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 개방 맞은 한국 로펌…이러다가 다 죽는다

2012. 4. 2. 09:02C.E.O 경영 자료

법률시장 개방 맞은 한국 로펌…이러다가 다 죽는다

“한국의 모 기업이 외국 기업을 인수합병(M&A)했을 때였어요. 피인수 회사의 전 세계 사업장이 있는 119개국에서 인수합병에 대한 법적 요건을 확인하고 필요한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거의 모든 곳에 저희 사무소가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매우 효율적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완결할 수 있었습니다. 올 하반기 내엔 서울에도 사무소를 낼 계획입니다.” (영국계 디엘에이파이퍼(DLA Piper)로펌 이원조 변호사)

“홍콩에 있으면서 한국 기업 관련 일을 많이 해왔습니다. 홍콩은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한국과 가깝지만, 급한 일의 경우 한국 고객 전화를 받고 다음 날에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한국 고객들의 특성도 감안해야 하더군요. 한국사무소를 열면 고객 밀착 서비스를 할 수 있고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계 심슨대처앤바틀렛(Simpson Thacher & Bartlett)로펌 손영진 변호사) 

한미 FTA, 한·EU FTA가 발효되면서 법률시장 역시 요동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영미 로펌들의 한국 진출 역시 단계적이지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로펌들의 긴장감은 극에 달해 있다. 우선 한국 로펌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기업자문 시장은 고스란히 외국계 로펌에 내줘야 할 판이란 인식이 비등하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로펌 대표변호사는 “단계적 개방이라지만 외국 로펌이 한국에서 한국 변호사들을 고용할 수 있는 2017년이 되면 대대적인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이미 이는 현실로 다가왔다. 김앤장 소속 미국 변호사가 외국계 로펌으로 이동한 것. 이런 상황에서 국내 로펌들은 동남아 진출, 송무팀 강화 등 각종 자구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매경이코노미는 격랑에 처한 한국 법률시장을 분석해보고 이 상황에서 한국 로펌들의 움직임을 조망해봤다.

법률시장 개방되면 뭐가 달라질까
해외 진출 자문, 외국계 독식하나

빠르면 올해 말부터 폴헤이스팅스, 롭스앤그레이, 셰퍼드멀린 등 세계적인 외국 로펌들의 사무실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한미,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국내 로펌, 개업 변호사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해 있다. 이미 한국의 법률 서비스 수지는 적자 상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해외 로펌에 지급한 금액이 연간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매년 적자 폭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외 법의 분쟁을 다루는 송무 분야보다 기업의 해외 투자, 경영상의 중요한 판단 등에 대한 법률의견을 제안하는 자문 분야의 타격이 더욱 클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로펌 고객이 될 국내 대기업들은 법률시장 개방이 ‘나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대형 원전·플랜트·유전개발을 할 때 국내 로펌에 법률검토를 의뢰하면 이들이 다시 외국 로펌에 자문해서 답변을 받아오는 식이었는데 앞으로는 바로 접촉해서 시간이나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송무 분야 역시 ‘따뜻한’ 시절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각이 있다. 5년 뒤인 2017년이면 외국 로펌이 국내 변호사를 직접 고용할 수 있게 되면서 국내 로펌이 패권을 내려놔야 한다는 논리다.

박노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송무 일변도의 법조사회의 의식구조를 바꿔야 한다. 특권의식을 빨리 버리고 시장 기준, 일 중심으로 한국 로펌들이 재편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법률시장 규모는 2조원대로 추정(대한변호사협회 자료)된다. 단일 영미계 로펌의 매출규모와 비슷하다. 그런데도 왜 영미계 로펌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보일까.

신영무 대한변협 회장은 “외환보유고 상위국가들 중 상당수가 아시아에 포진하고 있는데 법체계가 잘 정비된 한국 시장이 교두보로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대로 이미 외국 로펌들은 국내 기업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다만 FTA 발효 이전엔 사무실은 따로 마련하지 않고 국내 기업들의 업무를 대리하는 ‘호텔투숙형’ ‘무대표영업’ 방식을 써왔다. 이번 FTA를 계기로 영미 로펌들은 ‘고객밀착형’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국내 로펌도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인적자원이나 국내 시장 정보 면에선 우위를 보이기 때문이다. 강성 법무법인 지평지성 대표변호사는 “한국 로펌들은 한국 기업들의 빠른 의사결정, 내부 의견 조율 등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등 장점이 많다. 기초 조사 때 초기 착수금을 받지 않는 ‘한국식’ 관행이나 축적된 한국 기업 데이터 면에서도 이점이 있으니 이를 적극 부각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신영무 대한변협 회장은 “대형 로펌, 엔터테인먼트, 노동법 등 전문 소형 로펌, 외국 로펌과 합작한 로펌들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법률시장 개방 사례
독일 로펌, 개방 후 경쟁력 높아져

국내보다 먼저 법률시장을 개방한 선진국들은 외국계 로펌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먼저 2005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일본은 해외 로펌의 자국 진출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사례로 꼽힌다. 일본 변호사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상위 10위권 로펌 중 외국계 로펌과 합병된 로펌 비율은 30% 남짓에 불과하다.

이희종 태평양 변호사는 “일본은 빅4 대형 로펌이 연합해 대형화, 전문화를 이뤄냈고 결국 시장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국내 로펌들에 시사점을 줄 수 있다”라고 전했다.

반면 1998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독일은 외국계 로펌에 의해 시장이 잠식된 상태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법률시장 규모를 가진 독일은 상위 10개 토종 로펌 중 8개가 외국계 로펌에 합병됐다. 물론 이점도 있었다. 독일이 시장 개방을 기회로 삼아 보다 선진화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손도일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이사(율촌 변호사)는 “독일 로펌은 영국 로펌과의 합병 끝에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 하나인 ‘프레시필즈(Freshfields)’를 탄생시켰고 이는 독일 로펌과 변호사들이 세계로 진출하는 창구가 됐다. 각국의 로펌들이 법률시장 개방 후 세계적인 로펌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전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국내 로펌 대응전략은
외국 로펌과 제휴 두고 저울질

“해외 로펌들은 국내 대형 로펌들이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 자문시장을 정조준해 공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조용식 법무법인 다래 대표변호사)

국내 로펌들이 물밀듯 밀려오는 영미권 로펌에 맞설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고심 중이다. 이들의 대응 방안은 △독자생존 △외국 로펌과 제휴 △전문화 △해외 진출 등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국내 상위권 로펌들은 대형화에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김앤장, 태평양, 세종, 광장 등은 이미 구축해둔 든든한 해외 네트워크를 발판 삼아 보다 실력 있는 변호사들을 추가로 영입, 대형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워보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업계 1위 김앤장은 법률시장 개방 상황에서도 ‘해볼 만하다’는 입장. 최근 체임버스글로벌(Chambers Global) 최신호에서 김앤장이 국내 로펌 중 유일하게 금융, 기업 인수합병(M&A), 분쟁해결, 지식재산권, 국제통상 등 5개 전 분야 최고 로펌(Band 1)으로 선정된 걸 단적인 예로 든다. 김앤장 관계자는 “2007년 두산이 미국 밥캣을 인수할 때 대표 자문사(lead counsel)로 수십여 개 해외 로펌을 거느렸던 사례에서 보듯 국내 대형 로펌으로서의 역할은 따로 있다”라고 말했다.

이희종 태평양 변호사 역시 “국내에 전문가 수 기준 300~500명 규모의 로펌이 4개 있다는 건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다. 국내외를 가리기보다는 경쟁력 강화 자체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외국 로펌에 대한 대응은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로펌이 먼저 손 내밀기도

그렇다고 국내 로펌이 모두 김앤장처럼 될 수는 없을 터. 규모, 노하우 면에서 경쟁력을 단숨에 확보하기 위해 외국 로펌과의 제휴를 대안으로 삼는 사례가 있다. 화우, 율촌, 지평지성 등 중위권 로펌들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윤호일 화우 대표변호사는 “최근 해외 로펌 중 상당수가 화우를 방문해 업무 협력관계를 논의했다. 추후 대형화, 전문화를 위해 M&A 가능성까지 열어뒀다”고 밝혔다. 국내 로펌들은 이들 해외 로펌과 제휴를 통해 아웃바운드(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자문시장을 노려볼 수 있다는 복안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외국계 로펌도 마찬가지다. 강성 지평지성 대표변호사는 “FTA가 발효된 후 국내 로펌들과 상대적으로 인연이 뜸하지만 상당히 규모가 큰 외국 모 로펌의 고위 관계자가 국내 여러 로펌들을 방문한 끝에 최근 지평지성에 업무 제휴를 해보자고 제안해와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연고가 없는 외국계 로펌 입장에서는 국내 대기업들을 국내 로펌이 뚫어놓으면 이들이 해외 진출할 때 자연스레 ‘숟가락’이라도 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원조 디엘에이파이퍼 변호사는 “국내 로펌은 국내 로펌의 강점을 살리고, 디엘에이파이퍼 같은 외국 로펌은 국내 로펌과 함께 협력해 한국 기업에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동반성장모델이 필요하다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외 로펌 간 제휴 움직임이 있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혈맹’관계가 되기 쉽지 않은 게 현실. 국내 대형 로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소형 로펌들은 국제 교류를 많이 하지 못해온 게 주요 이유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우선 국내외 로펌들 간 접촉면을 높이려는 시도가 감지된다.

법무법인 율촌의 경우 각종 프로그램과 세미나를 해외 로펌과 공동개최하는 형태로 업무 제휴를 강화하고 있다. 율촌 관계자는 “어떤 외국 로펌도 모든 지역과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각 지역과 분야에서 최고 수준인 제휴로펌을 선별해 협력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자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전했다.

특화도 개방에 대비하는 방법 중 하나다.

정용상 동국대 교수는 “중소형 로펌의 경우 상호연관성이 있는 한두 분야의 법률 서비스 영역에 경쟁력을 갖춘 전문가들로 구성된 드림팀을 만들어 특성화하면 살 길이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대표적인 예가 법무법인 다래다. 다래는 국내 변호사 숫자가 15명에 불과한 소형 로펌이지만 세계 2만여개 로펌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영국의 ‘체임버스앤드파트너스’로부터 4년 연속 ‘지식재산권 분야 최고 로펌’ 가운데 하나로 선정될 정도로 이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다.

조용식 다래 대표변호사는 “지식재산권 분야는 국내에 진출하는 해외 로펌들의 주력 분야가 아니므로 다래는 해외 로펌들과 경쟁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 또는 협력관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국내 대형 로펌들보다 훨씬 높다”라고 말했다.

이혼 전문 로펌 역시 생존 가능성이 높은 분야. 법무법인 원, 평화합동법률사무소 등은 일찌감치 이 분야에서 내공을 키우며 전문 로펌으로 명성을 쌓아놔 여유 있는 모양새다.

김수진 평화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이런 분쟁엔 고유의 문화적 이해도와 경험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외풍에서 상대적으로 비켜서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혼 사건 분야에도 변화의 바람은 있다. 이인철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는 “국내 이혼 사건 분야엔 큰 타격이 없겠지만 국제 이혼 등에서는 어느 정도 타격이 예상된다”라고 전했다.

노사 분쟁이 많은 국내 특성에 따라 INS와 같이 노동 관련 국내 로펌 역시 법률시장 개방 이후에도 전문성을 계속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그 밖에도 지적재산권, 국제중재, 공정거래 부문은 특화할 경우 상당히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고 전한다. 법무법인 율촌이 공정거래팀을 공정거래그룹으로 승격시키고 헬스케어팀, 방송통신팀, 문화산업팀, 국방·공공계약팀 등의 산업 전문팀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가만히 당할 수 없다” 해외로

“외국 로펌이 국내에 들어오면 우리도 나간다.”

최근 국내 로펌들의 움직임 중 하나다. 올해부터 매년 2500명의 로스쿨 졸업생들이 배출되는 가운데, 2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란 게 중론.

현재 국내 로펌의 가장 활발한 진출 지역은 아시아다. 특히 2002년 대륙아주가 파견형식으로 중국에 변호사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태평양, 광장, 세종, 지평지성 등이 줄줄이 중국에 사무실을 내고 있다. 최근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많은 베트남(로고스, 에이펙스, 지평지성, 율촌), 러시아(대륙아주), 인도네시아(에이펙스), 우즈베키스탄(화우), 태국(지평지성) 등지에도 한국 로펌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때도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이면 곤란하다. 고형식 한결 변호사는 “한국 로펌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아시아계에 진출 네트워크망이 넓은 영국 로펌과의 제휴가 보다 이상적”이라고 조언했다.

최근 눈길을 끄는 건 미국, EU 로펌들의 본고장에 사무실을 개설하는 사례다. 법무법인 영진이 미국에 사무실을 낸 데 이어 세종은 최근 독일에 사무실을 열었다. 김두식 세종 대표변호사는 “법률시장 개방 이후 국내 로펌들은 유럽계 로펌의 국내 진출을 염려하며 방어적 자세만 취해 왔지만 한국 로펌도 유럽에 진출해 해외 네트워크를 넓힐 때”라고 말했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는 “국내 로펌이 꼭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실력 있는 외국인들을 적극 영입하는 식으로 국제화한다면 승산이 있다”라고 전했다.

▶ 법률시장 개방 3단계
1단계 : FTA 발효 직후
외국 로펌의 한국사무소 설립
외국 변호사들 외국법 자문사로 등록 가능

2단계 : FTA 발효 후 2년
해외 로펌 한국사무소와 한국 로펌의 사안별 협력계약, 이윤 분배 가능
한국법 혼재 업무 처리 가능

3단계 : FTA 발효 후 5년해외 로펌 한국사무소와 한국 로펌의 합동사무소 설립 가능
합동사무소에 한국 변호사 고용 가능

해외 로펌 국내 진출 전략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자문 ‘원스톱’으로

“해외 로펌들은 여러 지역에서 오랜 기간 영업하면서 노하우가 쌓인 강점이 있는 반면 국내 로펌들은 국내 네트워크가 뛰어나고 국내 송무시장에서 우위에 있다. 상대방 대비 경쟁력을 누가 먼저 향상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손영진 심슨대처앤바틀렛(Simpson Thacher & Bartlett) 변호사)

국내 법률시장 개방에 따른 영미계 로펌들의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영미 로펌은 FTA 규정에 따라 외국법 자문사로 법무부 예비심사를 통과하면 바로 사무소를 낼 수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예비심사 신청을 한 외국 로펌만 11개에 달한다.

영미계 로펌으로 전 세계 1~2위를 다투는 디엘에이파이퍼(DLA Piper)는 올해 하반기 내로 서울사무소를 개소할 준비를 하고 있고 이미 사무실 위치도 결정된 상태다. 디엘에이파이퍼는 전 세계 31개국 77개의 사무실에 4200명의 변호사를 두고 있다.

이원조 디엘에이파이퍼 변호사는 “세계 각국, 거의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법적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00명가량의 변호사가 일하는 맥더못윌앤에머리(McDermott Will & Emery)도 서울에 신규 사무소를 개설하기로 결정하고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업무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다만 미국계 로펌이 유럽계 로펌들보다 먼저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 상대국가의 변호사 자격을 3년 이상 보유한 로펌은 국내에 외국법 자문사 사무실을 개설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한국계 변호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미국계 로펌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 임혜린 기자 lynn@mk.co.kr]

인터뷰 | 신영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한국 변호사도 해외 시장 도전해야

Q 영미 로펌들의 한국행이 현실화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인데 왜 오려고 할까.

A 삼성, LG 외에도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니까 이 부문(아웃바운드)에 대해 조언할 여지가 많다고 보는 것 같다. 한국 본사에 수시로 드나들다 보면 아무래도 유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도 넓히고 또 다른 자문거리를 수임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FTA 발효 이후 미국 로펌에 비해 영국 로펌 진출이 상대적으로 미약하지만 영국 로펌 역시 국내 진출을 위해 한국계 영국 변호사를 찾는 데 혈안이다. 조만간 국내 상위권 로펌 변호사들의 스카우트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본다.

Q 먼저 법률시장을 개방한 독일 로펌시장은 외국 로펌에 많이 잠식됐는데 일본 로펌시장은 살아남았다. 한국 법률시장에 시사하는 바는 뭐라고 보나.

A (개방을) 경계해야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1997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한국 로펌들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해외 기업들과 인수합병 사례가 많아지면서 국가 간 법률의견을 받아야 했는데 사실 당시 국내 로펌들의 경험이 확실히 부족했다. 그래서 외국 대형 로펌들이 고가로 수임하고 한국 로펌들은 하청하는 식으로 일을 했다. 당시 젊은 한국 변호사들이 밤새워 가며 많이 배웠는데 그런 경험이 쌓이니 이제는 해외 M&A 분야에서도 외국 로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인적 수준만 놓고 보면 밀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Q 원전·유전 개발 등 대형 프로젝트에선 한국 기업은 물론 정부도 외국 로펌을 쓰는 게 현실이다.

A 정부나 국내 기업인들이 선입관을 갖고 있는 거다. 100년 된 외국 로펌이라고 해서 로펌 소속 변호사도 100년 동안 변호사 업무를 한 건 아니지 않나. 40여년 된 삼성전자가 100년 된 외국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1위를 한 게 현실이다. 한국 로펌 변호사에게 대형 프로젝트 때 참여 기회만 준다면 얼마든 성장할 수 있다. 예전에 현장에서 일할 때 중국 국영 조선업체가 한국 업체에 설비 이전 계약을 하러 왔었다. 이때 중국 로펌 변호사를 꼭 대동했다. 처음엔 생소해하던 중국인 변호사는 1년이 지나자 상당히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우리 정부는 왜 못 하나. 우리 변호사들도 적극적으로 해외로 나가야 한다. 일본 로펌들은 일본 기업들이 인도에 투자하자 뉴델리에 둥지를 틀고 적극 영업을 하더라. 두바이에 있는 한국인 변호사와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두바이에 오면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왜 한국만 고집하느냐’며 일침을 놓았다.

Q 국내 로펌시장, 어떻게 변할 것 같나.

A 시장 개방 외에도 로스쿨생이 2500명씩 배출되는 등 변호사 업계는 점점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대형 로펌, 엔터테인먼트, 노동법 등 전문 소형 로펌, 외국 로펌과 합작한 로펌들이 살아남을 것이다. 시간당 수임료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이는 국내 컨설팅 시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외국계 유명 컨설팅 회사가 예전엔 토종 컨설팅 회사보다 3배 이상 받았다. 하지만 최근 갈수록 그 격차는 줄어들고 컨설팅 수수료 역시 내려가고 있다. 외국 로펌 변호사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외국 로펌 변호사 수임료 역시 조정될 수도 있다.

Q 대한변호사협회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A 해외 변호사들과 접촉면을 더 늘려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한변협이 세계변호사협회(IBA·International Bar Association)와 긴밀하게 협조한 끝에 IBA 아시아본부를 서울에 유치했다. 아시아본부가 서울에 있으면 교육, 훈련, 국제회의, 아시아법조지도자회의 등 각종 국제행사가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열리게 되고 한국인 변호사들이 최신 국제법 동향과 정보를 쉽게 습득할 수 있게 돼 의미가 있다. 같은 논리로 국제중재센터도 한국에 유치할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나아가 KOTRA 등과 연계해 국내 변호사, 국내 로펌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특별취재팀 = 박수호(팀장)·임혜린 기자 / 사진 : 박정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50호(12.3.28~4.03일자) 기사입니다]