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세번 말아먹고 6억 빚더미 40대男 결국…

2011. 11. 28. 17:54분야별 성공 스토리

사업 세번 말아먹고 6억 빚더미 40대男 결국…
길거리 ‘천원’ 피자 원조 사장, 사업 3번 말아먹고 무일푼으로 이번엔 ‘대박’
"브랜드 파워 키우는 교육이 중요"
기사입력 2011.11.28 14:20:38 | 최종수정 2011.11.28 15:12:07

“직장생활을 하다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사업에 뛰어 들었지만 실패만 거듭했어요. 1999년 당시 6억원의 빚더미에 앉아 노숙자가 되나 싶었습니다. 빚쟁이로 전락했다 다시 일어나 70개가 넘는 프랜차이즈 본사를 운영하게 된 건 굴 덕분이었죠.”

길거리 1천원짜리 피자의 원조. 아이디어 뱅크.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장기조 ‘굴마을낙지촌’ 회장(55)을 부르는 말이다
. 론칭 10년째인 굴&낙지 전문 프랜차이즈 회장은 사업 실패담을 털어놨다.

장 회장은 10여년간 농협에 근무하던 평범한 직장이었다. 그는 피자를 좋아하던 아이들을 보며 ‘피자를 붕어빵처럼 만들 수 없을까’ 고심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어 길거리 포장마차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디어만으로 사업을 시작한 초짜 사장은 3번의 사업 실패를 겪고 굴국밥 대중화의 선봉자로 우뚝섰다.

장 회장은 젊은시절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꾸준히 부업을 해왔다. 달팽이, 밍크, 뉴트리아 등을 키우며 미개척 분야에 손대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남다른 도전정신으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회상했다.

첫 번째 사업인 길거리표 피자는 대 히트를 쳤다.

국내외 유명 피자 브랜드들의 맛과 품질을 그대로 1천원짜리 피자에 담았다. 한달 새 체인점을 열어 달라는 이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프랜차이즈 사업에 눈을 뜨게 된 계기였다.

그는 직접 체인점들에 도우와 식재료를 공급했다.

하지만 장 회장의 기발한 아이템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가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피자를 판매하는 유사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 ‘길거리 피자는 맛없다’는 인식이 퍼졌다. 장 회장의 사업은 내리막 길을 걸었다.

장 회장은 길거리 피자사업을 접고 한정식집을 오픈했다. 그가 키우던 식용 달팽이 요리를 주메뉴로 한 퓨전 한정식이었다. 대나무통 삼계탕, 대나무통 밥 등도 함께 상에 냈다.

그는 직접 담양에서 대나무를 공수하는 등 열정을 다해 매장을 운영했지만 열악한 상권을 극복하지 못하고 또다시 실패의 쓴 맛을 보게 됐다.

장 회장은 수중에 단 한 푼의 돈도 남지 않았다. 그는 6억원의 빚을 떠안고 빚쟁이로 전락했다. 한정식집도 후임자를 못 찾아 넘기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까지 갔다. 심지어 전기요금, 자녀들 급식비도 없었다. 그는 ‘노숙자가 되겠구나’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절대 안 되는 것은 없다. 죽을 각오로 절실하게 매달리면 희망은 언제나 있다.”

그가 끝까지 믿고 놓지 않은 각오였다. 그는 고민을 잠시 접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메뉴개발에 몰두했다. 그리고 굴국밥 메뉴를 개발해 냈다.

하지만 장사를 시작할 자본금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방 안에만 있으면 죽고 싶은 생각만 들 것 같아 무작정 밖으로 나갔어요. 굴국밥 장사는 정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본금이 없으니 너무 막막했어요. 0.1%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죠.”

장 회장은 무작정 ‘임대’라고 써 붙여놓은 점포를 찾아 들어가 가게 자리를 알아봤고, 빈 가게 자리는 무조건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권리금 3500만원에 보증금 1500만원인 점포를 찾게 됐다. 우연히도 가게 주인은 과거 퓨전 한정식집을 운영할 때 자주오던 단골고객이었다.

장 회장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점포 주인을 찾아가 사정했다.

“당장 돈은 없지만 굴국밥집 오픈 두달 뒤에는 꼭 5천만원을 갚겠다고 약속하고 공증까지 했습니다. 점포 주인이 1천만원은 미리 내라고 제안해 동창들을 찾아가 돈을 빌려보려고 했죠.”

동창들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진 않았다. 장 회장은 계속해서 친구들을 찾아가 돈을 빌려보려 했지만 오히려 친구들이 연락을 피했고, 그러던 중 동창 한명이 어렵게 마련했다며 700만원을 건넸다. 나머지 300만원은 동생에게 빌렸다.

굴마을낙지촌 분당 서현점

장 회장은 무일푼에서 굴마을낙지촌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얼마 뒤 그에게 또 한번의 도움의 손길이 왔다. 한정식집이 안 나가자 건물 주인이 “500만원을 줄테니 기물 등을 모두 가지고 나가서 새롭게 시작해보라”는 연락이었다.

그는 500만원으로 인부 한명 쓰지 않고 인테리어와 보일러 시공까지 모두 혼자 해냈다. 도배, 장판, 수리 등 혼자서 감당했지만 간판 달 돈이 없었다.

장 회장은 무작정 전화번호부에서 간판집 전화번호를 찾았다. 돈을 벌면 갚을테니 우선 무료로 간판을 달아 달라고 전화를 돌렸다. 그 중 한 곳에서 장 회장을 돕기로 하고 간판을 달아줬다.

오픈 첫 날 손님들은 줄을 서서 먹었고, 곧 굴마을낙지촌은 대박집이 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지만 매일같이 빚쟁이들이 찾아와 번 돈을 모두 회수해갔어요. 어떤 달은 임대료까지 가져가 막막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건물주인은 빚을 대신 갚아 주겠다고 제안했죠.”

굴마을낙지촌은 손님이 끊이질 않고 승승장구했다. 장 회장은 전수창업으로 가맹점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2004년 서울로 진출했다.

장 회장은 가맹점 50개가 되자 전용 물류공장을 세웠다. 그는 “맛의 통일성을 위해서는 프랜차이즈가 직접 운영하는 자체 물류공장은 꼭 필요하다”며 “국낸 몇몇 프랜차이즈들은 여전히 OEM(주문자생산방식) 공장에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비결은 하늘이 도우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껏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사람을 잘 만나서입니다. 사람을 만나게 된 건 하늘의 뜻이겠죠.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실패하든 성공하든 주변에 믿음과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자는 소신을 갖고 살았던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장 회장은 “프랜차이즈는 마인드 싸움이다. 아무리 상권이나 아이템이 좋아도 망하는 매장이 있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대박 나는 매장이 있다. 모두 주인의 가치관과 열정에 달렸다”고 예비창업자들에게 조언했다.

이어 “외식업은 기업화되고 있다. 굴마을낙지촌은 기본에 충실하고, 점주와 같이 성장해 나가자는 모토를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 회장은 “대한민국의 프랜차이즈 업계는 과도기에 있다”며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 교육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가맹점들이 원재료 값을 줄이기 위해 싼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곳들이 종종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생명인 통일된 맛이 나오지 않으면 브랜드파워는 감소해요. 악순환의 반복으로 결국 가맹점과 본사 모두 살아남기 힘들어지는 길이죠.”

그는 프랜차이즈들의 과다경쟁으로 가맹점을 값싸게 오픈해주는 곳들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장 회장은 “본사가 부실하면 자연스레 가맹점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매경닷컴 김윤경 기자/ 사진 팽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