영하는 홍영표(55)씨는 최근 간판을 바꿔 달았다. 원래는 자신의 이름을 딴 '홍영표과자점'이었다. 20년 넘게 운영해온 가게 간판을 자기 손으로 떼낸 것은 곧 가게를 처분할 작정이기 때문이다. "남의 손으로 내 이름 붙은 간판이 떨어져 나갈 텐데 그게 싫었어요."

↑ [조선일보]

↑ [조선일보]서울 상계동에서 ‘쉐프하우스 프리앙’ 제과점을 운영하는 홍영표씨가 빵을 만들고 있다. 가게 주변에 대형 체인 빵집 5개가 들어오며 경영이 악화되자 홍씨는 21년째 운영해 온 빵집을 정리할 계획이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대한제과학교 1년 과정을 수료하고 빵집에서 일했던 그는 1987년 독립해 빵집 하나로 두 자녀를 키우고 한참 잘나갈 땐 한 달에 1000만원씩 저축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적자를 면하기도 벅차다. 2004년부터 대기업 계열 빵집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홍씨 가게 반경 200~300m 안에 P사 3개, T사 2개, B사 1개 등 총 5개의 대기업 계열 빵집이 생겼다. 그중 하나는 경쟁을 이기지 못해 생긴 지 얼마 안 돼 망했으니 홍씨는 그나마 잘 버틴 편이다. 그래도 매출은 전성기에 비해 30% 수준으로 떨어졌고, 두 명 남았던 제빵사도 일시 휴직을 시켜야 했다.

홍씨는 "너도나도 가게를 열어 그 많은 가게들이 다 먹고살기 어려운 숫자까지 늘어났다"며 "대기업 계열 빵집도 결국 개인이 운영하는 건데 너무 많이 점포를 내니 자영업자들만 서로 있던 걸 나눠 먹는 출혈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우리나라 자영업의 생태계는 정글과 마찬가지다. 어떤 업종이든 잘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주변에 같은 업종 점포를 낸다. 한 지방도시에서 균일가 생활용품점을 열어 히트를 쳤던 이모(45)씨는 "바로 옆 건물과 건너편 건물 지하에 똑같은 업태의 매장 두 개가 들어오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며 "그 점포들은 결국 1년도 못 버티고 다 망했지만 우리 가게 매출도 절반 이하로 떨어져 엄청 고생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적정 수준을 훨씬 넘는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말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수는 전체 취업자의 31.8%로 OECD 국가 평균 16.1%에 두 배에 가깝다. 창업을 했다가 실패하는 사례도 너무 많다. 2008년에 새로 창업한 사람이 101만명이었는데 폐업한 사람도 79만명에 달했다.

이런 상황이니 자영업자들이 올리는 소득도 형편없다. 지난해 소상공인진흥원이 전국소상공인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월평균 순이익이 100만원도 안 된다고 응답한 사람이 57.6%에 달했다. 전체 자영업자 572만명 중 100만원도 못 버는 '허울만 사장'인 사람이 300만명이 넘는 셈이다. 아예 순익이 없거나 적자를 보고 있다는 사람도 전체의 26.8%나 됐다. 게다가 '고객 수가 계속 줄어든다'고 답한 사람도 70.3%에 달했다.

월평균 매출액 역시 400만원도 안 된다고 응답한 사람이 58.4%에 달했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10명 중 6명은 매월 400만원어치도 팔지 못하고 월수입은 100만원도 안 되는 사실상의 빈곤층인 셈이다.

IMF 외환위기 때 실직한 봉급생활자들이 대거 창업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가 급증했다. 하지만 경쟁에서 낙오한 자영업자들이 늘면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빈곤층이 두꺼워졌다. 자영업자들 중 상당수는 대출을 받아 창업하거나 점포를 운영하며, 경기(景氣)가 식으면 무더기로 문을 닫는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은 물론 경제성장, 복지 시스템의 최대 불안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박재환 중앙대 교수는 "자영업 종사자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창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부터가 문제"라며 "자영업자의 창업과 퇴출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국가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상권의 같은 업종에 지나치게 많은 자영업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을 방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창업학 박사)는 "음식점·의류점·부동산 중개업·미용업 등 생활밀접 30개 업종은 각 업종마다 전국에 5000개 이상의 점포가 집중돼 있다"며 "디자인, 컨설팅, 복지 관련 서비스업 등 고부가가치 업종에서 도전적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