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그리스 디폴트 대비"… 위기 추스를 단계 이미 지나

2011. 9. 14. 09:21지구촌 소식

獨 "그리스 디폴트 대비"… 위기 추스를 단계 이미 지나

■ EU가 갈라진다
전세계 발칵 뒤집힐 '초유의 사태' 터지나
입력시간 : 2011.09.13 16:39:27
수정시간 : 2011.09.14 08:54:43
추가 긴축안도 약발 안먹혀
리더십 문제까지 불거지며
유로존은 총체적 난국
"천문학적 해체비용 치러야"
시나리오 현실화엔 회의적


지난 2008년 추석연휴가 끝나가던 15일. 미국 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결정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공포와 경악에 빠뜨렸다. 당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됐던 금융위기는 리먼사태를 계기로 투자자들의 대량 투매를 불러왔고 시장은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11년 9월. 투자자들은 속속 돌아오는 남유럽국의 국채만기 물량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국 정부가 금융위기를 넘겠다며 쏟아부었던 막대한 자금이 이제 재정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세계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거대 단일통화권을 자랑하며 힘차게 항해하던 유로존이 출범 12년 만에 최대 분열 위기를 맞은 것도 리먼쇼크가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유럽 핵심국 사이에서는 부실국가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급기야 일부 회원국을 대상으로 추방제를 도입하자는 극단론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 각국간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문제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유로존을 이끌 리더십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유로존은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통화동맹 체계로는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출범 초기부터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던 유로존이 해체 또는 대전환의 기로에 섰다고 입을 모은다.

◇독일發 '그리스 포기설' 확산=유로존 붕괴 가능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독일의 '그리스 포기설'이 확산되면서부터다. 그리스가 부동산 특별세를 신설하고 공무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등의 추가 긴축방안을 내놓았지만 '약발'은 먹히지 않았다.

필리프 뢰슬러 독일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가 최근 독일 일간지 디벨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유로화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질서 있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언급한 것이 화근이 됐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역시 "그리스가 국가부도를 피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며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에 대비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쇼이블레 재무장관이 그리스 부도에 대비해 그리스를 유로존에 그대로 남게 하거나 이전의 통화로 복귀하도록 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유로존 재정위기를 책임질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서는 독일밖에 없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는 "왜 다른 나라의 빚을 대신 떠맡냐"는 반대여론이 거세다. 설상가상으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도력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오는 18일로 예정된 독일 베를린시의 지방선거 결과도 연립정권 와해 위기에 몰린 메르켈 정부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위르겐 미히르스 씨티그룹 유로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역내에는 (유로존 해체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격렬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미 그 정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멀기만 한 재정건전화…유로존 불화설 고조=유럽 재정위기는 유로존 내의 막연한 합의사항만으로 진정시킬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따라서 이번 그리스 지원의 심각성은 지난해나 올 초와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7월 유로존 정상들이 합의했던 그리스 2차 지원안은 구제금융 담보를 둘러싼 회원국 내 이견으로 실행이 불투명하다. 2차 지원에 590억유로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던 민간채권단의 손실분담 진행도 불안하다.

이탈리아의 경우 국가부도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지만 투자자들이 이탈리아의 재정 건전성을 우려해 국채매입을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이탈리아 국채 가격이 내려가 시가를 평가하는 유럽 은행들이 손실을 보게 된다. 이 때문에 유럽 은행들이 달러화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유럽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각국 정부가 건전성 위기에 몰린 자국 은행들에 자본확충 등을 위한 구제금융을 제공하면 유로존의 채무위기는 더욱 나빠진다.

상황이 이렇자 급기야 추방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최근 "각 회원국의 예산규율을 감독하고 공동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회원국들을 제재하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을 임명해 이런 체계를 따르지 않으려는 국가는 유로존을 떠나게 하자"고 주장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로존=유로존 해체 시나리오가 확산되고 있지만 실제 유로존 해체로 이어질 경우 불어닥칠 정치적·경제적 '쓰나미'에 대해서는 모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스 포기설'의 진앙지인 독일에서도 유로존 해체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모습이다. 독일 등이 유로존 해체 시나리오를 일축하는 것은 유로존 해체에 따른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이다.

유럽 투자은행인 UBS는 보고서에서 "유로존 해체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며 "지금의 해체 논의에서 이 비용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UBS는 그리스 같은 재정취약국이 유로존을 떠날 경우 해당국은 국가부도, 기업부도, 은행 시스템 붕괴, 국제교역 붕괴 등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탈 첫 해에만도 이들 국가의 국민이 1인당 치러야 할 비용은 9,500~1만1,500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같은 비용은 해당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40~50%에 해당한다. 독일 같은 부유한 국가가 유로존을 떠나면 첫해 GDP의 25%를 독일 국민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 같은 경제적 비용뿐만 아니라 정치적 비용도 따른다. UBS는 "국제사회에서 발휘한 유럽의 영향력은 끝날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 내 전체주의나 군부정부 출현, 또는 내전 발발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