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에 환율까지… 이대로 가단 중기 다 죽어"

2011. 10. 17. 19:15이슈 뉴스스크랩

"원자재에 환율까지… 이대로 가단 중기 다 죽어"

환차손 충격 점점 가시화
57% "피해 심각" 34% "적자" 3~6개월 지속 땐 치명타
환율상승 납품가 반영 안해 대기업들 부담 떠넘겨
입력시간 : 2011.10.16 14:01:02
수정시간 : 2011.10.16 20:40:10
경기 안양시에서 페인트잉크회사를 운영하는 정 모 대표는 이번 달 내내 환율만 들여다보고 있다. 100% 수입하는 기름을 원로 쓰는 이 회사는 재고가 바닥났는데도 새로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보통 재고량을 45일 정도로 잡는데 딱 한달 반전부터 환율이 치솟았다. 정 대표는 "8월 초에 원ㆍ달러 환율 1,070원일 때 원유를 구입했는데 지금은 100원이 더 올랐다. 가만히 앉아서 이익이 10% 날아간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 신길동의 한 염료회사 대표 김 모씨도 비슷한 고민. 작년에 원자재(수입화학약품) 가격이 25% 가량 올라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났는데, 올해는 환율상승으로 또 절반으로 줄어들게 생겼다. 김 대표는 "환율이 10% 상승하면서 상반기 이익을 거의 다 까먹었다. 주변에 보면 거의 절반은 적자를 보고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재정위기 이후 껑충 뛴 환율이 떨어질 기미가 없자,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원자재나 완제품을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환차손 충격이 점점 더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이들 회사는 작년부터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몸살을 앓아온 터였는데, 이젠 설상가상으로 환율까지 짓누르고 있다. 최현재 동양종금증권 스몰캡팀장은 "중소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달러로 원자재를 사서 원화로 판매를 하는 회사가 많아 환율상승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제조업체 375개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28.5%가 '하반기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고 응답했으며 '증가할 것'는 업체는 15.7%에 그쳤다. 최근 환율 상승이 채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42.7%가 '부정적'이라고 응답해 '긍정적'이라고 답변한 업체(13.1%)보다 훨씬 많았다. 업체들이 보는 적정 원ㆍ달러환율은 1,088.8원이었다.

앞서 지난 6일 한국수입업협회가 중소기업 145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57%가 환율상승으로 '피해가 심각하다', 33%는 '다소 피해가 있다'고 답했다. 이미 적자를 내고 있다고 답한 기업의 비율은 34%, 적자에 직면한 곳은 45%에 이르렀다.

보통 수출업체라면 환율이 오르는 게 반갑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수출회사들도 원자재나 중간재는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은 환율 10원 상승 때 수천억원의 이익이 거저 생기지만 중소기업들은 사정이 다르다.

전자용 약품을 수출하는 A사는 3분기 영업이익 50억~60억원이 예상됐지만 800억 원에 달하는 해외차입금에 따른 환차손으로 적자로 돌아설 위기에 빠졌다. 대한상공회의소전국 300여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출기업의 37.2%가 환율 상승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은 '수입단가 상승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약화'(68.2%)가 가장 많았고, '원화 환산 수입액 증가로 인한 환차손 발생'(57.4%), '외화 대출자금 이자 부담증가'(3.7%) 순이었다. 손영기 대한상의 거시경제팀장은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경우 사정이 조금 나을 수도 있지만 원자재를 수입하는 회사도 많고, 거시경제 불안으로 환율이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이래저래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환율변동으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는 일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환율이 오를 경우 대기업들도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김영근 KTB투자증권 투자분석팀장은 "대기업들은 원자재값 상승은 단가인상 요인으로 보지만 환율상승은 가격에 반영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중소기업의 경우 환율 상승의 완충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거시경제의 위기가 닥치면 중소기업이 '총알받이'가 되고, 중소기업이 버티지 못할 때쯤 대기업에게 충격이 오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에겐 수입선 다변화나 환 헤지 등의 대응책이 배부른 소리인 경우가 많다"며 "환율이 오른 상태로 3~6개월 정도 지속되면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