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휘네” 엔화 대출자 울상, 기러기 아빠 한숨

2011. 9. 26. 09:16이슈 뉴스스크랩

“허리 휘네” 엔화 대출자 울상, 기러기 아빠 한숨

■ 연일 치솟는 환율에 신음하는 사람들

동아일보 | 입력 2011.09.25 19:42 | 수정 2011.09.25 20:25 |





유럽발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침체 여파로 엔화 및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급등하면서(원화가치는 하락) 환율 상승에 따라 갚아야할 원금이 늘어나는 외화대출자와 유학생 자녀를 위해 해외로 송금해야 하는 부모들의 신음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이달 들어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는 10.0%나 급등해, 달러(9.3%)보다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23일 기준 원-엔 환율도 100엔당 1529원으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때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 10월의 1544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엔화 대출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엔화대출의 금리 구조는 '외화채권 가산금리+리보금리(런던 은행간 금리)+개별 가산금리'로 이뤄져 있다. 유럽발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최근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외화채권 가산금리와 리보금리가 급등하자 엔화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개업의로 활동하고 있는 50대 후반의 연 모 씨는 원-엔 환율이 100엔당 당 840원대였던 2006년 8월 한 시중은행으로부터 2억 원을 대출받았다. 당시 금리는 연 1%대 후반 이었고 매달 납부해야 할 이자는 30만 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매달 140만 원이 넘는 이자를 내고 있다. 원-엔 환율이 1520원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연 씨는 "2008년 리먼 사태 당시 월 170만 원에 이르는 이자를 냈는데 지금 형편이 그때와 다를 게 없다"며 "아직 원금도 못 갚았는데 이자 걱정 하느라 날밤을 새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회원 수가 1500명에 달하는 한 포털사이트 카페 '엔화 대출자 모임(엔대모)' 회원들은 23일 긴급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부담을 덜어낼만한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현재 국민, 우리, 신한, 하나, 기업, 외환 등 6대 시중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8484억 엔(약 13조 원)에 이른다.

유학생 자녀를 둔 부모나 기러기 아빠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미국에 고등학생 자녀 1명을 유학 보낸 40대 주부 김 모 씨는 "7월 말과 비교할 때 원-달러 환율이 120원이나 급등했다"며 "1년에 학비와 생활비가 5만 달러 가량 드는데, 불과 2개월 새 600만 원의 부담이 늘어난 셈"이라며 "이런 식으로 환율이 상승하면 아이를 귀국시켜야할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캐나다에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녀 각각 1명을 유학 보낸 40대 후반 직장인 김 모씨도 "캐나다달러 가치가 9월 초보다 60원 상승하면서 연간 300만 원 이상을 더 부쳐야 한다"며 "개강을 앞두고 있어 교재 구입 등 자녀들이 쓸 돈이 많은데 어떡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지었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항공, 정유, 식품 관련 기업들도 울상이다. 원자재 값이 올라도 이를 당장 납품가격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고 "환율 오를 때는 가격을 바로바로 올리면서 환율 떨어지면 왜 소비자가격을 인하하지 않느냐"는 고객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유리해지는 수출중심의 대기업들도 내심 우려의 표정을 거두지 않고 있다. 한 대기업 자금담당 임원은 "환율 상승이 수출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려면 글로벌 경기가 좋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현재 세계 경제 전망이 너무 어두워 환율 수혜를 입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