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 부활 논란…구글·애플이 죽은 정통부 살려낼까

2011. 9. 25. 11:25이슈 뉴스스크랩

정보통신부 부활 논란…구글·애플이 죽은 정통부 살려낼까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1.09.24 11:29

 

"정통부 폐지는 이번 정부의 대표적인 실책이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한국 IT산업은 적절한 규제와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정통부 부활은 과거 경제기획원 시대의 발상이다. 미국에 정통부가 있어서 애플, 구글이 있느냐. "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폐지된 정보통신부의 부활 논란이 뜨겁다. 특히 애플과 구글이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줄 때마다 정통부 부활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는 모양새다.

↑ 정보통신부가 폐지되기 전후의 대표 IT 육성정책. 정보통신부가 주도했던 참여정부의 IT839 정책(왼쪽)은 IT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기술개발, 표준화, 인력양성 등을 이끌었다. 반면 지식경제부가 입안한 이명박 정부의 뉴 IT전략은 IT를 적용해 주력 산업의 경쟁력 향상이 주된 목적이었다.

↑ 애플의 아이폰 쇼크,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등 애플, 구글이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줄 때마다 정보통신부 부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과거 정보통신부가 사용하던 건물(사진)은 현재 방통위가 사용 중이다.

본격적인 논란의 시작은 애플의 아이폰 쇼크에서 비롯됐다. 2009년 11월 KT가 애플의 아이폰을 도입하자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스마트폰이 세계적인 트렌드로 급부상하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제조사들은 그때부터 발 빠르게 대응해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이미 모바일 시장의 주도권이 플랫폼 업체인 구글, 애플에 넘어간 뒤였다. 또한 선진국보다 2년 늦게 형성된 스마트폰 생태계는 관련 산업의 발전 역시 뒤처지게 만들었다.

▶ 한국의 IT경쟁력 지수

·2007년 3위
·2008년 8위
·2009년 16위
·2010년 13위
*자료: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유닛(EIU) 당시 안철수 원장은 "IT컨트롤타워의 복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고, IT주무부처의 수장인 최시중 방통위원장 역시 "정통부의 기능을 쪼갠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일"이라고 시인했다. 이에 반해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당시 지경부 장관)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당시 국정기획수석)은 정통부 부활 논란에 선을 그으며 논란을 진화했다. 다만 정부는 IT컨트롤타워 부재와 국가 R & D 예산의 조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청와대 IT특보,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을 잇달아 만들며 지적을 받아들이는 제스처를 보였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정통부 부활 논란은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내 대기업인 삼성, LG 등이 구글 안드로이드폰 제조사로 자리 잡으면서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했으나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이 지위마저도 위태롭게 됐다. 국내 IT업계에 비상이 걸리자 민주당이 포문을 열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IT 홀대정책으로 한국 IT산업 경쟁력은 2007년 세계 3위에서 2009년 16위로 추락했다. IT강국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컨트롤타워를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과거 정보통신부 격인 가칭 '정보미디어부' 신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IT융합·규제철폐 논리로 정통부 폐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 정통부를 폐지했던 가장 중요한 논리는 IT를 타 산업에 적용한다는 'IT융합'이었다. 즉 IT가 모든 산업의 기반 인프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미 발전한 IT산업을 기반으로 여타 산업의 발전을 이끈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처음 IT산업을 육성할 때는 정통부의 역할이 뚜렷했지만 점차 타 부처와 영역이 겹친다는 것도 부처 폐지의 논리였다. 결국 IT융합과 업무영역 중복 등의 이유로 정통부는 폐지됐고 IT 관련 업무는 지식경제부(IT산업 지원),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 문화체육관광부(콘텐츠 육성), 행정안전부(정보화, 정보보호) 등으로 이관됐다.

정통부 폐지는 '규제의 상징'이던 부처를 폐지해 현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정보통신부는 부처 생존논리로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어 냈던 게 사실이다. 현재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전자서명법, 제한적 본인 확인제 등이 정통부가 만든 규제"라고 말했다. 과거 정통부가 운영되면서 발생한 여러 부작용도 폐지논리를 뒷받침했다. 특히 정통부가 주도했던 통신기술과 표준 서비스였던 IMT-2000, 와이브로, 위피 등이 시장에서 상용화 실패, 이중투자, 글로벌 표준화 실패 등을 낳으면서 시장 주도권이 민간으로 넘어갔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산업 진흥을 최우선으로 두는 정통부의 정책기조로 인해 기업과의 유착이 심해지고 소비자 후생을 외면했다는 지적도 있다. 전응휘 이사는 "몇몇 기업에 독과점 이익을 보장하고, 기술개발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통신소비자의 요금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IT환경 급변화는 예측 못 해   여러 부작용과 폐지논리가 동원됐지만,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전 세계 IT환경의 대변혁이다. 즉 전 세계 IT산업 구도가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IT융합에 목매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작 정부 의도였던 IT융합의 실적도 저조했다. 안 원장은 "IT융합이 정통부 폐지의 주요 논리였는데 정작 3년이 지난 지금 융합정책을 제대로 책임지고 집행한 곳이 어디냐"고 반문한다.

여러 IT전문가들은 IT컨트롤타워의 역할론을 강조한다. 정지훈 관동의대 교수는 "정통부를 꼭 부활시켜야 한다가 아니라, 정통부가 폐지되면서 IT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됐다. IT분야에서 민간기업은 5년,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기 어렵다. 앞선 기술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R & D와 교육을 담당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IT산업의 멸망'의 저자 김인성 씨는 "과거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주도했던 IT839(8은 8대 신규 서비스, 3은 3대 첨단 인프라, 9는 IT부문의 9대 신성장동력을 뜻한다) 정책은 일부 무리한 점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미래를 내다본 정책이었다. 실제로 이 정책의 결과 와이브로, DMB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고 상용화할 수 있었는데 정통부가 폐지되면서 IT산업에 대한 청사진을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경쟁 환경 조성과 신사업 추진에도 IT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내 통신, 인터넷, 단말기 제조사업 모두 2~3개 회사에 의한 과점상태로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문제제기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통신, 인터넷 서비스를 내고 싶어도 독점 기업의 견제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국내 IT산업에서 소수의 통신사, 포털, 하드웨어 업체와 관련되지 않은 기업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는 신사업을 추진할 때도 발생한다. 김인성 씨는 "와이브로와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등은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는 서비스지만 통신사 수익을 갉아먹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런 이해관계는 정부가 나서서 조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4세대 통신기술의 표준으로 인정받고 원천기술을 확보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와이브로(WiBro)는 통신사들 외면으로 LTE 기술에 밀렸고, 현재 고사 위기에 처했다.

IT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 해결도 더딘 상태다. 김 씨는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로 대표되는 국내 결제 웹 환경은 국제 표준과도 맞지 않으며 보안성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이런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하는지 명확지 않고, 정부도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통부 부활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애플의 성공요인은 소프트웨어 기술보다는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인프라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역할을 다 했고, 이제는 그 안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정통부가 있었으면 아이폰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더 방해가 됐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전응휘 이사는 "정치인과 관료가 국가 주도로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과거 환상에 빠져 있다. 정통부가 주도했던 와이브로, IMT-2000 등이 상용화에 실패했듯 이제 IT산업에 정부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윤형중 기자 hjy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24호(11.09.28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